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경

# 일 년 전 이맘때 온 나라가 당시 조국 법무장관 때문에 시끌벅적하다 못해 난리도 아니었다. ‘조국 파면’ 대 ‘조국 수호’로 국민이 극단적으로 갈려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나라가 두 동강 났었다. 그런데 일 년이 지난 지금 이번엔 추미애 법무장관 때문에 또다시 그 모양새다. 일 년 간격으로 반복된 조국 사태와 추미애 사태는 정의와 공정이란 문재인 정권의 집권 화두가 얼마나 허울에 찬 것인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 하지만 조국 사태와 추미애 사태는 그 전개 양상이 사뭇 다르다. 일 년 전 조국 사태가 분출하는 ‘화이트홀’이었다면, 작금의 추미애 사태는 쓸어 담는 ‘블랙홀’이다. 다시 말해 조국 사태는 친문의 차기 대권 주자로 키워지던 조국 자신을 둘러싼 온갖 의혹이 전방위적으로 노출되며 정의와 공정의 탈을 쓴 거짓과 위선이 일파만파 봇물 터지듯 뿜어져 나온 일종의 정치적 화이트홀이었다. 반면에 추미애 사태는 너무나 상식적이고 뻔한 것을 두고 사과와 사죄를 하면 될 일을 되레 자신과 아들이 최대 피해자라고 강변하며 묘하게도 상대를 더욱 자극해 끌어들이는 정치적 블랙홀로 작동하고 있지 않은가.

# 그래서일까. 국회가 열렸다고는 하는데 다른 화두는 들리지 않고 오로지 추미애만 있는 것처럼 들린다. 추를 공격하면 할수록 역설적으로 모든 것이 추미애 블랙홀에 빨려들어 묻혀 버린다. 여기에 고무된 듯 현 정권과 여권은 처음엔 궁색한 변명에 허덕이는 듯 보였지만 이제는 차기 주자인 이재명⋅이낙연은 물론 심지어는 조용하던 김태년 원내대표까지 나서서 시종일관 추미애 엄호다. 이들이 뒤늦게 추미애를 엄호하는 까닭은 추가 떳떳해서가 아니다. 친문 세력이 추를 옹호하고 보호하는 분위기가 대세이기 때문이다. 본래 추는 친문 세력의 엄호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보수 세력이 추를 때리자 친문 세력은 본능적으로 보호막을 펼쳤고 친문 눈치를 봐야 하는 이재명⋅이낙연 등 비(非) 친문 주자들은 내키지 않겠지만 추를 엄호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형국이 된 것이다.

# 그러니 지금은 전략상 야권이 추미애 블랙홀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가 아니다. 국회에서 백날 대정부 질의나 상임위에서 떠들어봤자 추미애의 못된 오기만 살릴 뿐이다. 그렇다고 추미애를 봐주고 내버려두자는 것이 아니다. 추미애는 언론과 국민의 상식이 맡아서 처리할 테니 야권은 전략적으로 미래를 위해 진짜 싸울 인물부터 속히 찾아서 선보이라. 과거와 상대의 늪에 매몰되지 말고 새 국가 비전을 펼칠 만한 인물을 찾아내 국민적 분노를 새로운 미래 창출의 국민적 에너지로 전환해야 하지 않겠나.

# 야권은 다음 대선의 상대가 이재명이나 이낙연일 것이라고 보는가? 물론 그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여전하다. 회생 불가할 것처럼 보이지만 조국 역시 아직 죽지 않은 카드라고 본다. 친문 세력이 주도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여차하면 추미애를 서울시장 재보선 카드로 내밀지도 모를 일이다. 이른바 친문의 정서에서 보면 그러고도 남을 일이다.

# 자고로 정치는 타이밍의 예술이다. 지난해 조국 사태로 분노해 참다 못한 애국 시민들이 개천절과 한글날에 광화문과 시청 앞에 구름처럼 모여들어 곧 정권을 절단 낼 듯싶었지만 정작 반년 후 실시된 지난 4월 총선의 결과는 여당의 압승이었다. 왜 그랬을까? 분노를 담아낼 그릇(인물)이 마땅하지 않았고 분출의 타이밍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추미애 때문이든 코로나 때문이든 국민적 분노의 마그마는 식지 않은 채 들끓고 있다. 하지만 그 분노를 담아낼 그릇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못 믿을 여론조사라지만 국민의 절반이 차기 대권에 적합한 인물이 없다고 답변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된다. 그나마 지지율 10%를 넘는 사람은 여권의 이재명과 이낙연 두 사람뿐이다. 반면에 야권 인사는 멸절 상태다. ‘국민의 힘’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기다리면 나온다고 하지만 지금처럼 밀봉 상태로 놔둔다고 애벌레가 자연스레 나비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 민주주의는 선거로 말한다. 그리고 선거는 고등수학이 아니라 산수(算數)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이 온갖 악재에도 내리 네 번씩이나 선거에서 이겼던 것은 철저하게 수(數)의 정치를 했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부동산 정책도, 코로나 지원금의 꼼수도 모두 욕을 먹지만 끝내 수의 정치에서는 유리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선거에서 이기지 못하면 백날 피켓 들고 떠들어봤자 헛일이다. 그러니 표(수)의 확장성이 있는 차기 인물을 더 적극적으로 찾아내야 한다. 아울러 내년 4월의 재보선과 내후년 3월 대선에서 이길 타이밍에 정치적 시간표를 맞춰야 한다. 미리 떠들고 흥분하며 김 빼봤자 정치적 마스터베이션에 그칠 뿐이다. 지금부터라도 전략적인 표(수) 계산과 정치적인 시간 계산 속에서 움직여야 한다. 그러려면 지금 같은 막연한 깜깜이 방식으로는 어림없다.

# 재보선이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경제통이니 뭐니 하는 식으로 스무 고개 넘는 듯한 알쏭달쏭 선문답일랑 걷어치우고 ‘국민의 힘’이란 당명에 걸맞게 당 안팎 구분 말고 세상의 모든 인재를 구한다는 열린 자세로 부산시장, 서울시장, 그리고 차기 대권 주자군의 면모부터 선보여라. (이미 필자는 지난 5월 27일 자 본란을 통해 국민 감동을 폭발시킨 미스·미스터트롯을 본떠 백가쟁명의 대난장을 펼쳐서 미래 대한민국을 이끌 새 리더를 발굴하자고 전격 제안한 바 있다!) 새로 출범한 ‘국민의 힘’은 추미애 블랙홀에서 허우적거릴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추석 밥상에 올릴 야권의 차기 주자들을 호명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