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 의대 신설 문제를 둘러싼 의료인과 정부의 첨예한 대립이 “원점에서의 재검토를 위한 의정 협의체 구성” 합의를 계기로 봉합이 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부가 “의사가 파업을 하다니!”로 흐르기 쉬운 국민 정서를 믿고 밀어붙이려 하면 의료인들 반발은 언제라도 터질 수 있다.

해방 직후 6개에 불과하던 의대를 박정희⋅전두환⋅김영삼 정부에서 집중적으로 늘려서 입학 정원도 3300명까지 늘어났는데 김대중 대통령이 3000명 수준으로 줄인 후 그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 이것을 연 400명 정도 더 늘려 부족한 지역의료, 공공 의료, 연구 인력으로 충원하겠다는 것인데, 여기에 공공 의대 신설 안이 편승하여 말썽을 더 키우고 있다.

먼저 의대 정원 문제는 의사 공급이 부족하다는 정부와 과잉이라는 의료계의 상반된 인식부터 해결되어야 하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둘 다 맞는다.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가 OECD 평균이 3.5명인데 우리는 한의사까지 합쳐도 2.4명이니 일견 의사가 적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의사당 연간 평균 진료 건수가 7071건인데 OECD는 2145건이라는 점, 그리고 낮은 수가에 의원을 유지하기 위해서 개원의들이 매일 60명 정도를 진료해야 한다는 점을 함께 고려하면 의료 공급의 총량은 결코 부족하다고 할 수가 없다.

의사 수를 늘려 1인당 진료 건수가 줄어들면 그래도 병⋅의원이 유지될 수 있는 수준으로 수가를 높여 주어야 할 텐데 지금까지 그 어느 정부도 그렇게 하려고조차 한 적이 없다. 의료비는 항상 국민 부담 경감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이 정부도 그 간판 정책인 ‘소득 주도 성장 바로 알기’라는 소책자를 보면 ‘가계 소득 증대’ 다음으로 ‘가계 지출 경감’을 내세우고 있고, 의료비를 그 첫째 대상으로 꼽고 있다. 이 오래 묵은 ‘낮은 수가, 과다 진료(과잉 진료와 비급여 진료 유도 등은 또 다른 문제다), 과소 의사’의 체제를 바로잡을 구상도 없이 그냥 의사 수를 늘리겠다고 하니 의사들이 반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의료의 질적 향상(평균 진료 시간 상향 등), 고령화에 따른 의료 수요 증가, 팬데믹에 대비한 여유 의료 역량의 확보,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활용한 외국인 환자 유치 등 의사 수를 늘려야 할 이유는 많다. 간호사 등 지원 인력 수요까지 감안하면 다양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기도 하다. 부디 정부는 큰 그림을 그려 의사들을 설득해 주기를 바란다.

공공 의대 신설은 별개 문제다. 중증 외상,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 기피 과목, 지역 병⋅의원, 보건소, 그리고 역학 조사관 등 의사가 부족한 부문에 의사 충원은 필요하다. 다만 이런 분야는 “의사가 되고 싶은데 성적이 안 돼서 의대를 못 가는” 사람들도 추천에 의해서 들어갈 수 있고, 대학병원 없이 실습을 제대로 시킬 수 있을지 의심받는 국립의료원에서 실습을 거쳐 배출되는데, 왠지 질과 격이 떨어질 것 같은 의사들로 채워도 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립의료원이 시설과 역량을 앞으로 보완하겠다고 한다지만, 어떻게든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서 양성된 실력 있는 의사들로 충원할 방안을 찾아내는 게 정도 아닐까.

추천권자에서 시민단체를 뺀다 하더라도 입학 과정에서 빚어질 논란과 의혹을 어떻게 감당할지, 15년 후 10년 지역 병원 의무 복무 기간을 채운 이들이 의료 시장에 나올 때 극소수에 비주류인 이들이 과연 제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 등 걱정되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다른 종류의 의사”를 만드는 일은 찬성하기 어렵다.

의사 수와 함께 병⋅의원에 대한 투자도 늘려야 한다. 앞에서 지적한 의사 수를 늘려야 할 이유는 모두 여기에도 적용된다. 오늘날 의료는 의사뿐만이 아니라 첨단 진료, 치료 시설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지역의 환자가 서울로 빠져나가고 이제는 환자가 부족해서 지역 병원을 제대로 운영할 수가 없는 이 악순환은 첨단 시설 투자가 대도시부터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던 데에서 비롯됐다.

법인 병원에는 출연만 되고 투자는 금지하고 있는 의료법과 정상적으로는 흑자를 낼 수가 없는 의료 수가 체계 때문에 민간에 의한 병원 투자는 기대할 수가 없다. 이래서는 낙후된 지역 의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풀 수가 없다. 정부가 투자를 금지했으니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밑천에 대한 대가를 포기해도 무방한 정부가 밑천을 대야 한다. 1인당 2만원씩 통신비를 깎아 줄 9000억원이면 지방 의료 시설 18곳에 500억원씩 투자할 수 있다. 아마도 득표 효과도 더 클 것이다. 돈을 쓰지 말라는 게 아니다. 써야 할 데에 제대로 쓰면 안 되겠느냐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