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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엊그제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선 한 애널리스트의 투자 리포트가 화제였다. “요즘 러닝화 주가가 안 되는 건 아저씨들이 신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당돌한 문구로 시작하는 이 리포트는 ‘호카(Hoka)’ ‘온러닝(On Running)’ 같은 브랜드 기업들 주가가 하락하는 것이 ’4050 아재‘ 탓이라고 분석했다. 2030 세대가 열광하던 러닝화 브랜드를 이젠 중장년층이 찾는 바람에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고 주가도 내려간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나이키·아디다스 같은 전통 기업이 장악하던 시장에서 순식간에 글로벌 신흥 강자로 떠오른 브랜드다. 혁신에 나태했던 기존 브랜드에 싫증 난 2030의 소비가 결정적이었다. 그런데 최근 이 브랜드들을 보유한 기업들 주가가 침체에 빠졌다. 그 원인이 젊은 세대의 이탈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 아빠도 신는 신발이네’라는 인식이 퍼지며 ‘쿨’한 이미지가 희석됐고 젊은 층이 외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몇 년 전 젊은 헬스인들 사이에서 이른바 ‘3대 500’(스쿼트·데드리프트·벤치프레스 중량 합이 500kg)은 돼야 언더아머를 입을 수 있다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아재’들도 언더아머를 사 입으며 인기가 꺼졌다. 이후 젊은 세대는 HDEX 같은 다른 브랜드로 옮겨 갔다고 한다. 노스페이스도 2000년대 초 드렁큰타이거 등 힙합 가수들이 입어 인기를 끌면서 ‘등골 브레이커(부모 등골이 휜다는 뜻)’라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등산 열풍으로 아재들이 노스페이스 소비에 동참하자 브랜드 파워가 떨어졌다.

▶일본 아식스는 대표적 ‘아재 브랜드’였다. 나이키 등에 밀려 존재감마저 사라졌던 아식스는 운동화에서 패션화로 방향을 전환하고, 2030 세대에게 집중하는 디자인으로 ‘웃돈을 줘야 살 수 있는 브랜드’로 재탄생하는 데 성공했다. 하이킹화, 등산화 등 중장년층 소비가 많은 품목들에서도 수지나 아이유 등 MZ 세대 스타들을 모델로 내세워 급성장한 경우가 나왔다.

▶중장년층의 소비 규모가 젊은 층을 능가한다는 시대이지만 여전히 유행은 젊은 세대가 선도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아재들 전유물이었던 마라톤에 젊은 세대가 열광하는 것을 보면 러닝화 분야에 새 브랜드가 떠오를 것 같다. 골프와 테니스에서 젊은 층이 떠나자 관련 시장에 찬바람이 분다고 한다. 아재 브랜드니 2030 브랜드니 해도 결국 유행은 세대를 넘나들며 돌고 돈다. 좋은 품질과 디자인이 성공의 핵심인 것도 변함없다. 러닝화 주가를 분석한 투자 노트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아저씨들은 죄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