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제 장목면의 매미성 장면, 2003년 태풍 매미 피해를 본 뒤 백순삼씨가 17년 동안 돌 2만개를 쌓아 만들었다./백순삼씨 제공

17년 전 닥쳤던 태풍 매미를 소환한 건 최근 연이어 온 태풍 바비·마이삭·하이선이었다. 매미급 태풍이란 뉴스에서다. 기자는 앞서 한 달 전쯤 ‘어린이 조선일보’에서 태풍 매미를 오랜만에 떠올렸다. 매미성(城). 사진으로 보니 유럽의 고성(古城) 같았다. 경남 거제시 장목면에 있는 이 성은 높이 12m, 둘레 150m에 전망대와 꽃밭도 갖추고 있다. 한 남자가 2003년 10월부터 한 개에 30~60㎏짜리 네모난 돌 2만여개를 쌓아올린 결과물이다. 설계도 한 장 없이 17년 동안 쌓은 성이라니 입이 쩍 벌어질 만하다.

백순삼(66)씨. 매미성의 성주다. 아니 정확히 매미성을 쌓은 노동자이다. 매미성은 입소문이 나면서 지난해에만 40만명이 찾았다. 그런데도 입장료, 주차료가 모두 공짜다. 백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이런 일을 하시나요?”

매미성 이름에 실마리가 있었다. 2003년 9월 태풍 매미는 사망·실종자 131명, 재산 피해 4조원을 남겼다. 대우조선소를 다니던 백씨는 ‘은퇴 후’까지 염두에 두고 지금 매미성 자리의 텃밭 1800㎡(약 600평)를 사들여 주말마다 고구마, 깨, 콩 등을 키웠는데 태풍으로 형체도 없이 잃어버렸다. 정부 보상금이라도 신청하려 했지만 당시 피해가 워낙 심각해 개인들은 꿈도 못 꿨다. 그때 백씨는 이런 생각을 했다. “다음엔 이대로 당하지 않겠다.”

‘천년 바위’ 위에 널브러진 돌을 모아 혼자 둑을 쌓기 시작했다. 강풍을 막을 제방으로 시작했지만 점점 꿈을 키웠다. “이왕이면 해변과 어우러지는 멋진 풍경을 만들어 보자.” 돌이 부족해져 1년에 한 번 경남 거창에서 트럭으로 돌을 날라온다.

“텃밭은 그대로 가꾸고 있지만, 땅이나 돌은 물론 축대 쌓고 유지·보수하는 비용까지 혼자 다 떠맡고 계신데 입장료 정도는 받으시죠?”

33년간 다니던 조선소에서 정년 퇴임까지 한 그의 답은 이랬다. “이제 와 입장료를 받기는 좀 그렇심니더(웃음). 그동안 묵묵히 지켜봐 준 아내에게 많이 미안합니다. 그런데 우찌 보면 매미성 주인은 여기 와서 행복해하는 관광객들 아니겠심니꺼. 최근 우리 둘째 아이가 여기서 작은 카페를 하나 할까 합니다.”

그러더니 그는 “아 참, 아들 카페는 주민들과 상의해서 피해를 안 주도록 할 겁니다. 마을 주민은 제 가족 같심다. 각자 특색 있는 일을 해야 같이 잘살 수 있습니더”라고 말했다.

경남 거제 장목면의 매미성 장면, 2003년 태풍 매미 피해를 본 뒤 백순삼씨가 17년 동안 2만개의 돌을 쌓아 만들었다./백순삼씨 제공

매미성이 있는 복항마을은 12가구에 주민 20여명이다. 바닷가 마을인지라 나이 든 여성들이 대부분인데 핫도그 가게도, 카페도 열고 있다. 매미성 덕분에 온 마을이 먹고사는 모습이다.

“관광객들이 함께 온 자녀들에게 ‘너희도 꿈과 열정으로 열심히 살다보면 이런 걸 이룰 수 있다’고 얘기하는 걸 들으면 가장 뿌듯합니더.” 백씨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백씨는 ‘손실은 개인이 떠안고, 수익은 공동체로 돌리는’ 도덕 교과서 같은 인물이다. 펀드 투자 손실에도 세금을 동원하려는 ‘수익의 사유화, 손실의 국민화’ 방식의 포퓰리즘 제도가 쏟아지는 요즘 시대와 무척 대조적이다. 그는 누구처럼 정부 보조금에 눈독 들이거나 주민 성금 모으기도 하지 않았고, 자신의 자식에게 작은 특혜조차 안 주려고 노력했다. 그는 ‘다시 당하지 않겠다’는 목표 아래 그냥 복원이 아니라 공유, 창조 등의 새로운 가치를 심어냈다. ‘가짜 정의’ ‘가짜 공정’이 판치는 세상에 백씨는 ‘진짜’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매미성은 이번 태풍 바비, 마이삭, 하이선에도 끄떡없었다. 텃밭도 물론 피해가 거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