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화이자 등의 코로나 백신 시판 가능성이 커지면서 각국이 대규모 물량 선(先)구매 계약을 속속 맺고 있는데 한국 정부의 대처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굼뜨다. 미국은 10여조원을 들여 6억회분 백신을 확보했다. 유럽은 3억회분, 일본도 1억2000만회분 선구매를 했다. 영국⋅캐나다⋅칠레 등도 글로벌 제약사들과 계약을 체결했다. 뉴질랜드⋅호주 같은 ‘코로나 청정국’들도 백신 확보를 서두르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제야 선구매 절차에 나섰지만 얼마만큼 물량을 확보할지 불확실한 상황이다. 다른 나라들이 모두 선구매를 하는 바람에 “물량이 이미 동이 났다”는 말까지 나온다.
정부는 그동안 이상할 만큼 백신 확보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연내에 전 국민 접종 물량의 60%를 확보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해왔을 뿐이다. 그러다가 어제 저녁에야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를 처음으로 열어 선구매 검토를 시작했다. 질병관리청은 “설령 선입금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충분한 양을 구매할 것”이라고 했다. 선구매 금액은 제약사가 실패해도 되돌려받지 못한다. 그래도 다른 나라들이 손실 위험을 감수하고도 선구매를 하는 것은 백신만이 코로나 대응의 최종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관계 부처들이 선구매 금액을 떼이는 책임을 지지 않으려 시간을 끌어왔다. 기획재정부는 예산 배정에 소극적이었고, 주무 부처인 복지부도 선구매 예산 확보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러다 이제 와서야 “선입금을 포기하는 한 있더라도”라며 백신 확보에 시동을 거는 모습이다.
복지부는 앞으로 구매할 백신 검토 작업과 제약사들과의 협상도 자문위가 주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질병관리청에도 백신 전문가가 많은데 굳이 자문위를 중심 추진체로 앞세웠다. 자문위가 아무리 바쁘게 움직여도 정부만큼 신속한 결정을 내리고 일을 진척시킬 수는 없다. 외부 인사에게 떠넘기고 정부는 뒤로 빠져 책임을 피하겠다는 것이다. 이러다 좋은 소식이 있으면 마치 자신들이 한 것처럼 숟가락을 얹을 게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