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 글지기 대표

오징어 윤(允), 탱크 설(卨), 쌍토 규(圭)…. 오래전 막 교열 배울 때 낯선 한자 훈(訓)이 더러 있었다. 오징어·탱크를 닮았대서, 흙토(土)가 겹쳤대서 써먹는 새김이었다. 한 사람이 교정쇄를 읽으면, 짝은 활자를 제대로 뽑았는지 원고와 대조할 때 필요했다. 숱한 글자를 다 꿰지 못할뿐더러, 서로 쉽게 알아듣기 좋았으니까. 물론 정식으로 지아비 부(夫) 꽃부리 영(英) 하기도 하고, 고민 민(悶) 울산 울(蔚) 식으로 다른 쓰임새를 들어 소통하기도 했다. 음은 기본이요 뜻도 얼추 알아야 하는 일이었다. 덧붙여 쓰기도 드문 요즘, 한자와 얽힌 말글살이는 어떨까.

고군분투(孤軍奮鬪), 홀로 또는 적은 수가 힘들게 싸운다는 뜻인데…. ‘관광 업계와 항공사는 코로나19 백신 개발·보급 때까지 온라인 홍보전을 벌이며 고군분투 중이다.’ 어느 한 회사가 외로이 애쓴다면 모를까, 관광·항공 업계 전체가 달려든 일을 고군분투라니 터무니없다. ‘악전고투(惡戰苦鬪)’가 들어맞는 말인데…. 같은 음(고투)이 섞여 헷갈린다면, 외로움(孤)과 괴로움()이 엄연히 다름을 새겨두면 좋겠다.

아르헨티나가 러시아월드컵에서 크로아티아와 붙었을 때 ‘경기 종료 때까지 고군분투했지만 끝내 패배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축구에서 여러 나라가 한편 먹지 않는 이상 어찌 아르헨티나가 고군분투한단 말인가. 그냥 ‘분투(있는 힘을 다해 싸움)’라 해야 옳다.

자기가 다른 어떤 존재인 양 처신함을 말하는 ‘자처(自處)’도 툭하면 샛길로 빠진다. ‘코로나19가 빠르게 번져 격리를 자처한 주민들에게 생필품이 지원됐다.’ 얘긴즉슨 주민들이 나서서 격리했으니 ‘자청(自請·스스로 청함)’을 잘못 쓴 것이다. “반성컨대 국회 외교가 국민의 불신을 자처한 측면이 있다.” 전임 국회의장이 한 말이다. ‘자초(自招·스스로 어떤 결과를 일으킴)’를 자처와 헷갈리다니….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며 권력층 부정(不正) 감싸기를 자청하는 사람이 널렸다. 개망신 자초하느라 분투하고 있으니 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