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질병과 패션, 입고 신는 것에 의학이 숨어 있다.

중년의 회사원 M씨. 그는 매일 워커를 신고 다닌다. 워커는 발목 위로 올라온 구두다. 작은 형태의 군화 같은 것을 한여름에도 신는 걸 보면, 나름 특이한 패션이다. 남들은 신선한 시도라 평하지만, 실은 M씨는 발목 관절 불안정증 환자다.

고등학교 시절 축구하다 발목을 접질렸다. 한의원서 침 맞고 이내 붓기와 통증이 사라졌다. 침은 생리학적인 치료는 가능하나, 늘어난 인대를 되돌리는 해부학적 처치에는 부족하다. 통증이 사라졌다고 걸어 다녔기에 인대가 늘어난 채로 고착화됐다. M은 발목 관절이 인대로 단단히 잡혀 있지 않고 느슨하게 흔들리는 상태가 됐다.

파란 신호등이 꺼질 때 빨리 뛴다든지, 다가오는 지하철을 놓치기 싫어 갑작스레 달려갈 때 영락없이 발목이 휘청한다. 그래서 나온 해결책이 워커였다. 참고로 운동량이 왕성한 청소년 시기에는 발목을 접질리는 일이 많은데, 반드시 작은 뼛조각이 찢겨 나온 게 있는지 엑스레이로 확인하는 게 좋다. 최소 2주 이상은 크고 작은 깁스를 하길 권장한다.

조그만 카페를 운영하는 40세 K씨는 동네서 멋쟁이로 통한다. 허리 벨트 대신 다양한 멜빵을 매고 다닌다. 어느 날부터 허벅지 바깥쪽 피부가 시렸다. 때론 화끈거리고 따가웠다. 척추 디스크 탓인가 해서 병원에 가봤더니, 그게 아니었다. 원인은 넓적다리 감각 이상증이었다. 허벅지 바깥쪽 감각을 담당하는 신경은 척추에서 나와 골반뼈 앞쪽을 타고 내려가는데, 이 부위가 눌려서 생긴 현상이다.

K씨는 평소 벨트를 매고 다녔는데, 최근 뱃살이 불면서 허리춤이 타이트해졌다. 그로 인해 골반 앞으로 지나가는 신경이 눌렸던 것이다. 느슨한 허리 바지와 멜빵으로 바꾸자 신경통은 금세 사라졌다. 이런 현상은 갑자기 살이 찌거나 임신부, 각종 공구를 허리 벨트 춤에 줄줄이 매달아 놓고 일하는 인부에게 잘 일어난다.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

질병과 패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지만, 입고 신는 것에 질병이 감춰져 있고 의학이 자리 잡은 경우가 꽤 많다. 워커 M씨도, 멜빵 K씨도, 질병을 핑계로 새로운 옷차림에 나선 ‘칭병(稱病)' 패션이다.

항상 스카프로 멋을 내는 L씨. 그녀는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환자다. 목 앞에 난 수술 흉터를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은 참에 다양한 스카프로 멋을 낸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아저씨가 사타구니에 바싹 달라붙은 삼각 팬티를 입고 있다면(대중 목욕탕에서 종종 그런 경우를 본다), 남다른 사연이 있다고 봐야 한다. 고환이 유난히 아래로 늘어진 사람은 움직일 때 위쪽 ‘고환 줄기’가 당겨져 통증이 생길 수 있다. 그런 남성에게는 사각 대신 ‘삼각’이 처방전이다. 고환 수술을 받았으면 출혈을 줄이기 위해 한 사이즈 작은 삼각 팬티가 권장되곤 한다.

이른 아침 출근길 버스서 마주친 선글라스 여성은 퇴근길 간호사일 수 있다. 밤샘 근무를 하는 사람은 일 마치고 집에 갈 때 햇빛 노출을 최소화해야 빨리 잠들 수 있다. 아침 햇살은 깨어나라는 신호이기에 낮 근무자에게는 좋으나, 밤 근무자에게는 수면을 방해하는 요소다. 날밤 샌 자에게 선글라스는 수면 보호기다.

폭염에도 반팔 소매보다 긴 와이셔츠를 입는 사람 중에는 감추고 싶은 과거가 있는 이들이 있다. 어린 시절에 한 자살 시도로 손목 안쪽에 칼자국 상처가 있거나, 철 없던 시절에 한 과한 문신이 남아 있는 경우다. 인생의 모든 행적은 몸 어딘가에 흔적을 남기는 법이다.

당뇨병 클리닉에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고 오고, 얼굴이 햇볕에 그을려 있다면 혈당이 잘 관리되고 있다는 신호다. 우울증 클리닉에 곱게 화장을 하고 나타났다면 기분이 좋아지고 있다는 표시다. 어르신이 매일 같은 옷만 입으려 한다면 치매 징조일 수 있다. 스키니진 매니아 젊은 여성이 속을 쓰려 하면, 복압 상승으로 인한 역류성 식도염일 가능성이 높다. 긴 넥타이 자락에는 세균이 잘 붙는다. 진료 의사가 나비 넥타이를 매고 있다면, 감염 관리를 신경 쓰는 의사로 보면 된다.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나 장기적으로 항암 치료를 받는 환자가 옷차림을 화려하게 하고 다닐수록 치료 결과가 더 좋았다는 연구가 있다. 차려 입으니 기분이 좋아지고 병을 극복하려는 기운도 북돋았다는 얘기다. 패션이 투병 수단인 셈이다. 코로나와 마스크로 지쳐가는 요즘이다. 멋도 살리고, 몸도 살리는 패션을 가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