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의료기관평가인증원 8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오른쪽엔 인증원 사무실이, 왼쪽엔 전자 도어록이 설치된 문이 나타났다. 왼쪽 문에는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의 영어 약자(KOIHA)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이 곳은 보건복지부 장·차관이 사용하고 있다. 같은 건물 7층에는 질병청장이 주로 사용하는 공간도 있다.
이 공간은 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인 인증원이 민간 건물을 빌려 쓰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복지부와 질병청이 인증원으로부터 이 중 일부를 다시 빌려서 2016년, 2021년부터 사용하고 있다. 두 기관은 작년 8월 출구를 새로 정비하고 영상회의 시스템을 손보는 등 대대적 공사도 벌였다.
복지부뿐 아니라 대부분 부처들이 이런 ‘편법 서울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교육부는 서울 영등포구의 한국교육시설안전원, 고용노동부는 서울 중구의 서울지방고용청에 장관 집무실을 마련해놓고 있다. 국토부는 서울 정동의 국토발전전시관, 기획예산처는 서울역 앞 한국재정정보원 공간 일부를 서울 사무소로 쓴다.
2012년 이후 세종으로 옮긴 중앙 부처들이 이렇게 서울 사무소를 별도로 운영하는 건 장·차관 일정 상당수가 서울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국회 일정 대응을 위해 회의실을 대관해 쓰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도 이런 서울 사무소가 문제라고 보고 없애겠다고 밝혔다. 행정안전부는 2019년 “세종 소재 부처 장차관들의 서울 집무실을 연말까지 완전히 폐쇄하겠다”고 했다. 장차관들이 세종보다 서울에서 더 많이 근무하고 이 때문에 중간 관리자들이 빈번하게 서울 출장을 가면서 행정 비효율과 조직 역량 저하가 나타날 수 있다는 이유였다. 행안부는 대안으로 공용 업무 공간인 스마트워크센터를 서울역, 국회, 용산 등 서울을 비롯한 주요 대도시에 여러 개 운영하고 있다. 정부서울청사에는 별도의 장·차관용 업무 공간도 마련해 놓고 있다.
그런데도 부처들이 서울 사무소를 없애지 못하는 사정은 뭘까. 한 공무원은 “장차관들 입장에선 다른 부처 장차관들과 같이 있는 것이 어색하고, 결재와 회의를 위해 한 부처 사람들이 20명까지 모이기도 하는데, 스마트워크센터에서는 이런 대인원이 소화되지 않는다”고 했다. 한 전직 관료는 “세종 시대가 됐지만 국회와 청와대가 서울에 있기 때문에 간부들이 서울에 자주 올라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런 기형적인 업무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