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입력 2023.11.25. 03:00
일러스트=유현호

“윤석열 대통령이 개인 투자자에게 큰 피해가 갈 수 있다면서, 근본 대책이 나올 때까지는 공매도 금지는 불가피하다고 밝혔습니다.” 11월 14일, KBS 9시 뉴스를 본 이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음직하다.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이 헤드라인으로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펴는 정책은 국민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니 공영방송이 보도하는 건 너무도 당연하지만, 윤 대통령 취임 후 1년 반은 이 당연함이 전혀 구현되지 않았...

전봉관 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입력 2023.11.18. 03:00
일러스트=한상엽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을려고 왔던가/ 비린내 나는 부둣가에 이슬 맺힌 백일홍/ 그대와 둘이서 꽃씨를 심던 그날도/ 지금은 어디로 갔나 찬비만 내린다.”(‘선창’·1941) ‘선창’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데뷔 2년 차 신인 가수 고운봉은 일약 조선 최고의 인기 가수 반열에 올랐다. 이 노래는 대한민국에서 80년 이상 수많은 가수가 무대에 올렸고, 노래방 애창곡 순위에서도 빠지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1997년 조영출의 ...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입력 2023.11.11. 03:00
일러스트=유현호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일명 ‘검수완박’은 이재명 대표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야당 인사들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법안이다. 이 대표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과 청담동 술자리 의혹의 김의겸 의원을 경찰이 불송치한 데서 보듯, 검수완박은 민주당이 의도한 바를 상당 부분 충족시켜 주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검수완박으로 피해받는 국민이 있다. 국가·도시 비교 통계 사이트 넘베오(Numbeo)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세계 치안 순위에서 2...

전봉관 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입력 2023.11.04. 03:00
일러스트=한상엽

“기마순사는 학생 떼를 제지하려고 말고삐를 휙 돌린다. 그와 동시에 도청 편에서는 별안간 으악! 소리가 들리자 후두두 후두두 콩 볶는 소리가 바로 발 밑에서 나듯이 난다. 그 한순간이 지나니까 사방이 괴괴하여졌다. (…) 그러나 기마순사에게 길이 막혀 갈팡질팡하던 학생들만은 그 고함과 총소리에 피가 다시 끓는지, 말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 틈을 족제비처럼 살살 빠져서 굳게 닫힌 철창문을 바라보고 단숨에 뛰어들어간다”(염상...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입력 2023.10.28. 03:00
일러스트=유현호

“근데 국감장이 이정섭 차장의 인사 청문회는 아니지 않습니까?” 지난 23일 법사위 국감에서 이원석 검찰총장이 민주당 김의겸 의원에게 한 답변이다. 그날 김의겸은 이정섭 차장검사가 크리스마스이브에 모 재벌 그룹 부회장과 같이 찍힌 사진을 보여주며 ‘자신이 수사한 그룹과 만나는 게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정섭은 해당 재벌을 수사한 적이 없었고, ‘코로나 때 폐쇄된 스키장을 이정섭 가족이 전세 냈다’는 김의겸의 주장도 ...

전봉관 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입력 2023.10.21. 03:00
일러스트=한상엽

만담가 신불출은 한국 최초의 ‘국민 예능인’이었다. 신영일, 신흥식 등 본명도 증언과 기록마다 다르고, 출생 연도도 남한은 1905년, 북한은 1907년으로 다르게 기록된다. 사망에 대해서도 북한 자료에는 그가 뇌출혈로 투병하다 1971년 사망했다고 하지만, 요덕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탈북한 전직 배우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1960년대 초 종파주의자로 숙청돼 1976년쯤 요덕수용소에서 영양실조로 사망했다고 한다. 신불출이라는 ...

정시행 기자
입력 2023.10.14. 03:00
본지 '아무튼, 주말'이 만 나이 통일법 시행 100일을 맞아 SM C&C에 의뢰한 설문조사한 결과, 실제 일상생활에서 만 나이로 연령을 말한다는 사람은 36.1%로 3명중 1명이었다. 세는 나이를 쓴다는 이는 35.6%로 만 나이 사용자와 별 차이가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만 나이를 쓰지 않는 경우가 국민 3명중 2명(64%)이란 얘기다. /그래픽=송윤혜 기자, 사진=오종찬 기자

경기도에 사는 여성 박모씨는 39세다. 원래 세는 나이로는 41세지만, ‘만(滿) 나이 통일법’에 따라 두 살이 어려졌다. “아직 30대라니 기분 좋다”고 한다. 그런데 만 4세인 그의 딸은 “난 네 살 아기가 아니다. 여섯 살로 불러달라”고 한다. 박씨는 “우리 모녀가 서로 다른 셈법을 택해 나이 차도 35세에서 33세로 줄었다”며 웃었다. 벤처 기업을 창업한 남성 김모씨는 1975년 1월생이다. 법적으로 48세인데도 “난 ...

김황식 전 국무총리
입력 2023.10.14. 03:00
일러스트=김영석

10월 3일 개천절은 우리나라의 중요한 국경일이지만, 독일에서는 ‘독일 통일의 날’로 가장 중요한 국가 기념일입니다. 지난달 헌정회가 발간하는 월간지 ‘헌정’ 편집실에서 ‘독일 통일 33주년과 우리의 교훈’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으니, 잊고 있던 일을 기억해내도록 하는 요청을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나름대로 독일 통일 과정을 공부하며 느꼈던 역사의 역동성과 경외심, 독일에 대한 부러움은 한동안 잊고 지냈습니다. ...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입력 2023.10.14. 03:00
일러스트=유현호

“후보자 기부 내역을 정리해봤습니다. 종교계에는 기부를 많이 하셨던데, 문화예술계 기부금은 후보자 35만원, 배우자 42만원, 이게 전부였습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인사 청문회에서 민주당 임오경 의원이 질의한다. 고민정, 김남국 같은 네임드에 비해 조명이 덜 됐을 뿐, 임오경도 ‘무식’ 부문에선 결코 그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유명 핸드볼 선수 출신이지만, 지역 현안은 물론 정치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던 그녀가 국회...

길해연 배우
입력 2023.10.14. 03:00
롱다리 가수 김현정은 “다 돌려놔/ 너를 만나기 전에 내 모습으로/ 추억으로 돌리기엔 내 상처가 너무 커~”로 흘러가는 히트곡 ‘멍’으로 유명하다. 1999년 당시 모습. /이덕훈 기자

“가수 김현정이 누나 좀 만나고 싶다는데?” 후배의 전화를 받은 나는 몇 번이고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롱다리 미녀 가수 김현정? 다 돌려놔! 그 김현정?” 그 유명한 가수가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는 사람을 왜 만나고 싶다는 건지 이유를 묻기도 전에 내 입에선 “그래, 그러자”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하자마자 “앗싸!” 신이 난 내 입에선 “다 돌려놔/ 너를 만나기 전에 내 모습으로/ 추억으로 돌리기엔 내...

김신회 작가
입력 2023.10.14. 03:00
일러스트=한상엽

고등학생 때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당시에는 내내 붙어 다녔지만 하는 일과 사는 곳이 달라지면서 연락이 끊긴 이래 가끔 그리워만 하면서 지냈다. 손가락 하나로 전 세계로 연락이 가능한 시대에 그리워만 하다니 견우와 직녀야 뭐야. 하지만 우리는 어느새 게으른 어른이 되었다. 고등학생 시절의 우정이 과속방지턱 없이 쭉 뻗은 도시고속도로라면, 어른의 우정은 요철이 극심한 산길이다. 질병 및 노화, 경기 불황이나 대출금 또는 가정불...

박종인 기자
입력 2023.10.07. 03:00
2004년 충남 공주 무령왕릉을 방문한 일본 천황가 아사카 토모히코씨(오른쪽). 아사카씨는 당시 일본 아키히토 천황이 "무령왕은 내 외가쪽 조상"이라고 밝힌 지 3년 만에 무령왕릉을 참배하고 제사용품을 기증했다. 그 기증품이 지금 실종상태다. /공주시

2004년 일본 천황가(天皇家)가 무령왕릉 참배 후 충남 공주시에 기증한 향로와 침향이 20년 되도록 행방불명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보다 3년 전 당시 아키히토 천황은 “천황가가 외가 쪽으로 무령왕 후손”이라고 밝힌 바 있다. 언제 사라졌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한 공주시는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고 “분실 기증품을 찾는 노력을 지속해 나갈 계획”이라고만 했다. 2004년 8월 3일 당시 일본 아키히토 천황 5촌 당숙인 아사카 도모히...

김황식 전 국무총리
입력 2023.10.07. 03:00
일러스트=김영석

추석 다음 날 아침, 김연준 신부님에게 문자 한 통을 받았습니다. 소록도에서 봉사하셨던 마가렛 피사렉(88) 간호사께서 추석날 오후 오스트리아에서 급성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저는 곁에 있던 아내에게 그 소식을 전했습니다. 아내는 혼잣말로 “그분, 천국에 가셨겠네!”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오스트리아 출신 두 간호사 마리안느 스퇴거(89)와 마가렛 피사렉은 인스브루크 간호학교를 졸업하고 1960년대 초반 꽃다운 나...

전봉관 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입력 2023.10.07. 03:00
일러스트=한상엽

1945년 세모(歲暮), 한국인의 관심은 모스크바에서 열린 미·영·소 외상(外相) 회의에 쏠렸다. 성급한 언론들은 협정 발표 전에 외신을 인용해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이라는 오보를 내기도 했다. 12월 28일(한국 시각) 모스크바에서 공포한 ‘조선 문제에 대한 3상 협정’의 주요 내용은 “조선 임시 민주주의 정부 수립, 미소 공동위원회 설치, 미·영·중·소 4국 주도로 5년간 신탁통치 실시” 등이었다...

김경민 서울대 교수·도시계획전공
입력 2023.10.07. 03:00
지난 8월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63빌딩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서울은 강력한 경제 기능과 매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인구 감소에도 부동산 가격은 상승해 왔다. /오종찬 기자

저출산과 부동산은 어떤 관계일까. 이번 달에 한 독자는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가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미칠 텐데, 절대적 인구가 줄어든다면 집값은 장기적으로 하향 추세인지를 물었다. 또 다른 독자는 “수도권이 아닌 지방은 소멸을 걱정할 만큼 인구 감소폭이 더 큰 상황인데, 지방의 신축 아파트를 사면 바보인가?”라고 질문했다. 저출산의 영향을 살피기 전에, 부동산 수요가 정확히 무엇인지 같이 이해했으면 한다. 부동산 수요는 ...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입력 2023.10.07. 03:00
김병종 화가의 작품 '화홍산수'. 전통적 의미의 산수화는 아니지만 실제로 보면 산수화를 체감할 수 있다. /김병종 화가 제공

“글은 말을 다 담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 밝히지 못한다.” 그래서 ‘그림[상·象]’으로 사물의 뜻을 밝히려 하였다(‘주역’). 그림의 존재론적 이유이다. 그렇다고 모든 그림이 사물(세계)을 제대로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땅을 읽어내려는 풍수학인의 고민도 여기서 시작한다. 그 고민을 전통 산수화가들도 공유하였다. 종병(宗炳·375~443)이 “산수의 정신을 그려야 한다”고 주장한 이래 중국의 역대 화가들은 이 화두를 붙잡고 ...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3.09.23. 03:00
서울 북촌 가회동에 있는 서울시 민속문화재 22호 '백인제 가옥'. 원주인은 경제계 친일파 거두 한상룡이다. /박종인 기자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점 옆에 잘생긴 근대 건축물이 하나 있다. 명칭은 ‘옛 제일은행 본점’ 건물이고 서울시 유형문화재 71호다. 지금은 공사 중이라 가림막에 가려져 있다. 한옥마을로 잘 알려진 북촌 가회동에도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들이 몇 있다. 하나는 ‘가회동 한씨 가옥’이고 또 하나는 ‘백인제 가옥’이다. 탄탄하게 잘 지었고 멋있다. 모두 식민 시대에 만든 집들이다. 한씨 가옥은 서울시 민속문화재 14호, 백인제 가옥은 22...

김황식 전 국무총리
입력 2023.09.23. 03:00
일러스트=김영석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 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김현승 시인의 시 ‘눈물’의 전문입니다. 시인은 눈물을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라고 노래했습니다. 시인...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입력 2023.09.23. 03:00
일러스트=유현호

“윤석열 정권의 전면적 국정 쇄신과 내각 총사퇴를 촉구하며, 한덕수 국무총리 해임 건의안을 즉시 제출한다.” 9월 16일, 더불어민주당의 비상 의원총회에서 결의된 내용이다. 민주당이 왜 이런 결의를 했는지 알 수 없지만, 당대표 단식부터 요즘 민주당이 하는 일에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던 적이 없었으니 그냥 넘어가자. 같은 날 민주당은 다음과 같은 선언도 했다.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은폐 진상규명 특검(특별검사)법 관철...

최여정 작가
입력 2023.09.23. 03:00
일러스트=김영석

뜨거웠던 지난여름,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인생에서 일찌감치 지워버린 두 글자, 그 ‘수영’을 말이다. 스무 살 여름, 물에 빠져 죽을 뻔했다. 나는 지금도 그때 죽음이, 내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치고 지나갔다고 믿고 있다. 새내기 대학생으로서 처음 맞이하는 여름방학, 같은 과 친구 8명과 춘천으로 짧은 여행을 떠났다. 펜션에 짐을 풀고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은 북한강 바나나보트 선착장. 어쩐지 나는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김동식 소설가
입력 2023.09.23. 03:00
일러스트=한상엽

정말 이상한 여자였습니다.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건 길에서 만 원짜리 지폐를 줍게 되면서입니다. 실수가 아니라 누군가 일부러 흘려놓은 돈이었죠.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습니다. ‘저와 결혼할 운명의 남자를 구해요.’ 장난 같아 보였지만, 진짜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습니다. 핸드폰에 저장해 보니 카톡 프로필에 뜬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답더군요.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연락했고, 그녀의 대답에 깜짝 놀랐습니다. “예 맞아요....

정시행 기자
입력 2023.09.16. 03:00
미국 공교육 인프라의 일환으로 초·중·고교마다 십수대씩 구비하고 있는 노란 스쿨버스. 한국이 어린이 안전 차원에서 노란버스를 통학 뿐 아니라 체험학습 등 비상시적 운행에도 전면 도입하도록 했지만, 우리 현실은 전혀 다르다. /미 교육부

이달 초 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 6학년 교실이 눈물바다가 됐다. 담임 교사가 “타고 갈 전세버스를 못 구해 졸업 여행을 갈 수 없게 됐다”고 알리면서다. 학교 밖으로 나가는 체험학습은 모든 학년에서 취소됐다. 학교 측은 “학교로 찾아오는 마술 공연 등으로 대체하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아이들은 아쉬움을 달래지 못하고 있다. 마포의 초등 4학년 교실에서도 같은 이유로 체험학습이 취소되자, 학생들이 “그냥 걸어가면 안 돼요? 우리...

김황식 전 국무총리
입력 2023.09.16. 03:00
일러스트=김영석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자 한 사람을 예수께 데리고 와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하고 묻습니다. 그들은 예수께 올가미를 씌워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이런 질문을 한 것입니다. 돌로 치라고 하는 경우 자신이 가르친 사랑과 용서의 정신에 반할 뿐 아니라 이처럼 사적으로 형벌을 가하는 것은 로마제국 법률을 위...

전봉관 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입력 2023.09.16. 03:00
일러스트=한상엽

“일본 여성을 지키시오. 아랫사람에게 맡기지 말고 당신이 직접 나서도록 하시오.” 1945년 8월 17일, 패전 이후 구성된 히가시쿠니노미야 내각의 첫 각의(閣議) 직후, 국무대신 고노에 후미마로 공작이 경시총감에게 지시했다. 이튿날 경시청 보안과장은 도쿄 요리점 조합장들을 불러 “연합군 장병을 ‘위안’하기 위한 각종 시설을 설치하기로 각의에서 결정했다”며 협조를 요청했다. 8월 23일, 도쿄도 산하 접객업 7개 단체 주도로 ...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3.09.16. 03:00
서울 용산공원 부근 골목에 있는 식민시대 토목회사 하자마구미(間組) 경성지점 건물. 하자마구미는 한강철교와 수풍댐을 시공한 식민시대 대표적인 토목회사다. 하자마구미가 남긴 흔적은 전국 곳곳에 남아 있다. 2012년 당시 국무총리실 산하 ‘대일항쟁기위원회'는 하자마구미를 포함해 299개 일본기업을 전범기업으로 규정했다. /박종인 기자

편집자주: 기억은 추억이 되고 추억은 역사가 됩니다. 역사는 땅에 흔적을 남깁니다. 이 땅 곳곳에 남은 흔적에서 그 역사를 봅니다. 경기도 고양시 항공대 옆에 공동묘지가 있다. 주소는 고양시 화전동 663-9번지다. 묘지 초입에 큼직한 묘비가 있다. 이렇게 새겨져 있다. ‘경성조차장 제3공구내 무연합장지묘(京城操車場 第三工區内 無緣合葬之墓)’. 연고가 없는 분묘를 한데 합장했다는 뜻이다. 뒷면에는 비석을 세운 조직 이름이 새겨...

강성곤 전 KBS 아나운서
입력 2023.09.16. 03:00
일러스트=김영석

나이를 먹고 가을이 오면 옛사람이 그리워진다. 1980~90년대 최고 인기 스포츠는 뭐니 뭐니 해도 복싱. 고(故) 김재영 아나운서는 권투 중계의 달인이었다. 상대 선수가 버팅(머리를 숙여 들이받는 행위)을 자주 하면 “의도적이에요. 매너가 참 안 좋네요” 하고, 우리 선수가 그러면 “상대가 버팅을 유도하고 있어요. 저건 당연한 방어거든요. 세상에 매 맞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했다. 링 주위를 빙빙 돌며 아웃복싱...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국제관계학 교수
입력 2023.09.16. 03:00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 국방부는 육군사관학교 교내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과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흉상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 /연합뉴스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홍범도 흉상을 다른 곳으로 옮기냐 마냐 언론 지상이 시끄러웠다. 여러 의견이 있지만, ‘지금 이런 문제 제기가 무슨 득이냐’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생각이 다르다. 홍범도 논쟁은 지금 대한민국 육군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 볼 기회다. 나는 홍범도 못지않게 홍범도와 그의 독립운동 공적으로 가려진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육사 홈페이지에 따르면 현재 육사에는 조형물이 30여 점 있다...

배준용 기자
입력 2023.09.09. 03:00
한 대형마트에 월요일 의무 휴무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대구광역시는 지난 2월 지역상권 활성화 등을 위해 모든 구·군의 찬성 의견을 토대로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을 기존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변경했다. /뉴스1

“쉬는 날 여유가 있어 ‘마트나 좀 가볼까’ 하면 꼭 휴무예요. 당연히 열었을 거라 생각하고 갔다가 닫힌 걸 보면 저도 모르게 화가 나더라고요.” 부산에 사는 회사원 박모(33)씨는 대형 마트 의무 휴업에 불만이 크다. ‘머피의 법칙’이 꼭 마트 가는 길에 따라붙는다고. 박씨는 “사실 ‘새벽 배송’으로 필요한 식료품을 대부분 구입하긴 한다”면서 “그래도 주말에 모처럼 가족끼리 장 보면서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려 하면 꼭 휴무일에...

김황식 전 국무총리
입력 2023.09.09. 03:00
일러스트=김영석

여름휴가철도 지나갔습니다. 지인들이 저를 만나면 인사로 “어디 좋은 곳에 휴가라도 잘 다녀왔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면 “날마다 휴가나 마찬가지인데 따로 휴가 갈 필요가 있나요” 하고 웃으며 대답합니다. 장난기 섞인 대답이지만 사실입니다. 휴가 명목으로 해외나 국내 명승지를 찾아 떠나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습니다. 나이 탓인지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아내도 제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 대신 일을 겸해 하루이틀 가볍게 국내...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입력 2023.09.09. 03:00
일러스트=유현호

“책값입니다.” 좌파 언론사인 뉴스타파가 대선 사흘 전 터뜨린 녹취 파일의 주인공 신학림이 기자들 앞에서 한 말이다. 그는 녹취 파일 제작 직후 대장동 주역인 김만배에게 1억6500만원(부가세 1500만원 포함)을 받은 게 들통났는데, 검찰은 이 돈을 녹취에 참여한 대가로 봤다. 하지만 신씨는 이게 자기가 준 책 세 권의 대가라고 우겼다. “책이 왜 1억5000이냐? 제가 이 책의 가치를 그 이하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이 ...

길해연 배우
입력 2023.09.09. 03:00
박명성은 제작자를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먼 꿈을 꾸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스태프나 앙상블 배우의 눈으로 바라보고, 낯설지만 매력적인 작품을 향해 모험한다는 뜻이다. /신시컴퍼니

돈키호테, 똥배짱, 작은 거인, 불의 전차, 탱크, 마음의 방화범…. 다 신시컴퍼니 예술감독 박명성의 별명이다. 그는 명실 공히 공연계의 수퍼 히어로이자 대표 제작자이다. 물론 그런 위치에 오르기까지 그의 도전이 매번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망해도 너무 망했다.” “저 사람 다시 공연 제작하긴 그른 것 같아.” 이런 말을 들을 만큼 처참하게 실패한 적도 꽤 있었다. 그때마다 박명성은 “실패와 성공의 차이는 다시 도전하는가, ...

김신회 작가
입력 2023.09.09. 03:00
일러스트=한상엽

작년 여름, 집에 누수가 일어났다. 신축 공동주택이었음에도 어느 날 갑자기 천장에서 물이 떨어졌다. 처음 겪는 일에 전전긍긍하는 사이에 여름이 지나갔고, 이후의 계절은 날카로운 누수의 추억을 글로 써 책으로 엮는 데 보냈다. 에세이 작가는 사적인 비극을 쥐어짜 공적인 결과물을 만드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올여름은 달랐다. 누수 문제를 해결하였고(야호), 누수를 겪은 집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사했다(오예). 아직 정리해야 할 짐...

배준용 기자
입력 2023.09.02. 03:00

당신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투표했는가? 당신이 투표한 후보들은 당선했나, 낙선했나? 당선된 ‘우리 동네’ 기초의원과 광역의원, 자치단체장들은 누구인지, 그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1991년 시군구의회 의원 선거가 열린 지 32년, 전국 동시지방선거가 시행된 지 어느덧 28년이 됐지만, 한국의 지방자치제는 여전히 표류 중이다. 작년 6월에 열린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율은 50.9%. 역대 지방선거 중 둘째로...

김황식 전 국무총리
입력 2023.09.02. 03:00
일러스트=김영석

1980년대 초 법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법관의 근무 실적을 평가하기 위한 ‘법관근무평정제’ 즉 매년 말 법원장이 소속 법원 판사들을 평가하여, 이를 대법원장에게 보고하는 제도를 도입한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젊은 법관 몇 사람이 법원행정처 차장을 찾아가 조심스럽게 반대 의견을 개진하였습니다. 법관에 대한 근무 평가제도는 법관들을 심리적으로 위축시켜 법률과 양심에 따른 독립된 재판을 저해할 우려가 있어 그 도입이 부당하다고 ...

전봉관 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입력 2023.09.02. 03:00
일러스트=한상엽

이승만은 1945년 8월 14일 밤 11시 워싱턴DC 자택에서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일본의 항복 소식을 들었다. 그날 밤 자신의 집에 모여든 동지들에게 그는 “소련이 어떻게 나올지 걱정이다. 미국이 지혜롭게 처리하지 못하면 한반도에서 민족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 사이에 피를 흘리게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를 표했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지 이틀 후인 8월 8일, 이승만은 백악관에 귀국 청원 편지를 보냈다. 군 작전 지역이었...

김경민 서울대 교수·도시계획전공
입력 2023.09.02. 03:00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화 ‘택시 드라이버’에서 주인공(로버트 드 니로)과 미국 뉴욕 맨해튼 풍경. /컬럼비아 픽처스

이번 독자는 대도시 부동산의 미래에 대한 두 상반된 시선 중 무엇이 맞는지 물었다. 하나는 ‘서울 도심(다운타운)은 슬럼화될 것이기에 교외 아파트 단지가 살아남는다’는 주장이다. 다른 하나는 ‘서울 도심만 살아남는다’고 본다. 질문을 바꿔 보자. 도심이 망하고 교외 지역이 살아남을까, 아니면 도심은 흥하고 교외 지역은 쇠락할까. 나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 중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린다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서울 도심과 교외...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입력 2023.09.02. 03:00
BTS 멤버 정국은 “태어날 때부터 노래할 운명이었다”는 상징으로 팔에 시계, 사슬, 마이크, 음표 등을 문신으로 그려 넣었다. / 트위터

‘홍길동전’은 지금 읽어도 재미있다. ‘고전’이란 그런 것일까? 작가는 관상·기문·둔갑·풍수 등을 버무려 일종의 ‘협객 소설’을 만들었다. 그래서 재미있다. 소설에는 갈등의 직접적 계기가 있다. 갈등은 초란(홍대감의 첩)의 사주를 받은 관상 보는 여자로부터 시작한다. 초란에게 매수된 관상녀는 홍대감(길동의 아버지)을 찾아가 “길동이 성공하면 왕이 되지만, 실패하면 큰 후환을 가져올 관상”이라고 말한다. 초란은 이 발언을 빌미로...

김아진 기자
입력 2023.08.26. 03:00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 11일 작년 대선 때 허위 발언을 한 혐의로 재판을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법정에서 김문기씨를 모른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안면 인식 장애냐는 비판을 받는다”고 진술했다. /고운호 기자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법정에서 “사람을 많이 만나니 기억을 잘 못해서 안면 인식 장애라는 비판을 받는다”고 해 논란이 됐다. 작년 대선 때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과 관련해 김문기씨를 모른다는 취지로 말해, 허위 사실 유포 관련 재판을 받고 있는데, 진짜 김씨를 모른다고 강조하려 안면 인식 장애라는 말까지 꺼낸 것이다. 이 대표와 김씨는 호주로 놀러 가서 골프를 쳤다. 김씨는 핸드폰에 이 대표 생일도 저장해놨다. 이 사건이 터진...

김황식 전 국무총리
입력 2023.08.26. 03:00
일러스트=김영석

오래전 일입니다. 일곱 살 미국 소년 니컬러스는 가족과 함께 이탈리아 여행 중 강도의 습격으로 머리에 총상을 입고 뇌사 상태에 빠졌습니다. 니컬러스의 부모는 심장, 신장, 간, 췌장 등 장기와 각막을 네 청소년을 포함한 일곱 이탈리아 사람에게 기증하였습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이탈리아, 미국은 물론 온 세계가 감동하며 그 내용을 앞다투어 보도합니다. 어느 주교님은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슬픔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며 품위 ...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입력 2023.08.26. 03:00
일러스트=유현호

2012년, KBS ‘아침마당’에서 출연 제의를 받았다. 당시 나는 경향신문에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칼럼을 쓰고 있었지만, 그게 방송 출연에 지장을 주진 않았던 모양이다. 그때부터 2년이 못 돼 잘리긴 했지만, 이건 내가 기대만큼 못 웃겼기 때문이지, 외부 압력을 받아서는 아니었다. 박근혜 정부가 시작된 2013년에는, 그때도 난 경향신문에 박근혜 대통령을 까는 칼럼을 쓰고 있었는데, MBC에서 새로 만든 ‘베란다쇼’ 패널...

김동식 소설가
입력 2023.08.26. 03:00

폐(廢)역사 철로 위에 한 남자가 누워 있다. “아저씨 거기서 뭐 하세요?” 기차역에 사진을 찍으러 왔다가 우연히 그를 발견한 한 학생이 물었다. “자살하는 중이야.” “예? 여기는 10년 전부터 기차가 안 다니는데요? 거기 눕는다고 어떻게 자살해요?” 물어도 남자는 아무 말이 없었다. 이상한 사람이라며 떠난 학생은 그날 저녁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된다. 선로에 누워 있던 그 남자가 정말 철로 위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게 아닌가...

최여정 작가
입력 2023.08.26. 03:00
일러스트=김영석

고층 아파트 숲속을 헤매는 텅 빈 리어카, 폐지 한 장 내주지 않는 콘크리트의 무덤. 빈 수레를 끄는 노인의 등이 활처럼 굽는다. 노인의 가난한 리어카 위로 어느 집 거실 샹들리에 불빛이 쏟아져 박히고, 외제차의 날렵한 탐색 등이 벨 듯 스쳐간다. 콘크리트 숲속을 얼굴 없는 노인의 리어카가 소리도 없이 굴러다닌다.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다가 집으로 돌아가던 늦은 밤, 도심의 고급 아파트 사이를 헤매던 그 쓸쓸한 리어카를 생각한...

김아진 기자
입력 2023.08.19. 03:00
민주당 전현직 대표들. 왼쪽부터, 이재명,송영길,이해찬,추미애./뉴스1

더불어민주당의 전·현직 대표들이 꽃길이 아닌 험로를 걷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각종 의혹으로 검찰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고 이해찬, 추미애, 송영길 전 대표 등도 수사선상에 놓여 자유롭지 못한 신세다. 한 인사는 고소·고발까지 합쳐 99건의 서면 진술서를 썼다고 한다. 이들은 하나같이 “정권 교체에 의한 야당 탄압”이라며 무죄를 호소하고 있지만, 의심받는 혐의들은 이미 문재인 정권 때부터 수사를 진행했거나 정치권 내에서 소문으...

전봉관 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입력 2023.08.19. 03:00
해방된 지 채 두 달이 되기도 전 자유신문에는 '범람하는 꼴불견'이라는 만화가 실렸다. /국사편찬위원회

“미쓰하시 경무국장 각하여, 우리들은 이제 서울에 딴스홀을 허(許)하여 주십사 연명으로 각하에게 청하옵나이다. (…) 일본제국의 온갖 판도 내와 아세아의 문명 도시에는 어느 곳이든 다 있는 딴스홀이 유독 우리 조선에만, 우리 서울에만 허락되지 않는다 함은 심히 통한할 일로, 이제 각하에게 이 글을 드리는 본의도 오직 여기 있나이다.”(‘삼천리’ 1937년 1월 호) 1931년 만주사변 직후, 우가키 조선총독은 기자회견에서 “국...

김황식 전 국무총리
입력 2023.08.19. 03:00
일러스트=김영석

얼마 전 부임 2년 차 젊은 초등학교 여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하였습니다. 학생지도나 학부모 응대 등 과정에서 겪은 감당할 수 없는 괴로움 때문으로 보입니다. 지난 7월 29일 오후 2시에는 전국 교사 3만여 명이 땡볕 속에서 검은 상복을 입고 광화문 앞 거리에 모여 ‘교육권 보장’을 외치고, ‘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고통을 호소한 이래, 매주 토요일마다 집회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참아왔던 울분의 표출입니다. 이 사건이 ...

서민아 KIST 책임연구원
입력 2023.08.19. 03:00
횡단보도 앞 신호등에 초록색 불이 들어와 있다. / 게티이미지뱅크

나는 한때 낯선 나라, 도시에 갈 때면 건널목 신호등이 다 다른 색과 모양을 가진 것을 유심히 보고 사진으로 모아본 적이 있다. 어떤 지역에서는 초록색과 붉은색으로만 만든 신호등이 있고, 또 어떤 곳에는 안에 걷는 사람이나 서 있는 사람이 그려져 있기도 했다. 걷는 사람의 모양도 힘차게 팔을 흔들며 걷는 모양,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모양이 제각기 달라서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우리는 신호등을 파란불과 빨간불이라고 부르는데, ...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국제관계학 교수
입력 2023.08.19. 03:00
권영준 대법관이 지난달 11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뉴시스

지난달 초 윤석열 대통령이 “우리는 반(反)카르텔 정부다”라고 선언했을 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집권 2년 차에 드디어 기치를 바로 세우는구나! 카르텔이란 소수의 공급자가 담합해서 가격을 조작하는 것을 말한다. 가격 조작으로 그들은 막대한 이득을 얻지만, 소비자들은 손해를 본다. 카르텔이 판치는 나라에서는 창의성과 활력을 기대할 수 없다. 누구는 진입장벽 뒤에 숨어 ‘땅 짚고 헤엄치기’로 막대한 부를 쌓는데, 누가 자신의 ...

정상혁 기자
입력 2023.08.12. 03:00
흔히 '조폭 문신'으로 알려진 이레즈미로 가득한 영화 속 마동석의 몸. 미성년자들에게도 확산 추세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문신이 있다면 긴옷을 입어주세요.” 서울 역삼동의 한 유명 헬스장이 최근 공지한 ‘노 타투’(No Tatoo) 방침이다. 헬스장 특성상 신체 노출이 자유로운데, 팔·다리를 거의 덮는 과도한 문신으로 위화감을 조성하는 회원이 늘었기 때문이다. 해당 공지가 적힌 입간판 사진이 소셜미디어에서 잇따라 공유되며 화제를 모았다. 이곳 관장은 “요새 본인만의 소중한 의미가 담긴 문신도 많고 이는 개성의 표출이라고 생각하지만 소위 ‘건달 ...

김황식 전 국무총리
입력 2023.08.12. 03:00
일러스트=김영석

오사카 시립 동양도자미술관(大阪市立東洋陶磁美術館)은 이름 그대로 일본 오사카에 소재하는 한·중·일 3국 도자기를 다량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입니다. 한국 도자기만도 1100여 점에 이릅니다. 엄청난 양입니다. 아타카(安宅)와 이병창이라는 두 분 수집가가 모은 것을 기부하였다고 합니다. 지난봄 리움미술관이 ‘조선의 백자’ 특별전을 개최하였을 때 일본의 여러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 도자기를 빌려주었지만, 그 가운데 오사카미술관...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입력 2023.08.12. 03:00
일러스트=유현호

“지금 나한테 이거 던진 놈 누구야?” 정문고등학교의 대장인 종훈(이종혁)은 똘마니들을 이끌고 현수(권상우)의 반에 난입한다. 평소 종훈에게 시달림을 당하던 학생이 학교 공터에 있던 종훈에게 먹던 우유를 던졌는데, 그 학생이 하필 현수네 반이라서 그랬다. 현수네 학급 ‘짱’은 햄버거(박효준).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종훈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자 할 수 없이 그가 나선다. “야야, 우리 반 아니야. 나가서 이야기하자.” 심지어 ...

길해연 배우
입력 2023.08.12. 03:00

오랜만에 그녀를 만나러 간다. 날이 덥다 못해 뜨거운데 이런 날도 나와 있을까? 헛걸음하면 어쩌나 걱정도 되지만 용기를 내 거리로 나선다. 나는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정말 없다. 나이가 몇인지, 어디서 어떻게 살다가 서울 수유역 7번 출구 옆에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알고 있는 것이라곤 이름이 ‘보혜’라는 것과 얼굴이 애니메이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과 정말 닮았다는 것뿐이다. 소녀...

김신회 작가
입력 2023.08.12. 03:00
일러스트=한상엽

아버지께는 이비인후과 관련 지병이 있다. 얼마 전, 정기 진료를 받다가 10여 년 전에 수술받은 부위가 더쳐 재수술해야 한다는 소견을 들으셨다고 한다. 콧속에 생긴 종양을 떼어내 조직 검사를 해야 하는데, 그 과정을 위해서라도 전신 마취를 하는 수술이 필요하다고. 아버지는 수술을 받기로 하셨다. 수술 전 마지막 진료와 검사가 있는 날 병원에 동행했다. 아버지는 이미 해본 수술이니 가볍게 대하려 했지만 나는 봤다. 아빠의 거친 ...

김아진 기자
입력 2023.07.22. 03:00
경기도에 있는 한 디스코팡팡 내부 사진. 최근 수도권의 일부 디스코팡팡 관계자들이 단골손님이던 10대 여성 청소년을 상대로 성매매를 강요한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실내 디스코팡팡 여러 곳이 문을 닫았다. / SBS

DJ오빠가 악마로 돌변했다. 추억의 놀이기구 ‘디스코팡팡’이 범죄 온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휴양지를 벗어나 시내 곳곳 실내로 침투하면서, DJ가 10대 청소년을 꼬드겨 수백만원의 돈을 뜯어내는 것도 모자라 성폭행을 하거나 성매매까지 강요했다. 일부는 마약에도 손을 댔다. 수도권에 퍼져 있는 디스코팡팡 일부 업장은 최근 경찰 수사가 확대되자 아예 문을 닫았다. 한 상인은 “일이 터질 줄 알았다”고 했다. “거의 다 여중생, 여고...

김황식 전 국무총리
입력 2023.07.22. 03:00
일러스트=김영석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된 남북한은 3년간 군정을 거쳐 각각 별도로 정부를 수립하였습니다. 그로부터 75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국가이자 모든 면에서 세계 수준의 선진 국가로 변모하였으나, 북한은 그 반대로 경제적 최빈국이자 인권 등 모든 분야에서 최악의 수준입니다. 같은 민족으로서 동일 선상에서 출발한 두 나라가 이처럼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원인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건국의 기초이자 국가의...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입력 2023.07.22. 03:00
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에 있는 허씨 종중 사당과 연정(蓮亭)을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 /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전국적으로 폭우가 내린 지난 14일 새벽 4시에 서울에서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내비게이션으로 ‘호암 이병철 생가’를 찾았다. 남강 솥바위[정암] 20리 안에 대한민국 국부(國富)들이 나온 명당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지 오래였다. 고속도로 빗물이 물보라를 일으킬 때마다 차가 휘청거렸다. 긴장하며 여섯 시간을 운전하기는 처음이었다. 도착 예정 시간을 훨씬 넘겨 오전 10시에 이병철 생가에 닿았다. 관리인이 대문을 열고 있었다....

전봉관 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입력 2023.07.22. 03:00
일러스트=한상엽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하던 하지 중장의 제24군단이 남한 점령의 임무를 맡게 된 이유는 단 하나, 소련군이 남하하는 한반도로 가장 빨리 이동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연합군최고사령부(GHQ)’ 사령관 맥아더는 명문 군인 가문의 후예로 육군사관학교를 수석 졸업한 후 육군참모총장까지 최연소 승진 기록을 연이어 갈아치우던 최고의 엘리트 군인이었다. 또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꼽히던 사실상 정치인이었다. 그에 반해,...

김경민 서울대 교수·도시계획전공
입력 2023.07.22. 03:00
프랑스의 상징 에펠탑이 우뚝 서 있는 파리의 전경. 1925년 르 코르뷔지에는 파리 중심부의 오래된 건물을 허물고 그 자리에 초고층 건물을 짓자는 ‘부아쟁 플랜’을 발표했지만, 이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다. / Freepik

이번에 받은 독자의 질문은 많은 사람이 고민해야 할 만큼 진지한 주제였다. “서울은 프랑스 같은 저밀도 부티크 시티로 가야 하나요, 아니면 싱가포르와 흡사한 (초대형) 개발이 옳은가요?” 답이 어려운 까닭은 사람들의 시각과 그 도시가 처한 역사적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 공유하는 어떤 원칙이 있다면, 이 어려운 물음에 다가갈 때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은 갖게 될 것이다. 질문한 독자는 서울 종로...

이혜운 기자
입력 2023.07.15. 03:00
지난해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U-23(23세 이하) 야구월드컵 국가대표로 뽑힌 상무 야구단 소속의 조세진과 롯데자이언츠 소속 윤동희와 손성빈(왼쪽부터). 최근 국내 프로야구는 실력과 외모를 겸비한 신인들이 활약하며 '야구 아이돌 시대를 열고 있다. / 인스타그램 @clair_no.28

“우리 지민이!” 이 말을 들었을 때 기아타이거스의 투수 최지민(20)이 떠오른다면? 당신은 야구 덕후(마니아), 방탄소년단의 박지민(28)이 떠오른다면 당신은 아이돌 덕후다. 그럼 두 번째 문제. “이 기분은 뭐야 어떡해/ 아주 나이스!” 이 노래를 들었을 때 반응은? NC다이노스 김주원(21)이 안타 한 방 쳐주길 바란다면 야구 덕후, 아이돌 그룹 세븐틴의 익살스러운 춤사위가 떠오른다면 아이돌 덕후다. 올해 초 월드베이스볼...

김황식 전 국무총리
입력 2023.07.15. 03:00
일러스트=김영석

예전에 어느 사람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하여 가장 감명 깊은 영화가 무엇인지 등을 질문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제 경우 답은 1959년 제작된 미국 영화 ‘벤허’였습니다. 찰턴 헤스턴 등 출연 배우들의 명연기와 박진감 넘치는 전차 경주 등 스펙터클한 장면뿐 아니라 가슴 저미는 사랑 이야기까지 담고 있어 예술성과 오락성을 두루 갖춘 명작입니다. 윌리엄 와일러 감독조차도 시사회를 마치고 “하나님, 제가 이 영화를 만들었나요...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입력 2023.07.15. 03:00
일러스트=유현호

“김 의원님 같은 분께서 저희한테 많이 가르쳐주셨으면 한다.” 지난 6월 14일, 김예지 의원의 대정부 질의 도중 한동훈 장관이 한 말이다. 그날 김예지 의원은 한 장관 등에게 ‘장애인학대 처벌 특례법’ 등의 제도개선과 장애인 예산 증액의 필요성을 설득했는데, 특히 가슴에 와닿은 것은 장애인을 환경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는 코이 물고기에 비유한 점이었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충분치 않은 나라에선 장애인이 집 밖으로 나가기 어렵...

김동식 소설가
입력 2023.07.15. 03:00
일러스트=한상엽

“이 차가 원래 공장에서 나올 때는 뒷바퀴 각도가 끝까지 다 돌아가도록 제작돼서 나와. 근데 이놈들이 일부러 매달 구독료를 내야만 바퀴 각도가 다 돌아가게 세팅해 놨다니까? 양아치가 따로 없어요!” 배 나온 중년 남자가 차에 오르기 전 잠시 설명했다. 옆에서 듣던 그의 불륜녀, 빨간 원피스의 그녀는 순진한 표정으로 호응해 주었다. “정말요? 원래 되는 걸 안 되도록 막아서 돈을 받는다고요?” “돈에 미친 거지. 하긴, 나였어도...

최여정 작가
입력 2023.07.15. 03:00
일러스트=김영석

엄마를 닮았다는 말이 싫었다. 종갓집 장손 아버지의 대를 이을 아들을 바란 할머니는 갓 태어난 나를 안아 들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지 엄마 닮았네”. 그걸 기억하는 게 사실이냐는 시시비비는 잠시 접어두자. 놀랍게도 나는 그것이 칭찬이 아닌 것도 감지해 냈다. 말끝을 흐리며 아쉬움이 묻어나는 목소리, 웃음기 없이 나를 내려다보는 서늘한 눈빛, 장마가 시작되던 6월 말 습기를 머금은 축축한 병원 냄새까지. 새로 산 스펀지처럼 무...

최인준 기자
입력 2023.07.08. 03:00
문체부 2차관에 임명된 장미란을 비롯해 스포츠 스타가 정·관계에 진출할 때마다 '자격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사진은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바벨을 들어 올리는 장미란. / 조선일보DB

‘로즈란’도 피해 가지 못했다. 베이징 올림픽 역도 영웅 장미란(40)의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임명을 둘러싼 후폭풍이 계속 불고 있다. 야당을 중심으로 체육 선수 출신이 고위 행정 관료에 오를 자격이 있느냐는 비난이 쏟아진 것.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팬카페에는 “장미란 2찍(보수 지지자)인 줄 몰랐네. 실망”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장미란 자격 논란은 여야 정치 공방으로 번지고 있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페이스북에 “20...

김황식 전 국무총리
입력 2023.07.08. 03:00
일러스트=김영석

존 로버츠(John Roberts)는 요즘 국내 뉴스에도 자주 등장하는 미국 연방 대법원장입니다. 연방 대법원이 내놓는 판결에 대한 논란이 미국 사회에서 부쩍 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2007년 미국 연방 대법원을 방문하여 그분을 만났습니다. 방문 당시 그는 저에게 매우 흥미로운 인물이었습니다. 조금은 세속적인 이유였지만. 공화당 출신 부시 대통령은 2005년 7월 은퇴한 오코너 대법관의 후임으로 그를 지명했습니다. 그러나 청...

전봉관 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입력 2023.07.08. 03:00
일러스트=한상엽

1945년 9월 초, 하바롭스크 주둔 소련 극동군 제2방면군 사령관 푸르카예프 대장과 군사위원 시킨 상장은 제88보병여단(88여단) 제1대대장 진지첸 대위를 호출했다. 진지첸은 김일성의 중국 발음 ‘진즈어청’을 러시아어로 표기한 이름이었다. 진지첸은 소련의 대일전(對日戰)에 직접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8월 말 푸르카예프 대장에게 ‘붉은 기 훈장’을 수여받았다. 88여단은 1942년 대일전에 대비하기 위해 스탈린의 지시로 창설된...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국제관계학 교수
입력 2023.07.08. 03:00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외국에서는 일본 후쿠시마 방류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데 한국의 야당은 전국을 돌며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은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 의원들이 지난 5일 국회에서 후쿠시마 원전수 해양 투기에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모습. /이덕훈 기자

‘후쿠시마’로 연일 시끄럽다. 야당은 전국을 돌며 ‘후쿠시마 방류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처음에는 일본이 태평양에 “독극물”을 푼다더니 급기야 “대변” 얘기까지 나왔다. 태평양을 면한 나라가 우리나라만 있는 것이 아닌데, 다른 나라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 사고 초기에는 막대한 방사성물질이 바다로 그냥 흘러들었다. 이미 화가 잔뜩 나 있을 것이 틀림없다. 우선 미국은 어떨까? 미국에 태평양은 앞마당이...

서민아 KIST 책임연구원
입력 2023.07.08. 03:00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대중 강연에서 항상 던지는 질문이 있다. “물리학자 뉴턴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사과! 맞는다. 뉴턴 하면 사과지. 그런데 정작 빛을 연구하는 물리학자에게 뉴턴 하면? 답은 ‘무지개’다. 뉴턴은 프리즘으로 우리가 하얗다고 생각하는 햇빛 속에 일곱 빛깔 무지개(빨주노초파남보)가 숨어 있음을, 그리고 프리즘을 이용해 이 색깔을 나누어 펼쳐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책에 밝힌 사람이다. 그것이 바로 빛의 과학, 광학(光...

배준용 기자
입력 2023.07.01. 03:00
그래픽=송윤혜

“싱글세 당연히 내야지. 국가 존속이 걸렸는데. 싱글세 걷어 유자녀 부부 지원해서 출산은 애국이라는 의식을 심어줘야지!” “무지성으로 싱글세만 외칠 게 아니라, 아이 키우기 즐겁고 행복한 환경부터 만들어야죠!” 싱글세 또는 미자녀세. 지난 2014년 한 복지부 국장이 비공식 자리에서 ‘싱글세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한 사실이 알려져 호된 비난과 반발을 겪었다. 공직사회와 정치권에선 ‘표 떨어지기 딱 좋은 얘기’ ‘황당한...

김황식 전 국무총리
입력 2023.07.01. 03:00
영아 2명을 살해하고 냉장고에 시신을 유기한 친모 A씨가 30일 오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남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2023.6.30/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저의 총리 재직 기간 내내 국무차장으로 함께 일하였던 육동한 춘천 시장에게 공무원을 상대로 특강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한번 찾아가 취임 축하와 격려를 해드리고 싶던 차에 강연 요청을 받았기에 기쁜 마음으로 수락하였습니다. 먼저 어떤 주제로 강연을 할까 고민하다가, 지식이나 정보를 제공하는 것보다 공직 후배들에게 저의 공직 경험을 소박하게 소개하기로 하였습니다. 공직자들이 그 가운데 참고할 교훈을 얻기를 바라며. 재판 ...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입력 2023.07.01. 03:00
일러스트=유현호

“독립운동하는 심정으로 판결문을 썼다.” 2012년 김능환 대법관이 한 말이다. 그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1941년부터 3년간, 여모씨 등 4명은 일본제철에 강제로 끌려가 고된 노역을 했다. 일본이 패망한 뒤 귀국하긴 했지만, 그간의 임금을 전혀 받지 못한 상태였다. 그로부터 56년이 지난 1997년, 여씨 등은 일본 법원에 소송을 낸다. 밀린 임금과 손해를 배상해 달라는 것. 하지만 일본 법원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

길해연 배우
입력 2023.07.01. 03:00
2007년 이해랑연극상을 수상할 때 국립극장에서 만난 배우 윤소정. /이명원 기자

6년. 그녀가 어느 날 불현듯 우리 곁을 떠나고 흐른 6년은 ‘벌써?’이기도 ‘아직?’이기도 하다. 함께한 추억이 너무 생생해 ‘어느새 시간이 그렇게 지났나’ 싶기도, 그녀의 부재가 너무도 길게 느껴져 ‘아직 6년밖에 안 지났나’ 싶기도 하다. 대학로 어딘가를 걷다 보면 챙 넓은 모자를 쓴 윤소정이 홀연히 나타나 어깨를 툭 치며 “바다 연꽃, 어디 가?” 할 것만 같은데 야속하게도 그녀는 진짜 떠나버렸다. 작별 인사 한마디 없...

최인준 기자
입력 2023.06.24. 03:00
주요 가정법원은 이혼 절차를 밟고 있거나 이혼한 부부가 법원에 갈 때 동반한 자녀들이 정서적 안정을 얻을 수 있도록 키즈카페처럼 별도 공간을 꾸몄다. 사진은 어린이 장난감, 책을 구비한 서울가정법원 내 면접교섭센터. / 조선일보DB

“아이 혼자 입에 피자 물고 닭똥 같은 눈물 흘리며 유튜브를 보고 있더라.”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세상에서 가장 슬픈 놀이방’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와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한 어느 음식 배달 기사의 글이다. 함께 올린 사진에는 환한 실내에 미끄럼틀과 볼 풀장이 갖춰져 있었다. 얼핏 키즈카페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곳은 한 가정법원에 마련된 돌봄 시설이다. 이어지는 배달 기사의 글. “엄청 넓은 곳에 맡겨진 아이가 덩그러니 앉...

김황식 전 국무총리
입력 2023.06.24. 03:00
일러스트=김영석

독일 출신 작가 레마르크가 1929년 발간한 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Im Westen nichts Neues)’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프랑스가 맞닿은 서부전선에 투입된 병사들의 전쟁 경험을 다룹니다. 작가 자신의 제1차 대전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전쟁의 비인간적인 모습과 인간의 무력함 등을 통해 전쟁의 비참한 본성을 솔직하고 현실적인 묘사와 간결한 문체로 그려낸 소설로서 전쟁 문학의 백미로 평가받습니다. 맹목적인 ...

전봉관 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입력 2023.06.24. 03:00
일러스트=한상엽

1945년 4월 25일 샌프란시스코에서 국제연합(유엔) 창립 총회가 열렸다. 50국 대표가 참가한 이 회의는 6월 26일 국제연합 헌장을 채택하고 폐막할 때까지 두 달 넘게 이어지며 전후 국제 질서의 재편 방향을 논의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정)와 이승만은 전후 한국의 독립을 국제사회에서 보장받기 위해서 이 회의에 한국 대표단이 꼭 참석할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승만은 자신을 포함한 대표단 9명 명단을 임정에 보고했...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입력 2023.06.24. 03:00
일제강점기 신흥 부의 중심지로 떠오른 서울 중구 한국은행과 신세계백화점 본점 일대의 모습. /김두규 제공

베스트셀러 작가의 신작은 잘 팔린다. 작가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허구다. 그러나 역사소설과 사회소설은 어느 정도 팩트(fact)가 필요하다. 시대(역사)의 거울이자 공동체 삶에 대한 성찰을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 작가 김진명의 ‘풍수전쟁’이 출간되었다. ‘일제강점기 총독부 촉탁 학자 무라야마 지준이 조선에 건너온 것은 조선 땅을 주술(呪術)로 묶어놓기 위함이었다’는 전제에서 소설은 출발한다. 무라야마...

김경민 서울대 교수·도시계획전공
입력 2023.06.24. 03:00
‘강남 스타일‘의 가수 싸이가 2012년 서울 강남역 한복판에서 이렇게 춤판을 벌였다. SBS ‘인기가요’ 사전 녹화차 진행된 무대로, 싸이의 공연을 보기 위해 수만 명이 몰렸다. 현재 서울 강남은 서울 부동산 시장의 중심으로 평가받는다. /최문영 스포츠조선 기자

지난달에 이메일로 받은 독자의 질문은 “서울 부동산의 중심은 영원히 강남일까요?”였다. 그 무렵 세계적 베스트셀러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는 사상 최악의 부동산 위기가 온다고 경고했다. 그 질문과 기사를 보면서 ‘부동산에는 다양한 유형이 존재하는데 사람들은 하나의 부동산 시장만을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동산 유형은 크게 4가지다. ①사람들이 거주하는 주거용 부동산(서울의 경우 아파트) ②사람들이 근무하는 오피스 부...

이옥진 기자
입력 2023.06.17. 03:00
조국 전 법무장관은 지난 10일 경남 양산을 방문, 문재인 전 대통령과 만났다. 사진은 문 전 대통령이 운영하는 평산책방에서 기념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는 두 사람의 모습으로, 조 전 장관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했다. /페이스북

최근 조국 전 법무장관이 ‘길 없는 길’ 운운하면서, 정치권은 그의 내년 총선 출마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민주당 일각에선 쌍수 들고 환영하는 분위기도 포착된다. 설마 했던 일이 현실이 돼 가는 중이다. 조 전 장관은 자녀 입시 비리 로 재판을 받고 있다. 서울대에서도 파면됐다. 아내는 같은 일로 징역 4년형을 받아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딸은 의사 일을 그만두고 유튜버로 변신했다. 그런 그가 퇴임 후 경남 양산에 살...

김황식 전 국무총리
입력 2023.06.17. 03:00

가슴이 따뜻해지는 옛날 풍경이 가끔 마음속에 떠오릅니다. 어머니는 젖먹이를 등에 업고 대여섯 살 맏이의 손을 붙잡고, 아버지는 서너 살 둘째 아이를 가슴에 안고 함께 나들이 가는 풍경입니다. 지금은 흔히 볼 수 없는 단란한 가족의 모습입니다. 보육과 교육의 어려움 탓에 결혼도 출산도 피하고 있는 세태 때문입니다. 학생 수 감소로 학교가 폐교되거나 통합되고 심지어 지방 소멸까지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입력 2023.06.17. 03:00

“이대로 가면 2~3년 안에 총을 든 범죄자들이 거리를 활보할 겁니다.” 유튜브에 나온 박상수 변호사가 한 말이다. 한동훈 법무장관과 참여연대가 설전을 벌인 것을 계기로 그를 알게 됐다. ‘한동훈 장관이 퇴출 1순위’라는 참여연대의 발표에 한 장관이 “주전 선수가 심판인 척해서 국민을 현혹하는 것이 문제”라고 응수해 시작된 그 싸움 말이다. 이 대목에서 등장한 이가 바로 박상수 변호사(이하 박변). 참여연대 출신인 그는 다음과...

김동식 소설가
입력 2023.06.17. 03:00

천국에서 내려온 그의 목소리를 전 국민이 들을 수 있었다. 자신을 천국의 국토부 장관이라 소개한 그는 충격적인 제안을 했다. “이번에 저희 천국에서 신도시 개발을 완료했습니다. 천국에서도 1등급으로 훌륭한 영혼들만 갈 수 있는 지역이라 자부하는데, 지금 너무 텅 비어서 보기 휑한 게 문제입니다. 책임자인 제 면이 서려면 좋은 그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드리는 제안인데, 앞으로 한 달 안에 노환으로 사망할 운명인 노인분들을 모두...

봉달호 편의점주·에세이스트
입력 2023.06.17. 03:00

“아빠는 얼굴도 기억이 안 나요. 엄마랑 아빠랑 자주 싸웠는데, 그때마다 아빠가 집에 있는 물건을 던지고 부순 것만 희미하게 기억에 남아 있어요.” 스물셋 S는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근무 중 계산대에 나란히 앉아 대화하다 “엄마랑 산다”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되었고, 그래서 슬며시 “아빠는…?” 하고 물은 것이 실마리였다. 서울 어느 주택가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던 시절 알바로 일했던 S는 오전엔 편의점에서 일하고 오...

김아진 기자
입력 2023.06.10. 03:00
김어준씨가 지난달 24일 유튜브 생방송에서 판매한 재킷을 입고 있다. / 유튜브

“100벌만 예약받을 겁니다. 만들면 만들수록 손해예요. 이 가격에 다시는 나올 수 없는 옷이에요. 이런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만들지 마세요. 내가 다 화가 나네.” TV홈쇼핑의 쇼호스트가 아니다. 김어준씨가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생방송 중 옷을 팔면서 한 얘기다. 김씨는 뉴욕, 파리 패션쇼에 섰던 한복 디자이너를 소개하면서 “개량한복이 싫어서 평소에 입을 수 있는 한국적 요소가 담긴 옷을 만들...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입력 2023.06.10. 03:00
육당 최남선이 ‘길지’로 꼽은 전남 담양군 지실마을 입구 간판석. 송강 정철이 살았던 마을로 ‘성산별곡’이 태어난 곳이다. / 김두규 교수 제공

소멸 위기 지자체들이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크게 3가지 정책이다. 귀촌·귀농, 소득 증대 사업, 관광 활성화. 귀촌·귀농 정책은 지자체마다 지리적 강점과 약점이 있다. 미래 귀촌·귀농 정책이 성공하려면 KTX가 정차하는 곳이어야 한다. 두 번째가 잘못된 소득 증대 사업이다. 대표적인 것이 악취 나는 축사와 태양광 설치물을 통한 소득 증대 사업이다. 환경 파괴의 주범이다. 도시 자본들로 다수 주민의 거주권·재산권에 심각한 ...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국제관계학 교수
입력 2023.06.10. 03:00
지난 3월 일본 총리실 회의에 참석한 기시다 후미오(왼쪽) 총리와 뒤편에 배석한 아들 기시다 쇼타로 당시 총리 정무비서관. 쇼타로 비서관은 지난해 말 총리 공저에서 사적 모임을 가진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논란이 됐고, 기시다 총리는 이달 1일 아들을 정무비서관에서 경질했다. / AFP 연합뉴스

선관위의 ‘아빠 찬스’ 논란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국민의 분노는 선관위의 미적지근한 태도로 인해 오히려 더욱 타오르고 있다. 이 와중에 공교롭게 일본에서도 ‘아빠 찬스’ 논란으로 한바탕 떠들썩했다. 한국에선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지난 5월 29일 기시다 총리는 총리비서관인 장남 쇼타로(翔太郎)를 경질했다. 발단은 5월 24일 한 주간지의 폭로였다. 수상 공저(公邸)에서 쇼타로와 그의 친척들이 장관 흉내를 내거나 바닥에 누워...

전봉관 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입력 2023.06.10. 03:00
일러스트=한상엽

8월 15일 오전 8시, 여운형은 총독부 2인자 정무총감 엔도 류사쿠의 관저를 찾았다. 니시히로 경무국장이 배석한 가운데 엔도는 여운형에게 종전 후 치안 유지를 요청했다. 여운형은 정치범·경제범 석방, 식량 확보, 독립 활동 보장 등 5개 조건을 요구했고, 엔도는 이를 수락했다. 1년 전인 1944년 8월부터 여운형은 일본의 패전을 예상하고 ‘건국동맹’(건맹)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해 건국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운형은 마르크스주...

김황식 전 국무총리
입력 2023.06.10. 03:00

일제에 의한 강제 동원 피해자에 관한 2018년 대법원 판결 등과 관련한 한일 간 갈등이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제3자 변제 방식의 해결책 제시와 미래 지향의 한일 관계 주장으로 완화되고, 양국 간의 우호 협력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일 간에는 과거사 문제, 독도 영유권 문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처리 문제 등 휘발성을 가진 많은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도 부침은 있겠지만 갈등 관계가 완전히 해소되기는 ...

이혜운 기자
입력 2023.06.03. 03:00
서울 휘문고 출신으로 부산 사투리를 배우고 있는 김민석과 LG트윈스에서 롯데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된 유강남, 광주 진흥고 출신으로 한화이글스에서 활약하는 문동주(왼쪽부터). /사진=연합뉴스·뉴스1·박재만 스포츠조선 기자, 그래픽=송윤혜

지난 3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LG트윈스와 롯데자이언츠의 경기. 유강남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자 LG 응원석에서는 기립 박수가, 롯데 응원석에서는 전용 응원가가 흘러나왔다. 2011년 LG로 데뷔해 11년간 ‘프랜차이즈 선수’로 성장하다 롯데로 이적한 유강남 선수의 첫 친정 방문이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롯데 김민석 선수가 등장했을 땐 관중석에서 보이 그룹 콘서트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사직의 아이돌’로 불리는 그는...

김황식 전 국무총리
입력 2023.06.03. 03:00
/일러스트=김영석

저의 독일인 친구 부부가 그의 영국인 친구 부부와 함께 한국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는 작센주 드레스덴에서 공증인으로 활동하다 얼마 전 은퇴하였으나 10여 년 전부터 작센주 한국 명예 영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드레스덴 엘베강 언덕 위에 있는 그의 집은 포도밭을 낀 바로크 스타일의 작은 성채(城砦)로서 마당에는 국기봉을 세워 태극기를 높이 매달아 놓고 있습니다. 이제 공증인으로서도 은퇴하였으니 한국과 관련된 일을 보다 본격적으로 ...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23.06.03. 03:00
충남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복장유물. 길이 10m가 넘는 발원문 두루마리에는 1346년 불상 조성 당시 시주한 1078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문화재청

“어둠 속에서는 밝은 빛이 돼 비춰주시고, 병으로 괴로워할 때는 뛰어난 의사가 돼주시고, 고난의 바다에서는 커다란 배가 돼 건너가게 해주시고, 춥고 배고플 때는 옷과 음식이 돼주시고, 빈곤 속에서는 여의보를 내어 베풀어 주시고, 벌을 받게 돼 손발이 묶여 있을 때는 모두 풀어주시고, 죄를 지어 감옥에 있을 때는 용서받게 해주시고, 가뭄이 들 때는 큰 단비를 내려주시고, 독약을 먹었을 때는 해독제를 주시고, 호랑이와 이리에게 둘...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입력 2023.06.03. 03:00
/일러스트=유현호

“저는 기재부가 검찰 독재에 적극 협조할 뿐만 아니라, 경제주권과 통화주권까지 팔아넘기면서 매국적인 행위에 앞장서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5월 22일 열린 국회 기재위, 추경호 경제부총리를 상대로 질의에 나선 민주당 양경숙 의원은 시종일관 화가 나 있었다. 어떻게 하면 더 모욕을 줄 수 있을지 연구라도 한 듯, 자극적인 표현도 수시로 나왔다. 추 부총리가 반박하려 하자 그녀는 시간이 없다면서 말을 끊었다. “총리께선 ‘입벌구’...

봉달호 편의점주·에세이스트
입력 2023.06.03. 03:00
/일러스트=김영석

일본 편의점 삼각김밥은 보드랍고 촉촉한데 우리나라 편의점은 왜 그에 미치지 못할까. 일본 편의점엔 대체로 화장실이 있어 아무나 이용할 수 있던데 우리나라 편의점은 왜 화장실이 없고, 있더라도 자물쇠로 꽁꽁 채워놓는 것일까. 일본 편의점은 시원스레 넓고 다양한 먹거리가 가득한데 우리 편의점은 왜 좁고 상대적으로 초라하게 보일까. 같은 듯 다르다. 한국과 일본 편의점의 차이가 생긴 까닭은 여럿이지만, 핵심을 꼽으라면 프랜차이즈 계...

이옥진 기자
입력 2023.05.27. 03:00
지난 2019년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조국 전 법무장관의 모습.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은 지난 4월 언론기고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민주당은 도덕성마저 상실했고 조국은 내로남불의 상징이다. 진보 이미지는 오염될 대로 오염돼 버렸다"/박상훈 기자

“우리 당에 지독하게 따라붙는 내로남불의 꼬리표부터 떼어내야 합니다. 우리의 허물을 직시하지 않은 채 남의 허물만 지적하는 것이 내로남불입니다. (중략) 전당대회의 돈 봉투 의혹, 코인 논란 등의 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자세가 내로남불과 다르지 않았음을 인정하고, 이제는 우리 스스로 혁신의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15일·더불어민주당 송갑석 최고위원)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의 조어 ‘내로남불’이...

전봉관 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입력 2023.05.27. 03:00
1945년 '붉은 군대'의 선전 포스터. 태극기를 든 소련군의 모습이 흥미롭다. 북한에서 인공기가 사용된 것은 1947년 이후였다. 접혀서 훼손된 부분은 복원했다. /표도르 째르치즈스키(이휘성) 제공

함경북도 회령 출신 소설가 최인훈은 열 살 때 겪은 소련군의 진주(進駐)를 훗날 이렇게 기억했다. “소련군은 국경 지역 일본군의 저항을 물리치면서 들어왔다. 만주와 소련에 이웃한 함경북도의 북쪽 지역은 짧은 기간이기는 했지만 전쟁마당이 되었다. 두만강가에 있는 군사기지였던 H읍도 전쟁의 불길을 겪었다. 민간인 거주지에는 피해가 없었고 주로 목표가 된 것은 군사시설이었는데, 시가지의 동북쪽에 있는 병영, 비행장, 철도가 폭격당했...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입력 2023.05.27. 03:00

2022년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을 대변한 키워드는 ‘폭락’이었다. 2023년 역시 비관적 전망이 많았으나, 예상과 달리 일부 서울 아파트 가격은 연초 대비 상승했다. 이와 별개로 우리나라 경제 상황은 전혀 녹록지 않다. 26년 만의 최장기 무역 적자가 나타나면서 지난해 10월부터 올 4월까지 7개월 연속 수출이 줄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14년 만에 적자를 기록했고 영업이익은 95% 급감했다. 체감 경기 역시 좋지 않다....

안형준 국가우주정책연구센터 팀장
입력 2023.05.27. 03:00
한국 우주 산업은 자체 기술로 위성을 우주 궤도로 보낼 만큼 발전했다. 사진은 지난 25일 위성 8대를 실은 누리호가 발사되는 모습. /항공우주연구원

지난 25일 저녁 우리나라가 독자 개발한 우주발사체 누리호의 3차 발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2021년 10월 1차 발사와 2022년 6월 2차 발사 때는 위성 모사체와 성능검증위성을 실었지만, 이번 3차 발사 때는 처음으로 실용 위성 8기를 궤도에 올렸다. 1993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과학로켓 1호(KSR-1)를 발사하며 우주발사체 개발에 나선지 꼭 30년 만에, 순수 ‘우리’ 기술로 개발한 우주 발사체로 실용 우주수송 ...

김황식 전 국무총리
입력 2023.05.27. 03:00
/일러스트=김영식

해마다 이맘때면 독일 남부 작은 휴양도시 린다우(Lindau)에서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들과 젊은 과학자들이 모여 일주일 동안 강연, 패널 토의, 토론 등을 하는 린다우 노벨상 수상자 모임(Lindau Nobel Laureate Meeting)이 열립니다. 이곳 출신 한 독지가가 1951년 전쟁 후 피폐해진 상황에서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노벨상 수상자를 초청하여 젊은이들과 만남을 주선하려고 이 행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시...

이옥진 기자
입력 2023.05.20. 03:00
이스라엘은 만 18세 이상의 남녀 국민 모두에게 병역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사진은 훈련 중인 이스라엘 여군 병사의 모습. /이스라엘 국방부

“요즘 젊은 여자들, 애도 안 낳는데 군대를 가지 않을 이유가 있나요?” “여성 징병요? 출산율 제로(0)에 도전하겠다는 건가요?” 여성이 의무적으로 군(軍) 복무를 해야 한다는 여성 징병제에 대한 논란이 재점화됐다. 발단은 지난 11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였다.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과 병무청, 성우회(예비역 장성 모임)가 주최한 ‘인구 절벽 시대의 병역제도 발전 포럼’에서 병역 자원 부족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방안이 제...

김황식 전 국무총리
입력 2023.05.20. 03:00

이틀 동안 쏟아진 기록적 폭우에다 마을 곁을 흐르는 강의 둑이 무너지면서 마을은 빠르게 물에 잠기기 시작하였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침대에 누워 움직일 수 없는 노인과 그를 간병하는 아내는 다른 사람 도움이 없이는 피난할 방법이 없었다. 전기와 전화는 이미 끊겼고 안타깝게도 구조하러 오는 사람도 없었다. 방 안은 벌써 발목까지 물이 차고 잡동사니들이 물 위로 떠다니기 시작하였다. 한 시간 남짓이면 침대도 물에 잠길 것으로 보였다...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입력 2023.05.20. 03:00
일러스트=유현호

“저는 오늘 사랑하는 민주당을 잠시 떠납니다. 더 이상 당과 당원 여러분께 부담을 드리는 것이 옳지 않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코인(가상 화폐) 의혹으로 평생 받을 스포트라이트를 한 주 동안 받은 김남국 의원이 결국 탈당을 선택했다. 이 탈당이 어이없는 건, 민주당이 자체 조사단을 꾸려 코인 의혹을 밝히는 와중이었기 때문이다. 사태 초기 수수방관만 하던 민주당은 연일 계속되는 김남국의 황당 해명으로 인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 ...

김동식 소설가
입력 2023.05.20. 03:00
일러스트=한상엽

“누가 자꾸 길고양이 밥을 주는 거야 진짜! 내가 이 새끼 잡고 만다.” 김남우는 씩씩대며 바닥의 그릇을 치웠다. 담벼락에 ‘밥 주지 마시오’ 경고 문구도 써 붙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떤 인간인지 몰라도 절대 가만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빌어먹을 고양이 새끼들!” 만약 누군가 속 편하게 ‘길고양이 귀엽잖아’ 따위의 말을 하면 그는 발작했다. “귀엽기는 씨! 새벽 세 시에 발정 난 고양이 울음소리 때문에 깨봤어? 사방에 싸질러...

봉달호 편의점주·에세이스트
입력 2023.05.20. 03:00
일러스트=김영석

그가 그토록 화를 내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전화는 오후에 왔다. “아니, 작가라는 사람이 그렇게 어휘력이 부족해요? 매번 만날 때마다 얼굴이 창백하다느니, 힘들어 보인다느니, 어디 아픈 것 아니냐느니… 놀리는 것도 아니고, 주정을 부리는 것도 아니고, 그게 뭡니까?” 대꾸 없이 듣기만 했다. 일방적인 통화는 계속됐다. 전후 사정은 이렇다. 전날 저녁에 편의점 점주들의 모임이 있었다. 식사를 마치면 우리는 늘 근처 편의점 파...

김아진 기자
입력 2023.05.13. 03:00
눈썹 사진만으로 이 정치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 왼쪽부터 홍준표 대구시장,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 이재명 대표. 홍 시장과 안 의원은 눈썹 문신을 했다고 고백했고 송 전 대표와 이 대표는 눈썹 문신을 한 것으로 뷰티업계는 추정한다. /조선일보 DB

“그렇게 하라고 할 때는 안 하더니 이재명, 안철수, 홍준표 전후(前後) 사진 본 뒤 바로 하겠다네요. ㅎㅎㅎㅎ” 눈썹 문신 얘기다. 한 20대 여성이 인터넷 카페에 남자 친구 눈썹 사진을 올렸다. 듬성듬성 비어있는 눈썹 사진에 “무조건 하세요” “문신에 한 표 던집니다”란 댓글이 무수히 달렸다. “남사스럽다”며 거부하던 남자 친구는 결국 소신을 꺾고 눈썹 문신을 받았다. 차은우처럼 잘생긴(?) 눈썹을 갖게 됐다는 후기도 남겼...

김황식 전 국무총리
입력 2023.05.13. 03:00
일러스트=김영석

여행 계획이 없더라도 가끔은 신문 여행 광고의 여정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 거기에는 일상을 벗어난 다른 세상에 대한 상상과 기대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지도(地圖)를 들여다보는 소년의 눈은 아름답다’라고 노래한 어느 시인의 생각과 같은 마음입니다. 주말 집에서 빈둥거리다 책을 한 권 집어 들었습니다. ‘왜 교토인가 2′입니다. 교토에서 유학 생활을 했던 저자가 자신의 추억을 곁들여 교토의 이곳저곳을 소개하는 책입...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입력 2023.05.13. 03:00
전북 고창 문수사의 입구 풍경. 서울대 법대 학장을 지낸 정종섭 전 행안부 장관은 1980년대 초 문수사 내 양진암에서 사법고시를 준비해 1982년 합격했다. /김두규 교수 제공

2015년 10월 당시 정종섭 행안부 장관이 전북 고창을 방문하였다. ‘찾아가는 장관실’을 주제로 장관이 직접 현장에서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였다. “고창군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마친 정 장관은 문수사 등을 둘러보고 상경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고창 고수면 은사리에 있는 문수사는 풍경이 빼어나지만 잘 알려진 절은 아니다. 왜 정종섭 장관은 바쁜 일정 속에 이름 없는 이곳을 찾았을까? 정종섭 장관은 당시 정치인이었지만 ...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국제관계학 교수
입력 2023.05.13. 03:00
1998년 10월 8일 김대중 대통령(왼쪽)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일본 도쿄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마친 뒤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이른바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한일 셔틀 외교가 복원됐다. 지난 3월 윤석열 대통령 방일에 이어 지난 주말 기시다 총리가 방한하면서 12년간 닫혀 있던 정상 간 양자 방문의 물꼬가 터졌다. 이 작은 물꼬를 커다란 강물로 이어 나가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한일 관계의 방향성, 즉 좌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풍랑이 와도 좌표가 정확하면 언젠가 뭍에 오른다. 그 좌표로서 윤 대통령이 제시한 것이 1998년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전봉관 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입력 2023.05.13. 03:00
일러스트=한상엽

문학소년 야나모도 마사오(柳本正雄)는 1941년 진주만 공습이 있던 해에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1학년 ‘국어(國語)’ 시간에 일본말 가나를 배웠고, 도화(圖畫) 시간 첫 과제는 일장기 그리기였다. ‘대조봉대일’(大詔奉戴日·진주만 공습 기념일)인 매월 8일은 학교에서 꽤 떨어진 언덕 위 신사로 신사참배(神社參拜)를 다녔다. 학교 정문을 지나면 독농가(篤農家) 니노미야(二宮尊德)의 동상이 있었다. 학생들은 등교 때마다 동상을 향해...

이혜운 기자
입력 2023.05.06. 03:00
지난 4월 말 방한한 틱톡 CEO 저우서우쯔가 한국 지사 직원들과 단체 셀카를 찍는 모습. 최근 소셜미디어 앱인 틱톡과 쇼핑 앱인 알리 익스프레스는 Z세대를 중심으로 국내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틱톡 트렌드 토픽, 그래픽=송윤혜

“요즘 애플 워치 줄은 ‘알리’에선 1000원도 안 해.” 시곗줄을 바꾸려는 내게 동생이 말했다. ‘알리가 뭐지? 당근마켓 같은 건가?’ 알리는 중국 알리바바의 해외 직구 플랫폼 ‘알리 익스프레스’의 줄인말. 지난 3월 국내 구글 플레이스토어·애플 앱스토어에서 쇼핑 부문 신규 앱 설치 1위를 차지할 만큼 최근 인기가 치솟고 있다. 알리를 설치하고 앱을 켰다. 적힌 가격이 원화가 맞나 다시 한번 확인할 정도로 쌌다. 애플 워치 ...

김황식 전 국무총리
입력 2023.05.06. 03:00
일러스트=김영석

다시 어버이날을 맞습니다. 1956년부터 5월 8일이 어머니날로 지정되었으나 1973년부터 어버이날로 바뀌었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일에 아버지, 어머니 차별이 있어서 안 된다는 취지에서였지만 이런 일에 꼭 형평성을 따져야 하는지, 조금은 좀스럽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머니날이었던 시절 나머지 날은 모두 아버지날이라고 웃으며 넘겼습니다. 또 어머니날이라 하여 어머니만을 생각하는 자식도 없을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곳에 신(神...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23.05.06. 03:00
조선 시대 화첩 ‘석농화원’을 묶은 당대 최고의 서화 수장가 김광국이 소장했던 탄은 이정 ‘문월도’. /간송미술문화재단

“그림을 아는 자, 사랑하는 자, 보는 자, 모으는 자가 있다. … 그림을 아는 자는 그림의 형식과 화법은 차치하고, 먼저 심오한 이치와 오묘한 만듦새 속에서 뭔가 깨닫는다. 그림 감상의 핵심은 보는 일, 사랑하는 일, 모으는 일의 허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아는 데 있다. 알게 되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참으로 보게 되고, 보게 되면 모으게 된다. 이 단계에 이르면 모아도 그저 모으기만 하는 게 아니다...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입력 2023.05.06. 03:00
일러스트=유현호

“통역을 들을 필요가 없겠다. 왜냐하면 전에 들은 내용일 게 확실하니까.” 트럼프 미 대통령과 치를 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2018년 5월 22일, 문재인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는다. “문 대통령은 (북미) 중재자 역할을 강조했는데 지금 국면에서 역할을 어떻게 할 수 있나. 북한의 태도 변화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취임 초부터 문통은 ‘한반도 운전자론’을 주장했다. 한국이 남북 관계의 주...

김동규 서울대 신경외과학 명예교수
입력 2023.05.06. 03:00
일러스트=한상엽

평소에는 승용차로 출퇴근했는데 저녁 회식이 있거나 눈길이 미끄러울 때는 시간이 다소 더 걸리더라도 지하철을 이용했다. 그날도 무슨 일 때문인지 퇴근길에 지하철을 탔다. 복잡한 객차 안에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과 우연히 눈이 마주쳤다. 순간 젊은이가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처음 경험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적잖이 당황했다. 주위 시선까지 집중돼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50대의 나이에 비해 이마가 훤하긴 해도 스스로는 건...

봉달호 편의점주·에세이스트
입력 2023.05.06. 03:00
일러스트=김영석

딩동―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출판사 대표 Y다. 약속해놓고 마감을 넘긴 원고가 있다. 뜨끔했다. 재촉하는 문자로구나. 그런데 웬걸. 뜬금없이 빵집에 빵이 쌓인 풍경을 보내왔다. “통밀빵을 보니 작가님 생각이 나서요.” 내용이 이어졌다. “댁에도 좀 보내드렸어요. 건강 챙기면서 일하세요. 파이팅!” 이 얼마나 다정한 압박인가. 생각지 못한 선물을 받는 경우가 있다. 어느 기업에서 사보(社報) 편집을 담당하는...

이옥진 기자
입력 2023.04.29. 03:00
왼쪽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퀸 클레오파트라’의 공식 포스터, 오른쪽은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의 가상 전기 영화 포스터에 백인 배우가 등장하는 합성 사진이다. 오른쪽 사진은 이른바 '블랙워싱' 현상을 비꼬는 밈(meme)으로, 소셜미디어 등에서 확산했다. /넷플릭스·트위터

“클레오파트라 여왕이 흑인이라고요? 그럼 오바마 대통령을 백인이라고 해도 됩니까?” 5월 10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역사 다큐멘터리 ‘퀸 클레오파트라’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예고편에서 흑인 여성주의 학자인 셸리 헤일리 미 해밀턴대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제 할머니 말씀이 아직도 기억나요. ‘학교에서 뭐라고 하든 난 신경 안 쓴다. 클레오파트라는 흑인이었어’.” ‘퀸 클레오파트라’에서 클레오파트라 7세를 맡은 이는 흑인 배우...

김황식 전 국무총리
입력 2023.04.29. 03:00
일러스트=김영석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수단이 소통입니다. 그러나 지금 다양한 언론 매체에 더하여 SNS 등 소통 수단이 넘치지만, 사회는 서로 연결되지 않는 섬처럼 떨어져 있습니다. 소통은 끼리끼리에 그치고 때론 편 가르기 수단이 되었습니다. 만남과 토론이 이루어져도 각자 애당초의 주장을 끝까지 고집할 뿐 주장을 바꾸거나 타협하는 것을 보기 힘듭니다. 소통의 기본은 듣는 것, 곧 경청입니다. 경청은...

전봉관 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입력 2023.04.29. 03:00
1945년 9월 8일 촬영된 일본 히로시마 시가지. 한때 관공서였다는 건물의 뼈대와 폐허만 보인다. 미군이 세계 최초의 원자폭탄을 투하하고 약 한 달 뒤에 촬영된 사진이다. /AP연합뉴스

“6일 오전 8시경 적(敵) B-29 몇 대가 히로시마시에 내습(來襲)하여 소수의 신형 폭탄을 투하하였다. 이로 인하여 시내의 많은 가옥은 무너지고 시내 각처에는 화재가 발생하는 등 상당한 피해가 있었다. () 적은 이 신형 폭탄을 사용하여 우리 무고한 민중을 살상하려는 미국민의 잔학성을 스스로 세계에 나타낸 것이다. () 이에 의하여 적 미(米)는 미래 영구히 ‘인류 정의의 파괴자’요 ‘사회 정의의 반역자’라는 낙인이 찍...

신순규 시각장애인·BBH 시니어 애널리스트
입력 2023.04.29. 03:00
일러스트=한상엽

지난주 토요일이었다. 아들이 다니고 있는 크리스천 학교에서 이메일이 왔다. 고등학교 캠퍼스처럼, 초등학교와 중학교에도 이번 주부터 무장 경찰관이 근무하게 됐다는 소식이었다. 이 조용하고, 경치 아름답고, 살기 좋은 북뉴저지 타운에 자리 잡고 있는 크리스천 학교에서 학생과 교직원, 그리고 방문하는 학부모 등을 보호하기 위해 무장 경찰관들을 고용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지난 3월 27일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일어난 총기 사건 이...

안형준 국가우주정책연구센터 팀장
입력 2023.04.29. 03:00
지난 20일 미 텍사스 보카치카에서 스페이스X의 우주 로켓 ‘스타십’이 발사되는 모습. 발사 4분 만에 폭발해 실패로 끝났지만 일론 머스크는 “실패로 많이 배웠다”고 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20일, 세계의 이목이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미국 우주탐사 업체 스페이스X에 쏠렸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로켓인 ‘스타십’의 첫 비행 시험 발사가 시작됐다. 높이만 120m에 이르는 스타십에는 약 5000톤의 액체 산소와 메탄 추진제가 실렸다. 로켓 점화 이후 육중한 몸을 일으켜 지상 발사대를 벗어나는 데 10여 초가 걸렸다. 스타십은 지구 위 235km의 준궤도 고도까지 비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로켓은 발사 4분 만...

김아진 기자
입력 2023.04.22. 03:00
4·5 전북 전주을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당선된 진보당 강성희 의원과 윤희숙 상임대표 등 진보당 대표단이 지난 10일 국회 본청 앞 계단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진보당은 부인하고 있지만, 과거 내란 음모 혐의로 해산된 통진당의 후신이다. /연합뉴스

최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대로변에는 ‘정치를 새롭게, 국민을 이롭게’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렸다. 진보당이 4월 전북 전주을 국회의원 재선거 당선을 자축하면서 내년 총선에서 더 많은 국회의원을 당선시키겠다는 뜻을 담아 내건 것이다. 근처를 지나던 한 행인은 “진보당이란 정당을 아느냐”고 묻자 “진보당? 정의당이 이름을 바꿨느냐”라고 되물었다. 진보당은 종북 논란이 일었던 통합진보당의 내란선동 사건 10년 만에 간판을 새로 갈...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입력 2023.04.22. 03:00
일러스트=유현호

“현재 윤석열 정권이 자행하고 있는 언론 탄압의 정도가 선을 넘어서고 있다.” 민주당 고민정 의원이 지난 3월 29일 열린 민주당 언론자유특별위원회에서 한 말이다. 그녀는 왜 화가 났을까? 검찰이 한상혁 방통위원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기 때문이란다. 고민정은 이것이 ‘언론을 자기 입맛에 맞게 바꾸려는 윤 정권의 음모’라며, 준엄하게 말한다. “언론 자유가 왜 중요한지, 전 세계 언론인이 왜 대한민국 언론이 탄압받고 있다고 ...

김황식 전 국무총리
입력 2023.04.22. 03:00
일러스트=김영석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 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그러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香煙)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 이수복 시인의 시 ‘봄비’입니다. 만물이 죽은 듯한 겨울을 보내고 새 생명의 봄을 맞는 어름에 봄비가 내립니다. 봄비는 봄을 재촉하는...

서효인·시인
입력 2023.04.22. 03:00
일러스트=한상엽

강물에 부딪친 햇빛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런 걸 윤슬이라 하던가. 눈이 부셔 손을 이마에 가져가 그늘을 만들었다. 그늘 사이로 다시 홍천강을 보았다. 본래부터 거기에 있던 것은 사람에게 경외감을 준다. 그것을 경치라 불러도 좋고, 뷰라 불러도 좋다. 그저 가만히 앉아 자연의 일부가 된다. 도시의 시끄러움과 일상의 번잡함을 잠시 놓아두면 이윽고 진짜 나를 찾는 시간이 올… 리가 없지. 둘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아빠! ...

봉달호 편의점주·에세이스트
입력 2023.04.22. 03:00
일러스트=김영석

“현미밥에 계란 프라이, 참나물, 볶음김치, 오징어볶음, 감자볶음. 카, 이 ‘혜자로운’ 구성 좀 봐. 엄마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니?” 내가 우리 편의점 도시락을 자랑하면 다른 브랜드 편의점을 운영하는 친구는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꾸하곤 했다. “음식 하면 역시 우리 ‘백 대표’ 아니겠어? 백 대표가 레시피까지 조율하며 자기 명예를 걸고 내놓은 도시락이야. 편의점에 들여오기 바쁘게 팔려나간다니까.” 그럴 때마다 늘 조용하...

김은경 기자
입력 2023.04.15. 03:00
요리는 역시 ‘장비발’인가. 넷플릭스 드라마 ‘에밀리, 파리에 가다’에서 요리사 가브리엘(오른쪽)이 에밀리에게 무쇠 주물 프라이팬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 /넷플릭스

넷플릭스 드라마 ‘에밀리, 파리에 가다’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이제 막 파리에 온 미국인 에밀리에게 이웃집 셰프 가브리엘이 오믈렛을 요리해준다. “평생 먹은 오믈렛 중에 최고”라며 맛있게 먹은 에밀리가 뒷정리를 하려고 프라이팬과 주방 세제를 집어드는 순간, 가브리엘이 막아선다. “안 돼요. 그러면 프라이팬이 망가져요.”(가브리엘) “이거 세제인데요.”(에밀리) “설거지하지 않고, 기름을 먹이는 거예요. 그게 오믈렛 맛의 비결...

김황식 전 국무총리
입력 2023.04.15. 03:00
일러스트=김영석

40여 년 공직 생활을 마치고 은퇴하니 서운하기도 하지만 좋은 일도 많습니다. 지금까지 한 공부는 공직 생활에 필요한 것 위주였다면 이후로는 그런 굴레를 벗어나 제가 좋아하는 것 중심이니 좋습니다. 지금까지는 좋은 책을 읽으며 행복감을 느꼈지만 이제 책을 쓰면서 또 다른 행복감을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 좋아서 하는 공부가 자연스레 책 쓰기로 연결되니 더욱 좋습니다. 코로나로 칩거가 강요되는 시간을 활용하여 2022년과 202...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ㆍ철학
입력 2023.04.15. 03:00
일러스트=유현호

문동은(아역 정지소)은 온몸이 가려웠다. 박연진(아역 신예은) 패거리가 고데기와 다리미로 지져놓은 화상 흉터로 얼룩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 학교를 자퇴하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나가던 동은은 연진이 자신의 몸을 지져대던 그곳, 텅 빈 강당으로 돌아갔다. 연진 일당은 제 발로 나타난 동은을 보며 당황했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동은이 대화의 주도권을 잡았다. “너 꿈 말이야. 싸이월드에 써 있는 현모양처, 그거 진짜야?...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국제관계학 교수
입력 2023.04.15. 03:00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주인공 스즈메는 폐허가 된 산속 마을에서 문을 발견한다. 문 손잡이를 돌려 열면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쇼박스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이하 스즈메)’이 4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놀라운 일이다. 사실 ‘스즈메’를 보고, 잘 만들긴 했지만 과연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스즈메’는 일본인들의 집단 체험을 일본적 문화 코드에 담아 일본적 배경 속에 그려내기 때문이다. 이토록 ‘일본적’인 영화가 한국 관객들에게 어필할까? 쉽지 않다고 봤다. 하지만 내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스즈메’는 2011년 3월 동일본...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입력 2023.04.15. 03:00
섬진강 상류에 위치한 전북 임실군 천담마을. 이렇게 오염 시설이 없고 한가운데 개울물이 흐르는 한계마을 속 좋은 터를 귀촌타운으로 활용해야 한다. /김두규 교수 제공

‘한계마을.’ 아사다 지로의 ‘어머니가 기다리는 고향(母の待つ里)’을 읽다가 접한 용어이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50%를 넘어서는 마을을 말한다. 주민들이 농사를 지을 힘이 없을뿐더러 관혼상제 등 사회 공동체가 유지될 수 없다. 작가는 ‘저주스러운’으로 이 한계마을을 표현한다. 왜 ‘저주스러운’이라고 했을까? 작가의 의도가 무엇일까? 멀리 일본의 한계마을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필자의 주소지 순창 ‘가라울’ 마을은 한계...

김아진 기자
입력 2023.04.08. 03:00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지지자인 ‘개딸’들이 지난달 3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 중앙당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민주당은 개딸이 2030 여성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날 현장에는 50대 이상이 더 많이 보였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달 14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연 당원존 행사에는 자칭 ‘개딸’인 지지자들이 대거 모였다. 개딸은 ‘개혁의 딸’의 줄인말. 이 대표의 2030 여성 지지자란 뜻에서 시작했다. 최근엔 극렬, 강성 지지자를 통칭한다. 작년 3월 이 대표의 대선 패배 직후 2030 여성 지지자들이 인터넷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을 열고 스스로를 개딸, 이 대표를 ‘개아빠’로 부르면서 만든 신조어다. 이 대표도 당시 ...

김황식 전 국무총리
입력 2023.04.08. 03:00
일러스트=김영석

가난이나 병고에 시달린 세 모녀가 주위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합니다. 아파트 경비원이 관리소장이나 주민들의 갑질에 시달려 극단적 선택을 합니다. 아이들이 계모 등에게 학대받고 세상을 뜹니다. 우리가 요즈음 흔히 접하는 안타까운 소식들입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 이런 일이 없을 수 없다 하더라도, 너무 많습니다. 우리 사회 공동체가 흔들리고 있다고 한다면 과장일까요? 지난달 급한 돈이 필요한 취약 계층에게 최고 10...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입력 2023.04.08. 03:00
일러스트= 유현호

1989년 10월 13일, 건국대에 다니던 스물네 살 청년 정청래는 준비한 승용차를 주한 미국 대사관 옆에 세운 뒤, 차 지붕을 밟고 3m나 되는 담장을 넘어 대사관에 들어간다. 이 난동에 참여한 이는 모두 여섯 명. “공안 통치 배후인 미국의 내정 간섭 중단”이 요구 사항이었다. 그들은 직접 제작한 사제 폭탄을 대사관에 던지는데, 워낙 엉망으로 만든 탓에 폭탄이 터지지 않자 플랜 B에 들어간다. 대사관 거실에 시너를 뿌리고 ...

김동규 서울대 신경외과학 명예교수
입력 2023.04.08. 03:00
일러스트=한상엽

원로 연예인의 회고담을 전하는 방송에서 우연히 야간 통행금지(이하 통금)에 얽힌 일화를 들었다. 초대 손님은 심야 음악 프로 진행자였는데 일을 마치면 통금 때문에 허가받은 방송국 차를 얻어 타고 집에 가곤 했다는 내용이었다. 지나가는 말이었지만 유사한 경험이 있던 터라 머릿속에 또렷하게 남았다. 예전 우리나라에 통금 제도가 있었다. 자정이면 매일같이 사방으로 사이렌이 울리면서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통금은 새벽 4시에 또...

봉달호 편의점주·에세이스트
입력 2023.04.08. 03:00
일러스트=김영석

한때 우리 집은 분식집이었다. 분식집 아들로서 좋았던 점은, 떡볶이와 어묵을 실컷 먹을 수 있다는 특권이 아니라, 영화를 남들보다 많이 볼 수 있다는 영광이었다. 당시에는 전봇대나 담벼락에 각종 홍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분식집, 만화방, 오락실, 다방 내외부는 광고에 제격인 장소였다. 벽면에 영화 포스터 부착을 허락하는 점포에 극장 측에서는 초대권 몇 장을 대가로 줬다. 사시사철 우리 집엔 초대권이 풍년이었다. 단골손님...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23.04.08. 03:00
산수화 거장 청전 이상범(1897~1972)의 1959년 작 ‘산가춘색’. 안빈낙도의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갤러리현대

자공이 말했다. “가난해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해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럭저럭 괜찮지. 그런데 가난해도 즐거움을 잃지 않고, 부유해도 예를 좋아하는 경우만은 못하다.” 자공이 말했다. “‘시’에서 ‘끊어내듯이, 잘라내듯이, 쪼듯이, 갈듯이’라고 한 말은 아마 이것을 이르는 거겠죠?”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賜)야. 비로소 더불어 시를 논할 만하구나. 한마디 말해주니, 다음에 올 것을...

김황식 전 국무총리
입력 2023.04.01. 03:00
일러스트=김영석

지난 3월 26일은 이승만 대통령 탄신 148주년을 맞는 날이었습니다. 이를 기념하는 행사에서 박민식 보훈처장은 이승만 대통령의 공과는 “공칠과삼(功七過三)이 아니라 공팔과이(功八過二)로도 부족하다”고 평가하였습니다. 공감이 가는 대목입니다. 한 민족이 두 나라로 나뉘어, 북한은 세계 최빈국이 된 것에 반하여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 경제 국가가 된 것은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친미, 반공산주의 노선을 채...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3.04.01. 03:00

은퇴 후엔 시골에 살 생각이다. 흔히 말하는 전원주택에 대한 환상 같은 건 없다. 그냥 공기 좋은 시골에 집을 지어 살고 싶다. 은퇴하면 할 일이 없어서 우울해진다는데 시골에 살면 집안일만으로도 할 일이 차고 넘칠 것이다. TV 채널을 돌리다가 부동산 상담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은퇴를 앞둔 어떤 남자가 전화를 걸어 서울 어디에 신축 아파트를 갖고 있는데 대출이 많아 살림이 쪼들린다고 했다. 게다가 곧 은퇴하면 대출금 갚기가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ㆍ철학
입력 2023.04.01. 03:00
<YONHAP PHOTO-3889> 기뻐하는 오타니 (오사카=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6일 오사카돔에서 열리는 WBC 일본 대표팀과 한신 타이거즈의 연습경기. 3회초 2사 1,2루 상황에서 일본 오타니가 쓰리런 홈런을 치고 홈을 향해 달리고 있다. 2023.3.6 hama@yna.co.kr/2023-03-06 19:09:29/ <저작권자 ⓒ 1980-2023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오타니 쇼헤이는 기념비적인 선수다. 투수와 타자를 겸하는 야구 선수가 양쪽 모두 탁월한 성적을 내는 일은 베이브 루스 이후 처음이다. 스포츠가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에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시속 160km대 강속구를 뿌리는 선발투수면서 동시에 걸핏하면 담장을 넘기는 홈런 타자인 초특급 선수가 나타나 일본을 WBC 우승으로 이끌어낸 사건 앞에 전 세계인이 열광하는 중이다. ‘오타니 신드롬’은 그의 실력 때문만이 아니다. 모든 사...

이옥진 기자
입력 2023.04.01. 03:00
토요일인 지난 25일 오전, 서울 강남에 있는 카페 런던베이글뮤지엄 앞에 100명 이상이 줄지어 서 있다. ‘오픈런 성지’로 꼽히는 이곳은 날마다 개장 전 오픈런을 하러 온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지난 25일 오전 7시 40분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카페 런던베이글뮤지엄. 어림잡아 100명은 돼 보이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담요를 두르거나 캠핑 의자에 앉은 사람도 보였다. 서둘러 무리에 뛰어들었다. 뒷사람들의 말이 들려왔다. “이렇게까지 해서 먹어야 되는 거야?” “오픈런 안 하면 3~4시간은 기다려야 된대.” 10분 뒤 대기 번호표를 받을 수 있는 기계가 켜졌고, 8시 정각에 가게 문이 열렸다. 첫 손님은 6시 30...

안형준 국가우주정책연구센터 팀장
입력 2023.04.01. 03:00
미국 우주 개발 업체 XCOR 에어로스페이스 최고운영책임자(COO) 앤드루 넬슨이 업체가 만든 우주 비행기 모형 앞에 서 있다. 이 업체는 2017년 파산했다./유튜브

1961년 6월 11일, 국내 한 중앙 일간지에 ‘한국의 과학도 세계 무대로’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부산에 사는 20세 오석근이 NASA(미 항공우주국) 소속 베른헤르 폰 브라운 박사의 초청을 받아 1963년부터 함께 로켓 연구를 하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미국 우주개발을 이끌던 폰 브라운 박사와 오군의 사진을 나란히 실었다. 폰 브라운 박사가 누구인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서 세계 최초의 로켓 미사일 V-2를 ...

신순규 시각장애인·BBH 시니어 애널리스트
입력 2023.04.01. 03:00
영화 ‘멋진 인생’의 한 장면. 조지 베일리는 신혼여행에 쓰려고 모아온 돈을 자신이 운영하는 은행에서 예금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나눠준다./리버티 필름스

아주 오랫동안 가족과 함께 보고 싶던 영화가 몇 개 있다. 1861년부터 4년간 계속된 남북전쟁으로 인해 없어진 노예 제도와 함께 사라져버린 미국 남부의 삶을 그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아직도 다 같이 보지 못했다. 거의 4시간이나 되는 이 영화는 너무 길어서 같이 안 보겠다고들 했다. 또 자신이 산타클로스라고 주장하는 할아버지가 뉴욕시에 있는 메이시 백화점의 산타클로스가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은 ‘34번가의 기적’...

이옥진 기자
입력 2023.03.25. 03:00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인 2021년 8월 촬영해 공개했던 ‘민지(MZ)야 부탁해’ 캠페인 홍보 영상 스틸컷. 윤 대통령은 이 영상에서 "민지한테 연락이 왔어. 요즘 MZ 세대가 이런 것 때문에 힘들다는데, 이거 우리가 좀 나서야 되는 것 아니야?"라고 한 뒤, 청년 고용 문제와 집값, 출산 문제 등을 언급했다. /유튜브

“제가 확고하게 갖고 있는 생각은 청년과 함께 국정 운영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기성세대, 기득권으로 자리 잡은 중장년층의 생각만 갖고는 우리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되는 올바른 행정과 정책을 펴나가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2021년 11월 28일·대선 후보 직속 청년위원회 출범식)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청년 유권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 노...

입력 2023.03.25. 03:00
일러스트=김영석

판사 시절을 돌아보면 가장 힘들었던 일 가운데 하나가 사형에 처할 만한 정도의 중대한 사건을 재판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사형 선고는 한사코 피하고 싶지만, 재판은 법관 개개인이 가지는 주관적 기준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가 공감하는 객관적 기준에 따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헌법이 법률과 함께 재판의 준거로 제시하는 양심의 의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재판은 어느 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고, 그렇게 되면 재...

한현우 기자
입력 2023.03.25. 03:00
일러스트=비비테

나는 건식 화장실주의자다. 결혼 후 지금까지 화장실 바닥에 러그를 깔고 욕조에는 샤워커튼을 달아 욕조 외엔 물이 튀지 않게 쓴다. 안방에 붙은 화장실엔 유리문이 완전히 닫히는 샤워 부스가 있으니 역시 다른 곳에 물이 튈 일이 없다. 화장실을 건식으로 쓰는 서양식이 맘에 들어서이기도 하지만, 물에 젖은 슬리퍼를 신어야 하는 습식 화장실이 싫기 때문이다. 슬리퍼 바닥에 시커멓게 곰팡이가 슬고 화장실 바닥 타일 곳곳에도 곰팡이가 끼...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입력 2023.03.25. 03:00
일러스트=유현호

1982년부터 독일에서 사회학 교수로 재직하던 송두율은 “북한을 북한 입장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내재적 접근법. 북한이란 나라를 자유민주주의의 잣대로 분석해 나쁜 나라 딱지를 붙이는 게 너무 가혹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동독을 사회주의 체제의 틀 안에서 봐야 한다는, 서독 사회학자 페터 루츠(Peter Christian Ludz)의 주장을 그대로 베낀 것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이 주장대로라면 그 어떤 범죄...

봉달호 편의점주·에세이스트
입력 2023.03.25. 03:00
일러스트=김영석

때로 독자를 만난다. 계산 치르고 상품을 봉투에 담아 건넸더니 손님이 싱긋 웃으며 말한다. “신문에 쓰시는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찌릿, 온몸에 전기가 흐르고 얼굴이 뜨거워진다. 감정에 색이 있다면, 두둥실 날아갈 듯한 푸른 물감과 수줍어 숨고 싶은 분홍 물감을 뒤섞어 놓은 순간이랄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할 틈도 없이 손님은 보랏빛 미소를 남겨 놓고 떠났다. 때로 등장인물을 만나기도 한다. 언젠가 어느 칼럼에 편의점에 들...

김민지 유튜브 '만두랑' 진행자·전 SBS 아나운서
입력 2023.03.25. 03:00
‘어머니의 날’을 맞아 자녀들이 어머니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저는 지난 일요일 침대에서 아침상을 받았습니다. 잠옷을 입은 그대로 양치도 하지 않은 채 말이지요. 나무 트레이엔 제가 아침마다 먹는 꿀과 견과류를 넣은 그릭요거트가 올라와 있었고요. 종종 영화나 책에서 무척 로맨틱한 아침을 묘사할 때나 나오는 그 장면을 저에게 선물한 것은 바로 저희 아이들이었습니다. 제대로 닫히지 않은 냉장고와,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것들을 꺼내기 위해 받쳐 놓은 의자가 어지러이 펼쳐진 부엌 앞에서 아...

최인준 기자
입력 2023.03.18. 03:00
암컷 판다 ‘푸바오’가 지난해 7월 두 번째 생일에 에버랜드 사육사들과 함께 있는 모습. 2020년 한국에서 태어난 푸바오는 만 4살이 되는 내년 7월 중국으로 반환될 예정이다. / 에버랜드

지난달 19일 일본 도쿄 우에노동물원에는 2000명이 넘는 관람객이 한 동물을 보기 위해 긴 줄을 이뤘다. 동물원 최고 인기 스타인 다섯 살짜리 자이언트 판다 ‘샨샨(香香)’이 중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는 날이었기 때문. 석별의 정을 나누려는 사람들이 6만명 넘게 몰려 관람 티켓을 따내기 위한 추첨까지 했다. 2017년생인 샨샨은 1988년 이후 29년 만에 일본에서 태어난 아기 판다였기에 일본 국민들의 애...

김황식 전 국무총리
입력 2023.03.18. 03:00
일러스트=김영석

지난 3월 2일 현대자동차가 생산·기술직 공개 채용을 시작하자 지원자가 수만 명 몰려 채용 포털 사이트가 일시 마비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지원이 폭주한 이유는 명망 있는 대기업이 제공하는 파격적인 고용 조건입니다. 상대적으로 높은 급여, 확실한 60세 정년 보장과 다양한 복지 혜택 등입니다. 저는 이 소식이 반가웠습니다. 물론 현재 우리 사회에선 보기 힘든 경우이긴 하지만, 육체노동을 천시하는 경향이 있는 우리 사회 풍조가 ...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3.03.18. 03:00
일러스트=비비테

외국에서 살다 한국에 잠시 온 주부가 다이소에 갔다가 40만원 넘게 쇼핑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대부분 상품이 1000~2000원이고 비싸봐야 5000원 정도인 다이소에서 그렇게 많은 돈을 쓰려면 두 손 가득 장바구니를 채워도 모자랐을 것이다. 미국이나 캐나다에도 이런 가게가 있는데 통칭해서 ‘달러숍’이라고 한다. 1달러짜리 물건이 많다는 뜻이다. 캐나다 달러숍 중 가장 잘 알려진 곳은 ‘달라라마(Dollarama)’다. 이 달...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입력 2023.03.18. 03:00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 송태섭이 작은 신장과 스피드를 활용해 상대 팀의 수비를 뚫고 있다. / NEW

소년은 농구를 좋아했다. 형과 함께해서 더 즐거웠다. 지역을 넘어 전국 단위 유망주로 주목받는 형은 동생의 우상이자 본보기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형제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던 것이다. 형은 스스로를 다독이며 동생의 다짐을 받았다. ‘내가 우리 집안의 주장이 될게. 네가 부주장이 되어야 해.’ 채 중학생도 되지 않은 나이에 동생은 집안의 주장 자리를 넘겨받았다. 친구들과 배 타고 낚시를 갔...

장부승 일본 관서외국어대 국제관계학 교수
입력 2023.03.18. 03:00
일러스트=한상엽

처음엔 나도 깜빡 속았다. 일본 사람인 줄 알았다. 약간 어눌하지만 일본말도 꽤 한다. 일본에서 온 호스트라는데, 행색이 십 수년 전 일본 스타일이다. 옛날 스타일을 좋아하는 일본인인가? “독도가 누구네 땅이야?”라는 질문에 “독도? 너네 땅”이라고 심드렁하게 답하는 데선 놀라기도 했지만, 일본인들 중에는 ‘독도(일본명 다케시마)는 한국에 줘버리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다나카상은 ...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입력 2023.03.18. 03:00
심태기 명당으로 알려진 전북 순창의 가래울 마을에 지어지고 있는 납골당. / 김두규 교수 제공

국교에 따라 풍수 내용도 달라진다. 고려가 불교 풍수였다면, 조선은 유교 풍수였다. 고려 풍수는 전국의 명당화(明堂化)를 꾀했다면, 조선은 묘지 풍수였다. 고려의 국역(國域) 풍수는 산천비보도감(山川裨補都監)에서 잘 드러난다. 국토에 따라 사찰을 지어야 할 곳, 나무를 심어야 할 곳, 연못을 파야 할 곳을 정하여 최소 3000여 곳에 비보풍수를 시행하였다. 일종의 공공 토목공사였다. 국토 개발을 통한 ‘균형발전과 권력(무신정권...

김황식 전 국무총리
입력 2023.03.11. 03:00
일러스트=김영석

지금 노인들의 지하철 무임승차를 둘러싼 논의가 한창입니다. 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특별시 등 광역지방자치단체나 지하철 이용자 등 시민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다양한 견해가 넘쳐납니다. 모든 견해가 나름대로 일리가 있습니다. 무임승차 제도가 처음 도입된 1980년 당시에는 만 70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요금을 50% 할인해주었습니다. 이듬해 기준 연령이 65세 이상으로 하향 조정되었고, 1984년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로 ‘65세 ...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23.03.11. 03:00
덴마크 화가 카를 빌헬름 홀소에(1863~1935)의 그림 ‘촛불 켜고 책 읽기’. 한 여성이 탁자에 앉아 집중해서 책을 읽고 있다. /위키피디아

“가는 곳마다 인생이 뭔지 모르겠네, 날아갈 기러기가 눈밭을 거니는 것 같아/ 진흙 위에 우연히 발자국 남기지만, 날아가고 나면 기러기 행방을 모르네/ 노승께서 죽고 나면 새로운 탑이 서지만, 낡은 벽에서 옛 글씨 볼 길 없네/ 어려웠던 지난날을 기억하는가, 길은 멀고 사람은 지쳤는데 나귀는 절뚝이며 울어댔지(人生到處知何似,應似飛鴻踏雪泥, 泥上偶然留指爪,鴻飛那復計東西, 老僧已死成新塔,壞壁無由見舊題, 往日崎嶇還記否,路長人困蹇驢嘶...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입력 2023.03.11. 03:00
일러스트=유현호

오래전, 노인들이 큰 힘을 갖던 시대가 있었다. 오래 사는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문명이 발달하지 않았던 그때, 다가올 재난을 예측하고, 위기가 닥쳤을 때 벗어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한 이들이 바로 노인들이었으니 말이다. 아프리카 원시 부족사회에서 노인 한 사람의 죽음을 백과사전 한 권이 사라졌다고 얘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의 영향력은 과학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시나브로 쇠퇴했다. 태풍이 오는 것은 기상청이 말...

이옥진 기자
입력 2023.03.11. 03:00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서울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서 연설하고 있는 모습. /대통령실

“조국을 위해 헌신한 선열을 기억하고 우리 역사의 불행한 과거를 되새기는 한편, 미래 번영을 위해 할 일을 생각해야 하는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 모두 기미독립선언의 정신을 계승해서 자유, 평화, 번영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갑시다.”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는 간결했다. 글자 수는 1039자(띄어쓰기 제외), 낭독 시간은 5분 25초였다. 역대 다른 대통령들의 기념사와 비교해 보면, 이례적으로...

김동규 서울대 신경외과학 명예교수·'마음놓고 뀌는 방귀' 저자
입력 2023.03.11. 03:00
일러스트=한상엽

살아서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불길한 예감에 설움이 복받쳐 눈시울이 붉어진다. 무심한 병원 직원은 서둘러 출입 금지 구역인 수술장 안으로 침대를 몰고 총총히 사라졌다. 한동안 목을 길게 빼고 멍하니 복도를 바라보다 옆에 마련된 대기실로 발길을 돌린다. 이제 얼마나 걸릴 줄 모르는 시간을 하염없이 마음 졸이며 기다려야 한다. 눈을 감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미동도 없는 어르신, 연신 묵주를 돌리며 기도문을 중얼거리는 아주머니...

봉달호 '힘들 땐 참치 마요' 저자
입력 2023.03.11. 03:00
일러스트=김영석

유치원에 다닌다고 했으니 여섯 살쯤 되었을 것이다. 어린아이 하나가 쭈뼛거리며 편의점에 들어왔다. 뒤이어 아이를 떠밀 듯 30대 초반쯤 되는 여성이 들어왔다. “사장님이세요?” 그렇다고 했더니 여성은 주머니에서 작은 장난감을 꺼내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초콜릿 과자 안에 들어있는 장난감이다. “이거 여기서 파는 거 맞죠?” 아이에게 왜 이런 걸 팔았느냐고 따지려는 엄마인가 했더니 이어지는 반응이 예상 밖이었...

김황식 전 국무총리
입력 2023.03.04. 03:00
일러스트=김영석

단정히 옷을 입은 사람이 무릎을 꿇고 흰 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뒷모습만으로는 소년인지 어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누가 왜 그런 자세로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앞쪽으로 나아가 몸을 돌려 쳐다보니 아돌프 히틀러입니다. 뜻밖의 만남에 순간 멈칫하며 놀랍니다. 히틀러와 눈이 마주칩니다. 크게 뜬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위치를 옮기자 시선이 저를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니 눈은 약간 위쪽을 바라본 채...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입력 2023.03.04. 03:00
디즈니 애니메이션 ‘판타지아’ 중 ‘마법사의 제자’의 한 장면. 마법에 걸린 빗자루가 집 안이 물바다가 될 때까지 물을 퍼 날라 미키마우스가 곤경에 처한다./월트디즈니컴퍼니

마법사의 연구실. 제자는 스승님의 마법을 배우고 싶다. 하지만 마법사는 허드렛일만 시키고 있다. 제자는 오늘도 물동이 두 개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물을 긷는다. 뜻밖의 기회가 왔다. 마법사가 모자를 벗어놓고 자러 간 것이다. 힐끔힐끔 눈치를 보며 마법사의 모자를 쓴 제자는 어설프게 아는 주문을 외워 빗자루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두 팔을 만들어준다. 제자의 목적은 뻔하다. 우물물을 퍼서 집 안으로 나르는 지루하고 고된 일을 누...

신순규 시각장애인·BBH 시니어 애널리스트
입력 2023.03.04. 03:00
일러스트=한상엽

나는 기업 분석과 채권 가치 측정 등을 토대로 기업들이 발행하는 회사채의 매입과 매각을 추천하는 신용 조사 애널리스트다. 28년이 넘는 월가 경력 중 약 5년간은 기업과 산업 분석을 통해 주식의 가치를 측정하는 주식 애널리스트 일도 했다. 회사채든 주식이든 증시에 직접적 관련이 있는 일을 오랫동안 해서 그런지 주가나 채권 가격이 매일 오르고 내리는 것에 대해 그렇게 심각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기업에 의미 있고 근본적인 변화가...

안형준 국가우주정책연구센터 팀장
입력 2023.03.04. 03:00
미국 건축 스타트업 아이콘이 달 표면에 우주 기지를 건설하는 모습을 나타낸 상상도. 이 업체는 3D(입체) 프린터를 활용해 달에 건축물을 지을 계획이다. /NASA

최근 미국 디트로이트에선 거꾸로 짓는 건물이 등장했다. ‘익스체인지 타워’라는 이름이 붙은 이 16층짜리 건물은 1층부터 쌓아 올리는 방식이 아니라 지상에서 각 층을 먼저 완성하고 통째로 들어 올려 꼭대기 층부터 쌓아 내려오는 방식으로 지었다. 마치 중력을 거스르는 듯 위에서 거꾸로 내려오는 신기한 공법으로 안전성과 비용 효율을 높이고, 공사 기간은 최장 절반까지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혁신적 건물 공사 방식은 지구 밖...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입력 2023.02.25. 03:00
일러스트=유현호

검사의 수사권을 박탈함으로써 경찰만이 수사 주체가 되게 하는 법안, 이른바 검수완박법에 앞장선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이던 시절, 민주당 강경파인 처럼회였다. 당시 민주당은 이를 통과시킬 의지가 없었다. 그때만 해도 검찰은 대통령 말을 아주 잘 듣는 ‘착한’ 사람들이었고, 민주당은 자신들이 향후 20년간 정권을 잡을 거라 자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2년 3월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자 민주당은 갑자기 이 법안을...

봉달호 편의점주·에세이스트
입력 2023.02.25. 03:00
일러스트=김영석

우리 편의점은 오피스 빌딩 안에 있어 손님 대부분이 같은 건물의 직장인이다. 평균 연령은 30대 후반쯤 될까? 편의점 업계에서는 약간 높은 고객 연령대. 그런 가운데 평균을 확 낮춰주는 귀한 손님들이 계시니 건물 5층에 있는 어린이집 꼬마 손님들이고, 또 그런 가운데 평균의 균형점(?)을 찾아주는 손님들이 계시니 꼬마 손님을 모시러 온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다. 사내 어린이집이라 대체로 부모가 퇴근하면서 아이들을 데려가지만, 부모...

김민지 유튜브 '만두랑' 진행자·전 SBS 아나운서
입력 2023.02.25. 03:00
'어린이 정신 건강 주간'에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빈이 런던의 '세인트존스 CE 초등학교'를 찾아 학생들과 '연결'을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켄싱턴 궁전

얼마전 일곱 살 딸과 다섯 살짜리 아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수족구로 입안이 헐어 고생하던 딸이 “나는 요즘 충분히 건강하지 않아. 입안이 너무 아파”라고 하자, 둘째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불쌍한 누나. 그래도 누나의 멘털 헬스(Mental health·정신 건강)는 괜찮지?” 아니, 다섯 살짜리가 정신 건강이라니! 웃음이 나와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들었냐고 물었더니 아이 둘이 입을 모아 이야기합니다. 지금이 ‘칠...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입력 2023.02.18. 03:00
일러스트= 유현호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어린 양이 시냇가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때 늑대 한 마리가 나타나 어린 양에게 호통을 쳤다. “이 어린놈아! 내가 마실 물을 왜 흐리고 있느냐?” 어린 양은 자기가 물을 마시던 위치와 늑대가 선 곳을 찬찬히 살펴본 후,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저는 하류에 있는데 어떻게 제가 늑대님이 마실 물을 흐릴 수 있나요?” 늑대는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순순히 포기하지 않고, 머리를 굴리더니 다시 호통쳤다...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입력 2023.02.11. 03:00
일러스트=유현호

“첫 번째, 은폐합니다. 외부로 발설되지 않게 하라. 어떻게 성희롱 발언이, 공식적 회의에 나왔는데 비밀이 될 수 있나요?” 한동훈 법무장관에 대한 청문회가 열린 2022년 5월 9일, 김남국 의원의 이모 교수 발언, 이수진 의원의 취권 추태 등이 세간의 화제가 됐지만, 내 관심을 끈 건 김경율 회계사가 말한 ‘더불어민주당의 조작 3법칙’이었다. 김경율이 언급한 사건은 민주당 온라인 화상 회의 때 발생한 사건으로, 당시 최강욱...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입력 2023.02.04. 03:00
일러스트=유현호

오두막에서 태어난 가난한 소년 어니스트는 아버지가 없었다. 홀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그는 학교도 가지 못했다. 착하고 영특한 소년의 자질을 알아보고 따로 챙겨주는 선생님도 없었다. 하지만 어니스트는 이름 그대로 정직하고 선량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저 먼 산의 큰 바위 얼굴이 언제나 고개를 들면 어니스트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높은 산에 둘러싸여 있는 분지에 자리 잡은 마을. 옛날 이 골짜기에 살던 원주민들의 전설에 따르면 ...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입력 2023.01.28. 03:00
일러스트=유현호

“언제 주사파에 회의를 느꼈나요?” A씨는 서울대 의대에 입학한 수재였다. 예정대로라면 명의가 돼서 수많은 사람을 치료했을 테지만, 그는 곧 자퇴해 버린다. 입학하자마자 김일성의 주체사상 세례를 받았는데, 학습량이 많은 의대는 주사파 운동을 하기엔 적합하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듬해 서울대 국사학과에 들어간 그는 인문대 학생회장을 지내는 등 본격적으로 주사파 운동을 하고, 졸업 후엔 더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결국 그는 ...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입력 2023.01.14. 03:00
최근 종영한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순양그룹 회장 진양철(왼쪽·이성민 분)이 손자 진도준(송중기 분)에게 그룹 경영권을 물려줄 뜻을 밝히는 장면.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원작 웹 소설과는 전혀 다른 결말로 끝나 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었다. /넷플릭스

최종화 시청률 26.9%를 기록하며 인기몰이를 한 드라마 &lt;재벌집 막내아들&gt;은 13년간 재벌가 가족의 머슴 역할을 하던 윤현우(송중기)가 억울하게 살해당한 뒤 그 재벌집 막내아들 진도준으로 환생, 복수에 성공한다는 내용이다. 그 환생이란 게 현재의 정보를 모두 가진 채 1987년으로 가는 것인지라, 돈을 못 벌려야 못 벌 수가 없다. 예컨대 윤현우는 재벌 회장인 할아버지에게 곧 개발될 분당 땅을 8만평 사달라고 하는...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입력 2023.01.07. 03:00
영화 ‘풀타임’의 한 장면. 홀로 두 아이를 기르는 쥘리가 파리 근교에서 시내로 출근하기 위해 기차역으로 달리고 있다. /슈아픽쳐스

파리 근교에 사는 두 아이의 싱글맘 쥘리 루아(로르 칼라미). 해 뜨기 전에 일어나 아이들을 씻기고 먹이고 이웃집 뤼지니 아주머니에게 아이를 맡긴 후 기차역으로 뛰어간다. 파리 시내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더 힘들다. 철도 파업이 벌써 5일째 계속되고 있다. 대체 노선과 버스, 카풀을 이용해서 가까스로 출근 시간을 맞추고 평소보다 훨씬 늦게 집에 돌아온다. 오늘은 늦지 않겠다고 약속하지만 뤼지니 아주머니는 시큰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