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캐나다 휘슬러로 스키 여행을 다녀왔다. 망설이다가 떠난 여행이었다.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떠났고, 돌아올 때쯤에는 그 기세가 더욱 거셌다. 언제 또 떠날지 기약할 수 없는 지금 와선, 망설임을 무릅썼던 게 얼마나 다행이었나 싶다. 벌써 애틋해져버린 1월의 여행에 묻어 있던 불길함은 바이러스만이 아니었다. 머물렀던 여드레 중 일곱째 날, 해발 2000m 산꼭대기 즈음까지 주룩주룩 비가 왔다. 소문난 스키 마니아인 나는 휘슬러에 지난 20년간 열 번쯤 갔는데, 1월 한복판에 산꼭대기까지 폭우가 온 건 처음이었다. 터전 잃은 북극곰의 심정이 이럴까. 기후변화의 미래에 대해 익히 읽고 들어왔던 터지만, 잃게 될 것을 처음으로 슬프게 실감했다. 속되고 부끄러운 마음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비대면 명절’로 보낸 추석 연휴 동안 읽은 호프 자런의 신작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속 문구 덕에 그 부끄러웠던 서글픔을 떠올렸다. “1926년 이래 스물세 곳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렸는데 그중 절반 가까운 도시에서는 이제 더 이상 스키와 스케이트, 스노보드 경기를 진행할 수 없다.”
호프 자런은 2019년 널리 읽혔던 ‘랩걸’의 저자이자, 오슬로대학 지구 진화 및 역학센터에 재직 중인 식물학자이다.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는 그녀가 마지못해 기후변화 수업을 맡게 된 후로 익힌 모든 사실(facts)을 특유의 아름다운 문체로 다듬어 낸 책이다. 기후변화가 주제라면 공포스러운 전망으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지만, 적잖은 곳에서 피식 웃음이 터졌고, 정연하게 정리된 정보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나는 기후변화가 온 인류에게 얼마나 심각한 위기인지 직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직면이 공포보다는 결국 희망으로 나아가는 길이어야 한다고 믿는 쪽이다. 공포는 진실을 부인하게 또는 몸을 얼어붙게 만들지만, 희망은 행동하고 상상하게 만든다. 희망은 고통이 없을 것이라는 기대가 아니라, 고통 뒤에 찾아올 더 나은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호프 자런 역시 이렇게 말한다. “나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이런 내용을 알리는 것이지, 사람들을 그저 두렵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두려움은 문제를 외면하게 만들고, 정보는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한다.”
글로벌 전략 컨설팅사 맥킨지는 ‘팬데믹 이후의 세계, 기후변화에 대처하기’라는 보고서에서 이렇게 썼다. “이런 시기에 기후변화와 더 폭넓은 지속 가능성의 의제에 세계가 관심을 쏟을 수 있을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고 굳게 믿는다. 다음 10년 동안 기후 행동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을뿐더러,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기반시설 건설과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에 투자하는 것이 당장 새로운 일자리를 다량 창출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경제적 회복력과 환경적 회복력을 함께 높이는 방법이다.” 실제로, 팬데믹의 한복판에서 아마존은 20억달러의 ‘기후 서약’ 펀드를, 마이크로소프트는 10억달러의 ‘기후 혁신 펀드’를 조성한다고 발표했고, 유니레버도 기후 펀드에 10억유로를 투입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기후 위기는 팬데믹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경제 사회적 변화가 아니라 물리적이고 환경적인 위기이며, 시스템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변화를 일으킨다. 팬데믹에 대응하고자 각국 정부가 펼치고 있는 전례 없이 강력하고 대대적인 조치들은 이런 구조적 위기 앞에 국가가 어떤 역할까지 맡아야 하며 또 맡을 수 있는지 테스트해보는 시험대이기도 하다. 이런 종류의 위기 앞에 시민들이 요구하며 또 용인할 수 있는 국가의 역할은 완전히 달라진다. 우리는 닥쳐올 기후 위기에 앞서, 그 범위를 미리 확인해 보고 있는 셈이다.
“나는 코로나19를 싫어하고 두려워하기도 하며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를 바라지만, 한국의 위대한 시인 유치환은 ‘희망이 해진 주머니로 흘러간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적어도 한 세대에서는 처음으로, 우리는 잠시 멈춰 서서 속도를 늦추고, 손대지 않고 내버려두고, 없이 살게 되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렇게 해야만 할 때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호프 자런의 말이다. 무언가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는 자리에서 새로운 것들이 생겨난다. 다만, 잃게 되는 사람과 새롭게 누리게 될 사람이 같지 않다는 것이 난제인데, 이 난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사회에서 우리는 공포보다는 희망으로 새로운 정보에 귀를 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