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려도 좋으니 찬찬히! 우리 이 곡만 연습하고 쉬는 거야. 자, 하나 둘!”

궁중음악에 맞춰 색동 무늬 긴소매가 공중에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다. 절반의 무용수는 양손에 연꽃을 들고, 나머지는 기다란 한삼을 입었다. ‘하나, 둘’ 선생님의 구령에도 춤사위는 제각각. 회전도 절반은 시계 방향, 절반은 반시계 방향이다. 그러나 한치 어긋남 없는 군무는 이들에게 중요치 않다. 한 곡을 마칠 때까지 포기하지만 않으면 된다. 필로스 장애인 무용단이 선보인 궁중 잔치 춤 ‘진풍정’은 이렇듯 진지하고도 흥겹게 끝이 났다.

필로스 하모니의 무용단은 발달장애인으로 구성됐다. 한국 무용과 발레를 연습해 지역 요양원, 암 환자 병동, 교도소 같은 곳에서 공연을 한다. 2007년 시작해 현재는 무용단 20명과 특수체육단 10명이 활동한다. 단원들은 14세부터 34세까지, 특수교육 대상자부터 중증 발달장애인까지 속해 있다. 당초 계획은 단원들을 1년 후 졸업시키는 것이었지만, 한 단원 부모가 ‘제발 우리 아이 무용하게 해달라’고 부탁한 뒤로 지금은 ‘쫓겨날 걱정 없는 무용단’이 되었다.

단원들 앞에서 쉰 목소리로 구령을 외치는 선생님은 임인선(58) 대림대학교 스포츠지도과 교수다. 무용을 전공한 그는 무용이 ‘예쁜 사람의 전유물’이 되는 것에 반대했다. 대신 무용하는 사람은 모두 아름다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장애인 무용 교육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물이 ‘필로스 하모니’. 2013년에는 평창 동계 스폐셜올림픽 세계대회 개회식에서 발달장애인 공연의 안무 감독을 맡았다. 지난달 임 교수를 만났다.

필로스 장애인 무용단이 첫 수료생을 배출했던 2006년, 임 교수에게 한 단원의 부모가 '우리 아이 계속 무용하면 안될까요'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다음 해부터 필로스 하모니를 대림대학교(총장 황운광)와 안양시의 도움을 받아 '평생 쫓겨나지 않는 무용단'으로 만들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단원으로 들어와 세계 무대까지 섰다

임 교수를 만난 건 비대면 화상으로 진행됐던 무용 수업이 대면으로 재개된 첫날이었다. 마지막 대면 수업 이후 8개월 만이었다. “전부 다 잊어 버렸어, 어쩌면 좋을까!” 안타까움이 담긴 말과는 달리 임 교수의 표정은 밝았다. 그동안의 비대면 수업으로는 제약이 많았던 탓이다. 오랜만의 대면 연습에 실수는 잦았지만 단원들은 공연용 의상을 입고, 서서히 대열을 맞춰 나갔다.

-단원 내에서 ‘도우미’ 역할을 하는 무용수가 있던데요.

“원년 멤버 조동빈(27)이에요. 고1 때 단원으로 들어와 10년 넘게 함께 활동하면서 수석 무용수가 됐죠. 큰 보폭, 빠른 템포로 움직이는 강강술래 작품을 하면서 무용에 푹 빠졌대요. 우리 단원 중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무대에도 나선 유일한 무용수죠. 2013년 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 개막 공연이었는데, 개막 1주일 전부터 종일 훈련하느라 고생 엄청 했어요.”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걸리나요.

“우리 목표는 완벽이 아니에요. 동작을 가르치면 금방 따라 하지만 여러 동작을 이어서 한 작품을 완성하기란 쉽지 않죠. 실수 없이 하려면 아마 10년도 더 걸릴 거예요. 하지만 반복하면서 동작이 몸에 익숙해지고, 2~3년 지나면 더 아름다운 몸짓으로 변하는 게 느껴져요. 모두 신나서 연습하는데,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지난달 중순, 거의 1년 만에 외부 공연을 했지요?

“코로나로 공연이 전부 취소됐죠. 물론 연습만으로도 의미 있지만, 열심히 노력한 결과물을 자랑하고 싶잖아요. 거리 두기 단계가 완화됐던 지난달 19일 수원 호매실 장애인 종합복지관에서 공연을 했어요. 오랜만의 공연이다 보니 웃지 못할 일도 많았죠. 특히 임효진(21) 단원은 한국 무용 ‘여화향기’라는 춤을 추는데, 관객 호응에 기분이 좋으니까 뱅글뱅글 돌다가 멈추지 않고 계속 회전해버린 거예요. 못 말리는 의욕 과다 학생이죠, 하하!”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무용이 예쁜 사람의 전유물이라고?

-무용을 시작하게 된 건 어머니의 ‘이 한마디’ 때문이라던데요.

“아홉 살 때 어머니가 말씀하셨어요. ‘여자가 우아해지려면 무용을 해야 해.’ 단순히 외모만 가꾸라는 뜻은 아니었어요. 전 무용을 통해 사람에게서 나오는 건강한 에너지도 부단히 가꿨거든요. 그러다 초등 5학년 때 ‘꽃의 왈츠’ 발레 공연에서 주연을 맡았어요. 저를 동료들이 꽃처럼 에워싸는 동작이 있는데, 그때의 벅차오르는 기분이 지금껏 저를 무용의 길로 잡아 둔 것 같아요.”

-무용을 계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뭔가요.

“고등학교 땐 수업이 끝나면 4~5시간씩 무용 연습을 했어요. 발레용 토슈즈를 신으면 엄지발가락과 뒤꿈치 살이 벗겨지는 건 예삿일이죠. 친구끼리 상처에 소고기 살코기를 붙이면 금방 낫는다는 얘기를 했어요. 어머니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다음 날 밤 소고기를 한 뭉텅이 사오신 거예요. 그리고 핏물 짠 고기를 제 발에 직접 싸매주셨죠. 그 귀한 고기를 제 발에다가. 그때부터 저도 독기에 받쳐 죽어라 연습을 했죠.”

-그런데 왜 장애인을 가르치게 됐나요.

“이화여대에서 발레를 전공했는데, 두 가지 의문이 들었어요. ‘무용이 예쁜 사람의 전유물인가?’ 동기들은 죄다 깡마르고 길쭉한 몸매였고, 그런 몸매가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회의가 들었죠. 또, ‘표현 하나에 하나의 동작만 허용되는 건가?’ 예를 들어 ‘결혼해주세요’는 오른손으로 왼손 넷째 손가락을 가리키는 동작을 해야 해요. 그런데 저는 다른 동작으로도 더 다양하게 의미를 드러낼 수 있지 않나, 이런 의문이 들었죠. 무용을 더 깊이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장애인 무용단을 꾸릴 결심도 그때 했나요.

“막상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몰랐어요. 그러다 1987년 미국 여행 중 컬럼비아 대학 도서관에 갔다가 ‘무용 요법(therapy)’에 관한 책을 접했어요. 보자마자 ‘이거다’ 싶었고, 이걸 전공으로 삼아 박사 학위를 받았죠. 또 한번 눈이 번뜩 뜨인 순간은 서울대 장애아동 체육교실 故 김의수 교수를 만나고서예요. 김 교수는 장애 유형별로 체육 활동을 했는데, 저는 체육 대신 무용을 가르쳐 보기로 결심했죠.”

/필로스 하모니 제공

◇단원들이 원치 않는 ‘졸업’은 없다

-’평생 쫓겨나지 않는 무용단’이라는 건 무슨 뜻인가요.

“필로스 하모니의 목표는 장애인도 무용과 체육의 기쁨을 누리게 하는 거예요. 무용을 배우려는 장애인은 많았지만 무한정 정원을 늘릴 수는 없었죠. 교사 1명당 코치할 수 있는 단원 수는 정해져 있으니까. 그래서 1년 교육받으면 졸업시키기로 한 건데, 첫 수료생을 배출했던 2006년 졸업식장에서 펑펑 울고 말았죠. 27명의 아이들을 안아주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는지. 그때 한 어머니가 말했어요. ‘우리 아이들이 평생 쫓겨나지 않을 무용단을 만들어 달라’고.”

-그 말 한마디 때문에 마음을 바꾼 거군요.

“필로스는 그리스어로 ‘사랑’이라는 뜻이에요. 그날 어머니 말을 듣고 우리 이름에 부합하는 무용체육단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현실은 녹록지 않았지만 타협할 순 없었어요. 장애 학생일지라도 무용을 전공한 지도 강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하고, 무용 의상이나 활동복은 제대로 갖춰야 했죠. 마이너스 통장부터 대출까지 사비를 쏟아부어서 필로스 하모니를 꾸려왔어요.”

-공연 준비는 혼자 하나요?

“의상부터 소품 챙기는 것처럼 온갖 일들이 많아요. 그때 현장 스태프를 자청하는 이들이 있어요. 대림대 학생으로 이뤄진 ACE 봉사단이죠. 그들 중에는 필로스 하모니 덕분에 진로를 바꾼 경우도 있어요. 장애인 스포츠 지도사가 되겠다고, 어떤 공부를 더 하면 좋겠냐고 상담을 해오더라고요.”

/필로스 하모니 제공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다면요.

“6년 전 8월 6일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요. 새벽 6시부터 단원들이 버스로 반나절을 꼬박 달려 한센병 환자들이 있는 국립소록도병원에 도착했어요. 머릿속으론 ‘관객들이 위급한 상황이면 어쩌지’ ‘단원들이 보고 놀라면 어떡하나’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공연은 생각보다 차분했어요. 환자 분들은 장갑을 끼고, 링거를 꽂은 채 박수를 보냈고요. 공연 마치고 나오는데, 휠체어 탄 할머니가 제 등을 두드리면서 ‘참 수고했다’ 그러세요. 그 말이 오묘하게 따뜻하더라고요. 돌아오는 길, 단원들에게도 말했죠. ‘너희들 참 수고했다!’”

이날 2시간의 무용 연습이 끝나고, 연습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한 어머니가 임 교수를 붙잡고 말했다. “오랜만에 대면으로 무용 수업 해서 너무 기쁘네요. 아이 웃는 걸 며칠 만에 보는 건지….” 그러자 임 교수가 답했다. “그럼요. 저희가 무용을 왜 하는데요, 움츠린 몸 펴고 가슴을 활짝 펴다 수 있잖아요. 내가 무슨 감정인지 알아차릴 수도 있고요. 제가 말씀드렸죠. 언젠가 한국 장애인 문화‧예술‧체육 학교를 만들 거라고. 장애인들이 무용과 체육을 왜 해야 하는지 보여주자고요. 그 과정에서 잠시 주춤하더라도, 우리 아이들처럼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달려가자고요. 장애인도 세상의 중심이 되는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