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K팝, 영화, 드라마로 세계적인 문화 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런데 종합 예술인 건축만은 프리츠커상 수상자를 아직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해 안타깝다. ‘건축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은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은 말할 것 없고 이웃 나라 일본도 9명이나 수상했다. 현대 건축의 후발 주자 중국조차 최근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2명 나왔다.
우리는 국내 건축가를 지원하고 자체 건축 작품을 만들기보다 외국의 유명 건축가를 불러오려는 사대주의 풍토에 젖어 세계적인 건축가를 배출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문화 가치를 창출하는 건축 설계를 외국인에게 맡기면서 건설 대국 한국은 두뇌 없는 노예로 추락하는 것 아닌가?
국내 대기업과 지방자치단체들은 기념비적인 건축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보통 프리츠커상을 받은 건축가나 그만한 명성을 떨치는 외국 건축가들을 수소문해 맡긴다. 서울시는 동대문디자인센터(DDP)를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에게 맡겼다. 삼성의 리움미술관은 프랑스 장 누벨과 네덜란드 렘 쿨하스의 작품이고, 일본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은 원주의 뮤지엄 산, 서울 LG아트센터, 제주 본태박물관 등 6개에 달한다.
아마도 한국의 좋은 건축가에게도 같은 기회를 준다면 벌써 프리츠커상 받을 만한 건축가들이 나타났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최근 들어 외국 저명 건축가들에 비해 불리한 조건과 대우를 딛고서도 세계에 내놓았을 때 꿀리지 않는 한국 건축가들의 건축물이 속속 출현하기 때문이다. 불편한 사례도 있다. 최근 서울시에서 추진 중인 트윈링의 경우 우대성, 이은석 건축가의 서울링 주요 아이디어를 건네주고 네덜란드 건축가의 이름으로 저작권 세탁을 하고 들어온 것 같다는 법적 분쟁에 휘말리고 있다.
세계적인 한국 건축가가 나오기 어려운 다른 이유를 꼽는다면 국내 건축가에게 건축물 가치 창출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시공 관리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다. 국내의 공공 건축 사업에서는 설계 회사와 감리 회사가 반드시 분리되도록 시스템이 경직돼 있다. 더 나은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건축가와 설계를 바탕으로 시공해야 하는 사람이 머리를 맞대며 문제를 풀어갈 기회가 원천 봉쇄돼 있기 때문에 수준 높은 작품 탄생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서울 용산의 아모레 퍼시픽 본사 건물을 지은 영국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재작년 프리츠커상을 탔고, 서울 세곡동 강남하우징 주공아파트를 설계한 일본의 야마모토 리켄은 작년에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수상의 배경에 한국에서 지은 건물들도 톡톡히 기여한 셈이다. 한국의 유능한 건축가에게 이런 대형 건축 프로젝트의 기회를 주었다면 우리나라도 프리츠커상 대열에 합류하지 않았을까?
야마모토 리켄은 프리츠커상 수상 후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도 좋은 건축가가 많은데, 정작 한국에선 한국 건축가들이 제대로 설계하고 건축할 기회를 갖지 못해요. 오히려 나 같은 외국인에겐 기회를 주고요”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영국과 일본의 건축가가 프리츠커상을 수상하도록 지원하는 사이 우리 건축가에게는 기회를 주지 않고 인색하게 대했다. 후발 주자였던 중국도 표절과 문화 사대주의가 중국 건축계를 도약시키는 방법이 아님을 깨닫고 자국 건축가들을 적극 지원했고, 그 열매를 수확하고 있다. 우리 건축가들에게 외국 건축가들과 동등한 경쟁을 할 수 있는 무대만 마련해 주더라도 괄목할 만한 경쟁력을 발휘하리라고 생각한다. K건축문화 창달에도 관심을 갖는 대통령의 탄생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