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렁이는 물결의 망망한 발해(渤海)를 앞에 둔 당나라 태종 이세민(李世民)은 겁을 잔뜩 먹었다. 그러나 큰 배에 설치한 장막 안으로 이끌려 들어가 술잔을 기울이다 어느덧 고구려 침공을 위한 바닷길 중간에 서고 만다.

‘삼십육계(三十六計)’의 첫 계책인 만천과해(瞞天過海)의 스토리다. ‘하늘 같은 황제[天]를 속여[瞞] 바다를 건너다’라는 얽음이다. 그렇듯 중국인에게 바다라는 존재는 어려운 대상이었을지 모른다. 우선 중국의 전통적 지칭인 중원(中原)이 그렇다.

이 단어는 ‘가운데 들판’이란 뜻이다. 육지 한복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중국은 그렇듯 땅에 묶여 땅만을 끼고 살아온 문명이다. 땅보다 훨씬 크고 넓은 바다는 두렵기 짝이 없다. 물길이 무서워 가장 큰 강인 장강(長江)을 ‘천연의 장애’란 뜻의 천참(天塹)으로 곧잘 적은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큰물을 두려워하는 심리는 잔잔한 물결을 향한 열망으로 번진다. 그를 지칭하는 성어 풍평랑정(風平浪靜)은 인생길에 선 중국인들의 큰 희구(希求)다. 가까운 이가 먼 길 떠날 때 건네는 인사인 ‘일범풍순(一帆風順)’ ‘일로순풍(一路順風)’ 또한 멀고 험한 물길에서 순풍에 돛 단 듯 잘 헤쳐가라는 바람을 담았다.

요즘 중국인은 깊은 물 구간인 심수구(深水區)라는 말을 곧잘 쓴다. 위기 영역에 들어설 때 사용하는 단어다. 큰물 앞에서 공포를 드러냈던 중원 사람들의 전통적 심리가 깃든 현대 중국의 표현이다.

중국의 바닷길이 최근 더 험해졌다. 굴기(崛起)하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해양 군사력이 중국 주변 해역을 모두 포위하고 있어서 그렇다. 일본과 동중국해, 아세안과 남중국해, 대만과 대만해협 등에서 부딪치는 게 그런 분위기다. 덧붙이자면, 꾀를 내 넘었던 바다 건너편에서 당나라는 고구려에 패했다. 육지에서 바다로 나서는 일은 꾀 이상의 단단한 마음 자세가 더 필요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