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노을을 배경으로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워싱턴 D.C. 내셔널 몰의 링컨 기념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을 본뜬 기념관은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방문객들로 북적인다.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유명하고 대중에게 사랑받는 사람을 꼽으라면 누구일까? 링컨이다. 워싱턴 D.C. 내셔널 몰의 ‘링컨 메모리얼(Lincoln Memorial)’에 가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링컨을 기리는 기념관은 워싱턴 기념탑 정서(正西)에 있다. 이곳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해가 져 어둑해진 후에도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 곳곳에서 몰려드는 인파는 줄지 않는다. 그 수가 내셔널 몰을 장식하고 있는 다른 대통령들-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기념물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으로 많다.

제퍼슨 기념관과 마찬가지로 링컨 기념관도 고대 신전을 닮았다. 다만 제퍼슨 기념관이 고대 로마제국의 판테온을 따랐다면, 링컨 기념관은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본떴다. ‘민주주의’를 매개로 링컨과 아테네가 시공을 초월해 서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남북전쟁 당시의 36개 주(州)를 상징하는 같은 수의 열주(列柱)는 강건한 도리아 양식으로 투박하지만 힘이 있다. 다양한 사람들과 뒤섞여 높은 계단을 올라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면 거대한 링컨의 좌상(坐像)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후광으로 신전 안은 터져 나갈 듯하고, 최면에 걸린 듯 모두는 링컨을 올려다보고 있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와서 링컨을 우러러보고 있는 것일까?

극단의 시대를 살아가다

링컨은 ‘격동기’라는 표현조차 부족한 ‘극단의 시대’를 살았다. 그의 대통령 재임 기간 중에 미국은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전을 치렀다. 남북전쟁(1861년 4월~1865년 4월)으로 알려진 내전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전쟁이었다. 인명 피해도 컸지만, 오늘날까지도 그 상흔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전쟁에서 링컨이 보여준 도덕적 용기, 불굴의 의지, 탁월한 정치력, 미래에 대한 비전은 북부 승리의 원동력이었다. 그 결과 노예제도는 폐지됐고, 합중국은 살아남아 비상하기 시작했다. 그토록 거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링컨의 시작은 한미했다.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은 1809년 12월 2일 켄터키주 호젠빌(Hodgenville) 인근의 통나무로 지어진 오두막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가난한 개척농이었고, 어머니는 링컨이 아홉 살 되던 해에 죽었다. 흙수저란 표현조차 무색한 환경이었지만 링컨은 부모나 사회를 탓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힘썼다. 독학으로 변호사가 됐지만 사업에 실패하고, 선거에 여러 차례 낙선한 이야기는 새삼스러울 것 없이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실패를 극복하고 도전하기를 거듭하면서 링컨은 더 나은 인간이 됐고, 더 성숙한 정치가로 성장했다.

당시는 날 선 분열과 격한 증오의 시기였다. 원인은 노예제도에 있었다.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하나의 연방국가를 세우기 전부터 지역적으로 많이 달랐다. 식민지라는 처지만 같았을 뿐, 역사도 전통도 문화도 사회경제적 토대도 제각각이었다. ‘초창기 13주는 13국가’라는 자조적 표현이 어색하지 않았다. 여러 차이점 중 가장 중요했던 것은 산업구조와 문화적 토대였다. 남부는 식민지 건설 초기부터 대농장 중심의 농업과 귀족 문화를 바탕으로 성장했다. 북부는 자영농 중심의 농업과 수산업, 상공업 등 다양한 산업을 바탕으로 훨씬 평등한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대농장을 경영해야 했던 남부는 점차 아프리카에서 수입된 노예 노동에 의존했다. 권력과 부, 사회적 지위는 소수의 대농장주가 독점했다. 북부는 그런 남부를 경멸했다. 남부에서 목화재배가 확산되고 노예 노동이 증가하면서 남북 간의 갈등은 격화됐다. 미국의 영토가 서부로 확산되면서 새로운 주가 탄생할 때마다 남과 북은 신생주를 노예주로 할 것인지 자유주로 할 것인지를 두고 다퉜다.

내전을 승리로 이끌다

자유와 평등을 내세운 북부는 노예제도의 확산에 반대했다. 주(州)의 권리와 남부의 특수성에 기대어 남부는 노예제도 확산에 전력했다. 무능하고 비겁한 대통령들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사태는 극단을 치달았다. 결국 노예제도 확산에 명확하게 반대하는 링컨의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전쟁은 불가피해졌다. 위대한 이상주의자인 동시에 탁월한 현실주의자였던 링컨은 전쟁을 지지한 적이 없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경멸하기보다는 이해하고 인정하는 사람이었던 링컨은 노예제를 혐오했고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남부 사람들을 탓하지는 않았다. 남부인의 죄는 노예제를 기반으로 한 남부에서 태어났을 뿐이었다. 링컨은 연방의 틀 안에서 합법적으로 노예제의 확산을 막고 장기적으로 근절시키려 했다. 불가능한 목표였다. 남부의 각 주는 연방 탈퇴를 선언했고, 전쟁을 선택했다(1861년 4월 12일). 링컨은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헌법을 수호하고 연방을 지키겠다는 자신의 맹세를 지켜야만 했다. 전쟁은 모두의 예상과 달리 장기화됐고 막대한 피해를 냈다. 모든 난관에도 불구하고 링컨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 과정에서 노예해방을 선언했고, 수정헌법 13조를 통해 노예제도에 종지부를 찍었다. 압도적인 지지로 재선에 성공했으나 취임 직후 워싱턴 포드 극장에서 총에 맞아 영면했다(1865년 4월 15일).

민주주의와 관용의 유산을 남기다

링컨은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지켜냈고, 노예제를 폐지시켰다. 눈에 보이는 업적이다. 인류 모두에게 더 중요한 무형의 유산은 민주주의에 대한 집념과 관용의 정신이다. 남북전쟁 최고의 격전지였던 게티즈버그에서 행했던 짧은 연설(1863년 11월 19일)에서 링컨은 민주주의의 핵심을 정의했고, 민주주의를 영원히 지켜내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다. 1865년 3월 4일 워싱턴에서 행해진 두 번째 취임식에서 링컨은 취임사를 통해 전후 처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With malice toward none, with charity for all, (…) to bind up the nation’s wounds (…)’

‘누구에게도 악의를 품지 말고, 모두에게 관용을 베풉시다.’ 이것이 처절한 전쟁에서 승자가 된 대통령의 정치적 견해였다. ‘(전쟁으로 입은) 국가의 상처를 보듬읍시다.’ 이것이 적의 생사여탈권을 쥔 북부군 총사령관의 정책이었다. 링컨은 그토록 염원하던 승리의 순간에 승자에게 패배한 적을 용서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역사적인 탄원이었다. 왜 그랬을까?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는 정의보다 관용이 필요하다는 확신, 복수보다 용서가 위대하다는 신념, 과거보다 미래가 중요하다는 비전 때문이었다. 동시대인도, 후예도 그 두 가지 정신적 유산의 중요성을 알았다. 링컨 기념관 안의 동상을 바라보고 섰을 때 왼쪽 벽면에 게티즈버그 연설을, 오른쪽 벽면에 2차 취임사를 새겨 넣은 이유다.

링컨 기념관 내부를 홀로 장식하고 있는 링컨의 좌상. 로마제국에서 권력과 권위를 상징하는 파스케스로 의자를 장식한 것이 이채롭다. /게티이미지뱅크

두 연설문이 적힌 벽면을 양쪽으로 두고 가운데 서서 링컨을 마주하면 너무나 많은 일화와 생각이 떠오른다. 그중 가장 강렬한 건 정계에 처음 입문하던 스물세 살 링컨이 일리노이 생거몬 카운티 주민들에게 행한 연설이다. “저는 동료 시민들의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것 외에 다른 야망은 갖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이 야망을 이룰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만약 다른 정치인이 이렇게 얘기한다면 위선이라고 코웃음 칠 것이다. 그러나 링컨의 저 말을 떠올리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의 인생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관용, 통합의 유산을 남긴 링컨은 역사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겼다. 오늘날 그런 리더를 민주주의의 종주국인 미국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세월이 지나도 링컨 기념관의 가치가 갈수록 빛날수밖에 없는 이유다./워싱턴 D.C.=송동훈

대니얼 데이 루이스 주연의 영화 ‘링컨(Lincoln‧2012년)’.

링컨의 고뇌, 최고의 영화

링컨을 다룬 최고의 영화는 대니얼 데이 루이스(Daniel Day Lewis) 주연의 ‘링컨(Lincoln‧2012년)’이다<사진>. 주제는 링컨의 인생이나 참혹한 남북전쟁이 아니다. 영화는 오로지 노예제도 폐지를 명시한 ‘수정헌법 13조’ 통과를 둘러싼 1865년 초 몇 개월간의 진실과 내막만을 다룬다. 링컨의 성품, 고뇌, 신념, 비전이 놀랍도록 생생하다. 동시에 노예해방에 반대하며 백인 남성이 흑인과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정적(政敵)들의 힘찬 목소리도 담겼다. 불과 155년 전의 일이다. 우리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비웃을 수 있을까? 영화는 우리 역시 후대(後代)로부터 손가락질받을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성찰할 기회를 제공한다./송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