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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오전까지 일하는 거 언제부터인가요?”

요즘 직장인 커뮤니티에 부쩍 많이 올라오는 글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선거 때 노동 분야에서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주 4.5일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월화수목 근무하고 금요일은 반나절만 일하는 식이다. 민노총 위원장 출신인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9일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서면 질의 답변서에서 “임금 감소 없는 주 4.5일제가 가능하다”고 했다. 현 정부 노동 정책은 ‘노동 환경 개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주 4.5일제도 추진에 속도가 붙기 시작할 것이다. 일은 덜 하면서 월급은 그대로 받을 수 있다는데 싫다고 할 직장인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여기에는 선결 조건이 있다. 먼저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한다. 우리나라 근로시간이 긴 것은 맞는다. 2023년 기준 한국의 연평균 노동시간(1874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157시간 길다. 일하는 시간이 줄더라도 같은 성과만 낼 수 있다면 근로시간은 줄일 수 있다. 문제는 이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OECD 38국 가운데 33위다. 같은 시간을 일해도 다른 나라보다 성과가 적게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생산성 향상 없이 근로시간만 줄일 경우 기업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근로자에게 좋은 일이 결코 아니다.

근로시간을 개별 노사가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는 작업도 필요하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작년 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장시간(주당 49시간 이상) 근로 비율은 우리나라가 유럽연합(EU) 15국에 근접했다. 오히려 유럽은 하루 10시간 이상 근무하거나 주말 또는 야간에 일한 적 있는 근로자 비율이 우리보다 높다. 그런데도 유럽은 평균 근로시간이 우리보다 짧다. 근로시간 운영의 유연성 때문이라고 연구진은 분석했다. 일은 있는 날 몰아서 하고 없는 날은 덜 하는 식으로 탄력성 있게 근로시간을 운영하는 것이다. 독일은 하루 근로시간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8시간이지만 6개월 평균 8시간을 맞추면 된다. 우리는 하루 8시간, 주당 40시간으로 엄격하다. 그렇다 보니 일이 평소보다 없는 날에도 8시간을 채우고, 일이 몰리는 날은 8시간 외에 추가 근무를 한다. 이런 시스템을 고집해서는 실제 근로시간을 줄이기 어렵다.

정부가 주 4.5일제를 당장 일률적으로 시행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우선은 참여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식으로 단계적 확산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강제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기업들 우려는 커지고 있다. 대통령 공약인데 정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데다 이미 노조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주 4.5일제는 올해 하투(夏鬪)의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현대차 노조도, 금융산업 노조도 임금·단체협상에서 주 4.5일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법정 근로시간을 주당 40시간에서 36시간으로 줄이면 기업들 부담은 본격적으로 불어난다. 기존 직원에게 초과근무수당을 더 주고 일을 시키거나 사람을 새로 뽑아야 하기 때문이다. 추가 고용을 할 경우 기존 근로자의 임금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가 더 심해질 수도 있다. 인력 부족 때문에 주 5일제조차 제대로 못 지키는 중소기업 처지에서 주 4.5일제는 언감생심이다. 주 4.5일제는 대기업 노조의 전유물이 될 수 있다.

근로시간 개편은 국민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국내외 위기가 언제 해소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경제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결정은 신중해야 한다. 대선 공약이라고 무리하게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