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이며,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조차 흐려지기도 하며… 매우 해괴하고 위험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1989년 3월 육사 제45기 졸업식에서 당시 민병돈(육군중장) 교장은 노태우 대통령에게 경례도 하지 않은 채 식사(式辭)를 통해 노 대통령의 북방 정책 및 대북 유화 기조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큰 파문이 일었고 민 교장은 스스로 사의를 표한 뒤 전역했다. 민 교장은 소신껏 행동하며 사서 고생한다 해서 ‘민따로’라는 별명으로 군내에서 유명했다.

▶최근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의 ‘군 휴가 미복귀’ 사건 및 통역병 등 청탁 의혹과 관련, 몇몇 군 관계자들의 소신과 ‘증언’이 주목을 받고 있다. 추 장관 측 청탁 사실을 증언한 예비역 대령 A씨(당시 주한 미8군 한국군지원단장)는 원칙에 충실한 ‘강골’ 군인으로 통했다. 이번 사건 내막을 잘 아는 한 장성은 “당시 송영무 국방장관실 등 군내에서는 ‘A씨는 청탁을 해봐야 씨도 안 먹힐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고 전했다.

▶A씨는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 측에 “제가 직접 추미애 남편 서 교수와 추미애 시어머니를 앉혀놓고서 청탁을 하지 말라고 교육을 40분을 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추 장관 측은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육군사관학교 생도 시절을 A씨와 함께 보냈던 한 관계자는 “A씨는 법과 원칙에 과도할 만큼 엄격했다”며 “추 장관 남편 등을 대상으로 충분히 장시간 ‘훈계’를 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전했다.

▶2017년 6월 추 장관 아들은 19일간 병가를 나갔다가 끝나갈 무렵 재차 휴가 연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당시 카투사 지원반장(상사)은 선임 병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을 공익 제보한 당시 당직병사 현모씨는 "나를 거짓말쟁이 취급하는 추 장관 측 행태가 모욕적”이라면서 국회에서 증언을 요구하면 응하겠다고 했다. 검찰 조직의 최정점에 있는 법무 장관을 공개 석상에서 반박하는 일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당직병사 현모씨나 예비역 대령 A씨의 제보와 증언이 없었더라면 이번 사건은 어떻게 됐을까. 단순 민원 사안으로 치부되거나 외부에 영영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 전부터 한국군 수뇌부의 무소신, 군 장병들의 정신 자세 약화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원칙과 규정에 충실하고 소신을 지키려는 일부 간부와 정의감에 넘치는 젊은 병사들이 아직 우리 군에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한국군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