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지 한달이 지나면서 세계 각국이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비즈니스 마인드로 동맹을 대하는 트럼프의 국제정치 인식과 한국에 대한 주한미군 방위비 증액 요구로 한국은 트럼프의 재집권을 부담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필자는 트럼프 2기가 한국에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파병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전략적 첨단 무기 기술을 제공받고, 외화까지 벌어들인다면 김정은 정권을 연명시켜주는 호재가 된다. 북한이 말하는 ‘제1적국’ 한국에는 장기적으로 큰 불안 요소다. 이런 북·러 상황을 감안하면 트럼프 2기는 한국에 유리한 측면도 있다.

첫째, 트럼프가 장담하듯 그가 취임한 이후 단시간 내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할 수 있다는 가정을 해보자. 러시아군 사상자가 70만명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푸틴도 전쟁 피로를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를 상당 부분 점령하고 있는 상황이라 트럼프가 중재에 나서준다면 푸틴은 마지 못한 척 하며 응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도 노벨평화상을 노리고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가장 불만일 사람은 영토를 많이 잃은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이 있겠지만, 그보다 김정은이 더 억울할 수도 있다.

북한은 현재 중국과 러시아에 내보낸 노동자들의 수입보다 파견 인민군들이 목숨 값으로 훨씬 더 많은 통치자금을 벌어올 수 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면 군인들의 ‘목숨값’ 수입도 끊기게 된다. 또한 전쟁이 종식되면 김정은 정권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대기권 진입 핵탄두 기술, 장기간 잠항이 가능한 원자력 추진 잠수함, 정찰 위성 등 첨단기술을 러시아로부터 넘겨받을 가능성이 낮아지게 된다.

물론 이런 기술의 일부가 이미 북한에 전수되었거나, 인민군을 몇십만명 이상 파견할 때 넘겨주겠다고 약속한 이면 합의가 있을 수 있다. 푸틴이 정상적 사고방식의 국가 지도자라면 후일 자신들에게 비수가 될 수 있는 전략적 첨단 군사 기술을 북한에 공여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으로서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의 중재로 전쟁이 빨리 끝나는 바람에 남침야욕 구상에 방해가 된다면 결코 반기지 않을 것이다. 김정은은 하노이 회담 실패 이후 지금까지 트럼프 재당선을 학수고대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 마음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둘째, 한국으로서는 동맹과 국제정치 인식에 상식적인 조 바이든 민주당 정권에 비해, 남는 장사가 척도인 트럼프를 상대로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서 안전을 담보하겠다는 확장 억제에 안주하지 말아야 한다. 트럼프가 터무니없는 방위비 증액을 요구하거나 그에 응하지 않을 경우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다며 압박해 온다면, 일본이 하고 있는 원전의 사용 후 핵 재처리를 할 수 있는 조건을 주장해 관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른 시일 내에 핵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아니면 미국에 전술핵 도입이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식 핵 공유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이 이런 문제를 쉽게 관철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트럼프 2기가 한국 입장에서 우려할 일만은 아니다. 트럼프와 김정은이라는 두 ‘악동’과 마주한 한반도의 지정학적 국제정세 속에서 한국의 전략적 외교 역량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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