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 논설고문

한국과 일본이 서로를 잊고 산 지 3년 반이 됐다. 관계가 악화됐다기보다 관계가 끊어졌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듯하다. 그러다가 과거의 불편한 일이 떠오르면 벌떡 일어나 한참 감정적 총질을 주고받다가 제풀에 수그러드는 사태를 반복하고 있다.

한국은 일본을 가장 잘 아는 나라가 한국이라고 생각한다. 오랜 세월 지겨울 정도로 많은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일본을 훤히 꿰뚫고 있다는 이런 자신감은 일본의 ‘아베(安倍晋三) 현상’ 앞에서 힘없이 무너진다. 아베 총리는 한국에서 비호감(非好感) 1위로 꼽히는 외국 지도자다. 아베 시대 한-일 관계는 ‘일본 내 혐한(嫌韓)’과 ‘한국 내 반일(反日)’이란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갔다.

아베는 헌법 제도가 도입된 1889년 이래 최장수(最長壽) 총리다. 2006년 1차 총리 재직 기간 1년을 더하면 집권 기간은 총 8년 8개월에 이른다. 일본 국민은 왜 아베에게 이렇게 지속적 지지를 보냈을까. 그의 임기 후반은 여러 정치 스캔들로 얼룩졌고 사임 직전 지지율은 37%로 떨어졌다. 사흘 후 극적 반전(反轉)이 나타났다. 지지율이 15%포인트나 치솟고, 아베 시대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국민이 74%에 이르렀다. 총리 경선에서 ‘아베 정치 계승(繼承)’ 구호를 내건 최측근 스가(菅義偉) 관방장관의 승리가 반자동(半自動)으로 확정됐다. 스가는 한일 관계에서도 아베 노선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아베 현상’과 ‘아베 사임 이후의 현상’은 ‘우리가 모르던 일본의 얼굴’이다. 아무리 좋은 친구도 나의 약점과 단점을 터놓고 지적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비판과 반대가 필요한 것이다. 그들이 나의 약점과 단점을 공격하기에 그걸 활용해 자신의 약점과 단점을 파악하고 보강(補强) 할 기회를 갖게 된다. 그런 뜻에서 문재인 정권 3년 4개월을 ‘아베의 시대’에 비춰볼 수 있다.

아베는 한국에는 국수주의(國粹主義) 반동(反動) 정치인으로 알려졌다. 사실이긴 하지만 그것은 아베의 반쪽 얼굴이다. 아베 정치의 기본은 경제적 성과를 먼저 거둬야 정치적 목표도 달성할 수 있다는 ‘돌아가는 정치’다. 그는 집권 초기 정치 이벤트를 접고 경제 회생(回生)에 전력을 기울였다. 당시 일본은 엔(円)화 가치 상승이 수출을 막고, 주식 시장은 바닥을 기고, 실업률은 치솟고, 일본인의 표정에선 과거의 자신감이 사라졌다. ‘3개의 화살’로 표현하는 경제 정책이 약효(藥效)를 발휘하고 지지율이 동반 상승하자, 그는 높아진 지지도를 헌법이 금지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합헌(合憲)이라는 헌법 해석을 이끌어내는 추진력으로 활용했다. 개헌(改憲) 없이 개헌 효과를 거둔 것이다.

아베 외교는 대미(對美) 관계가 본론(本論)이고 다른 외교는 부록(附錄)일 뿐이라는 요점(要點)주의다. 미국과는 적당히 거리를 벌리고 중국과는 그만큼 더 가깝게 지내는 것을 핵심으로 한 민주당 정권의 구름 잡는 식 ‘동북아 공동체 구상’과는 정반대로 갔다. 민주당 정권의 미국과 ‘거리 두기 외교’는 안보 갈등에다 수출의 목을 죄는 엔고(円高) 압력을 불러왔고, 영토 문제를 두고 중국과 무력 충돌 일보전(一步前) 사태로 밀려갔으며, 러시아와의 북방 영토 반환 교섭은 현관(玄關) 문턱을 넘지 못하고 겉돌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찾은 것은 이 무렵이었다. 일본 정치인만이 아니라 일본 국민도 이 독도 방문을 대미 외교라는 주춧돌이 흔들린 부작용의 하나로 기억하고 있다.

아베의 대미 편중(偏重) 외교는 이 사태에 대한 아베식 해결책이었다. 외교의 역설(逆說)은 이런 편중 외교가 중국과의 관계를 오히려 안정시켰다는 것이다. 일본이 중국에 대한 헛꿈을 깨자, 중국도 일본을 미국 울타리에서 끌어내보겠다는 기대를 접고 서로의 이익을 챙기는 실용 외교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아베 시대의 막(幕)이 닫히자 재계는 ‘대미 외교 성공이 경제의 등받이가 됐다’고 했고 그 반대편 노동계는 ‘일정한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아베 정치가 보기보다 간단한 정치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아베는 국무회의에서 말을 아꼈다고 한다. 상반된 입장의 활발한 토론을 유도한 뒤 막판에 성공 가능성이 높은 정책에 올라탔다. 아베 시대는 ‘성공한 기회주의의 시대’라고 할 만하다. 만일 그 기회주의가 민생(民生)을 안정시키지 못하면서 선동적 정치 구호에 매달리는 것과 외교의 주춧돌을 흔들면서 안보가 튼튼해지기를 기대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사실을 깨우치는 내용이라면, 한번 되짚어 본다고 해서 반드시 손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