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에게

시멘트 계단 틈새에

풀 한 포기 자라고 있다

영양실조의 작은 풀대엔

그러나 고운 목숨 하나 맺혀 살랑거린다

비좁은 어둠 속으로 간신히 뿌리를 뻗어

연약한 몸 지탱하고 세우는데

가끔 무심한 구두 끝이 밟고 지날 때마다

풀대는 한 번씩 소스라쳐 몸져눕는다

발소리는 왔다가 황급히 사라지는데

시멘트 바닥을 짚고서 일어서면서 그 뒷모습을 본다

그리 짧지 않은 하루해가 저물면

저 멀리에서 날아오는 별빛을 받아 숨결을 고르고

때로는 촉촉이 묻어오는 이슬에 몸을 씻는다

그 생애가 길지는 않을 테지만

그러나 고운 목숨 하나 말없이 살랑거린다

문효치(1943~)

아침저녁으로 살에 닿는 기운이 바뀌었습니다. 과연 어김없습니다. 고난이라고 말할 정도의 변화무쌍한 기후(무절제의 에너지 문명이 야기한 지구의 몸살이라고 합니다)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절망 직전까지 밀어붙이다가도 때가 되면 꺾이는 이치가 어그러진 적은 없으니 먼 길 오신 ‘가을’에게 투정 섞어 인사합니다. “왜 이제야 오십니까!” 목숨 맺어 사는 것이 인간만은 아닙니다. 무릎 구부려야 보이는 여뀌나 씀바귀나 질경이들, 바닥에 붙어 사는 식물들이 열매 맺어 머리에 이고 있는 것 보면 그냥 그대로 우리 할머니 같습니다. 혼신으로 순응한 삶. 온갖 핍박에도 가난에도 그대로 순응한 생명. 서글픈…. 그 가난한 살림처럼 낮게 흘러가는 시의 어조 속에 그러나 번쩍 빛나는 암시가 있으니 “발소리는 왔다가 황급히 사라지는데/ 시멘트 바닥을 짚고서 일어서면서 그 뒷모습을 본다”가 그것입니다. ‘황급한 발소리’를 애써 ‘바닥’ ‘짚고서 일어서면서 본다’는 심사에 오래 눈길이 머뭅니다. 돌올한 역동성입니다. 혁명의 기운 같은 것이 숨어 있습니다. 단박에 평범한 서정성을 털어내고 있습니다. 순응의 고갱이 속에는 늘 혁명의 씨앗이 숨어 있지요. 새 가을이 하는 일들, 유심히 보며 배울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