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나는 예능 PD로서 깊은 슬럼프에 빠졌다. 뭘 만들어야 할지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대개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나 유튜브 같은 소셜미디어로 콘텐츠를 접하고 있었고, 집에 TV가 없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회사에선 당연히 흥행과 수익, 화제성을 동시에 잡을 규모 있는 작품을 원했다. 아무도 TV를 보지 않는 추세인데 텔레비전을 위한 기획만 파고 있는 건 시대를 읽지 못하는 헛발질 아닐까 불안했다. 자신감도 떨어지고 방송사에 계속 다니는 게 맞는지도 의문이었다.

미스터리한 건 TV의 속성이었다. 호흡이 빠르고 밈(meme)이 발달된 소셜미디어의 흥행 콘텐츠나 소재, 인물들이 TV로 그대로 넘어왔을 때 그 장점을 잃었다. 같은 콘텐츠가 휴대폰에서 거실 텔레비전으로 옮겨왔을 뿐인데 무슨 차이가 생기는 걸까. 누군가는 시청층이 다르다는 데서 이유를 찾았지만, 같은 프로라도 침대에 누워 낄낄거리며 손바닥 안에서 봤을 때 ‘꿀잼’이던 것이 거실의 대형 TV 화면에선 그 생동감을 잃기도 했다. 역으로 TV의 느리고 친절한 흥행 프로가 휴대폰에선 긴장감 떨어지는 영상으로 받아들여졌다. 매체에 따라 시청 지속 시간도 달랐다. 단순한 시청층의 차이가 아니라 보는 이의 ‘시청 태도’가 콘텐츠의 장르와 재미를 결정짓는 셈이다.

방현영

지하철 출근길 이어폰과 휴대폰으로 '짤'(짧은 호흡의 영상클립)'을 넘겨보던 사람이 퇴근 후 암전된 영화관에서 재미를 느끼는 포인트는 달라진다. 아침저녁으로 달라지는 시청자들 취향이 콘텐츠의 미래와 직결된 변인이다. 텔레비전은 죄가 없다.

텔레비전의 종말을 예견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지만 시청 행태와 제작하는 주체가 변화하는 것일 뿐 텔레비전은 자신의 영역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는 묘한 확신이 든다. 텔레비전을 텔레비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시기가 끝날지라도 사람들이 이야기에 목말라하는 한 우리가 만들고 보는 것들은 진화를 거듭해갈 것이다. 집중해야 할 것은 시청자의 욕망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접점! 그렇게 나는 여전히 TV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