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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사이먼 쿠즈네츠(1901~1985년)는 전 세계 국가를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선진국과 후진국, 일본, 아르헨티나다. 그가 살았던 20세기에 후진국에서 선진국이 된 나라는 일본뿐이었고, 선진국에서 후진국이 된 나라는 아르헨티나뿐이었다. 쿠즈네츠는 후진국이 선진국 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와 같이 불가능한 일로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봤다. 그런데 한국이 그 별을 땄다. 쿠즈네츠가 살아 있다면 제 눈을 의심했을 것이다.

▶대부분 국제기구들은 한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한 지 오래다. 1996년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고, 2010년에는 회원국 중에서도 원조를 하는 공여국(donor)으로 지위가 격상됐다. 1인당 국민소득(GNI)을 기준으로 삼는 세계은행은 1995년부터 한국을 가장 상위인 ‘고소득국’으로 분류했다. IMF는 국민소득과 금융시장 발전도 등의 기준에 따라 1997년부터 한국을 ‘선진경제권’에 포함시켰다.

▶한국에 와 본 외국인들은 “한국이 얼마나 잘사는 나라인지 한국 사람들만 모른다”고 한다. 2019년 국제문화교류진흥원 조사에서 한국이 선진국이라고 답한 외국인 비율은 아시아권(일본 제외)에서 70%를 넘었고, 유럽은 65%, 미국은 57%였다. 하지만 한국인의 스스로에 대한 평가는 박하다. 1일 국무조정실이 발표한 국민 인식 조사에서 한국이 선진국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27%였다. 10년 전 조사(8%)보다는 많이 늘었지만, 여전히 국민 넷 중 셋은 선진국을 체감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인의 독특한 심리를 ‘선진국 콤플렉스’로 설명하기도 한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 틈바구니에 끼여 오랜 약소국 시절을 보낸 한국인의 마음속에 “항상 조심하고 나대지 말아야 한다”는 자학적 공포심이 배어있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선진국 눈높이가 너무 높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인에게 선진국이란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북유럽, 일본 등인데 한국은 아직 아니라는 것이다.

▶선진국 콤플렉스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선진국이 되려는 욕망과 열등감이 한국을 선진국으로 이끈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선진국을 빠르게 따라 하며 추격하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으로 성공했다. 이제 추격자 아닌 ‘선도 국가’로 변신이 숙제다. K팝, 드라마 등 문화예술 부문에선 이미 선도국으로 진입하고 있다. 앞으로 국민 대다수가 ‘한국은 선진국’이라 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