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법무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곧바로 그를 둘러싼 자녀 입시 비리 등 각종 의혹들이 쏟아졌다. 여론이 급격히 나빠지는 와중에도 민주당은 침묵했다. 그때 초선 김해영 의원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조 후보자의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인사청문회에서 진실된 사실 관계를 명확히 밝혀주길 바란다.” 그러자 김 의원 전화기에는 2000통 넘는 문자 폭탄과 전화가 쏟아졌다. ‘튀어 보려고 용을 쓰네’ ‘야, 이 나쁜 XX야’…. 김해영(44) 전 의원은 말했다. “발언 수위가 그리 높지도 않은데, 당시에는 이 말 한마디 하는 데도 보좌진이 모두 뜯어말렸고, 나도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그만큼 우리 당이 경직돼 있었던 거다.”
김해영은 2016년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당내 유일한 30대 의원으로 청년 정치를 이끌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현재, 민주당의 청년 정치는 갈 길을 잃었다. 지난 4월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하자 초선 의원 5명은 조국 사태 등을 거론하며 자성을 촉구했으나, 강성 지지자들은 이들을 ‘초선 5적’ ‘초선족’이라고 몰아붙이며 진압했다.
2030세대는 현재 자신들이 꼰대라고 손가락질했던 국민의힘으로 지지 정당을 옮겨가고 있다. 민주당의 청년 정치는 왜 실패했을까. 지난 22일 부산에서 김해영을 만났다. 김 전 의원은 지난해 총선에 떨어진 뒤, 부산 연제구 법조타운에 변호사 사무실을 차렸다. 2명의 변호사, 3명의 사무직원과 함께 일하고 있다.
◇”경직된 민주당, 청년정치 힘들어”
-당신보다 여덟 살 어린 이준석씨가 국민의힘 대표가 됐다.
“(이 대표가) 10년 정치하면서 내공이 생겼다. 기회를 잘 얻어서 비대위원·최고위원을 했고, 정당의 핵심 역할과 메커니즘을 깊숙이 들여다봤다. 누구 쫓아다니면서 정치한 게 아니고, 본인 나름의 생각을 갖고 했다. 현안에 대해 입장을 분명히 밝힌다. 정치인들이 술자리에서나 하는 얘기를 방송에 나가서 세게 얘기한다. 국민이 시원함을 느꼈던 것 같다.”
-민주당에서는 왜 ‘이준석'이 안 나올까.
“당이 경직돼 있다. 다양성이 억압돼 있고, 소위 친문이라고 하는 주류의 장악력이 강하다 보니, 이준석 같은 인물이 나오기 어렵다. 우리 당에서도 이 대표 같은 역할을 누군가 했어야 하는데, 몇 사람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내가 현역 의원일 때는 나와 금태섭 전 의원, 조응천·박용진 의원 정도가 다른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큰 흐름을 바꾸긴 어려웠다. 4월 재·보선 참패 후 초선 의원 5명이 용기 있는 목소리 냈다가 진압당하는 걸 봐라. 입장문을 보면 크게 예민한 내용도 없었다.”
-지금 민주당에선 청년 정치가 보이지 않는다.
“내가 당선됐던 20대 국회 때도 청년들은 희망이 안 보인다고들 얘기했다. 지금은 더 어려워졌다. 청년 정치는 청년들이 원하고 바라는 것을 하는 건데, 지금 청년들은 부동산과 교육 격차를 해결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시행하는 청년 정책이 꽤 많다. ‘청년내일채움공제’라는 게 있다. 청년이 2년 정도 중소기업에서 일하면 본인과 정부, 사업주가 일정 부분씩 부담해 1200만원 목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다. 그런데 그렇게 목돈을 모아도 1년에 집값이 몇억씩 오르니, 언 발에 오줌 누기다. 결과적으로 청년 정책이 실패한 것이다.”
-민주당이 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나.
“선거 때 지지층을 너무 의식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아파트 공급을 대폭 늘리고, 보유세를 강화하는 기조를 분명하게 했으면 나아졌을 거다. 조세 정책을 표나 선거를 의식해 펼치다 보니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지 못했다. 또 부동산 대책 관련된 인사(人事)에서도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누군지 이름은 말하지 않겠다.”
◇“문 대통령 인사, 정에 이끌려 했다”
김해영은 1977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집안 사정 때문에 고모 밑에서 컸고, 고등학교 1학년 때는 돈을 벌겠다고 공장과 공사판에서 일하다가 1학년을 2년 동안 다녔다. 고3 때도 돈을 벌겠다며 ‘직업반’에 들어갔다가 막판에 마음을 고쳐먹고 부산대 법대에 진학했다. 2009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2011년 사법연수생 시절 변호사 시보를 법무법인 ‘부산’에서 했다. ‘부산’은 노무현·문재인 두 대통령이 세운 로펌이다. 두 달여 일하는 동안 문재인 대통령과 김외숙 현 청와대 인사수석 등을 만났다.
-노무현·문재인 두 정치인을 의식해 ‘부산’을 골랐나.
“아니다. 공익 사건을 전문으로 많이 하는 로펌에서 변호사 시보를 하며 배우고 싶었다. 부산에 있던 아내도 수도권 말고 고향으로 내려와서 하길 원했다. 그래서 법무법인 부산을 택했다. 그때 문 대통령은 정치 입문 직전에 펴낸 책 ‘운명’을 쓴다고 사무실에 자주 나오셨다. 상당히 맑은 분이라고 느꼈다. 본인이 맡았던 재심 사건 기록을 보라고 주셨고, 시민사회와 만남도 주선해주셨다.”
-10년이 지난 지금 문 대통령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나.
“변호사로서 공익적인 활동을 아주 훌륭하게 하신 건 사실이다. 대통령으로서 잘한 부분도 있다. 다만 아쉬운 부분 하나는 인사(人事)다. 인사에서 인재를 두루 기용하지 못한 점이 있다. 때로는 인정(人情)에 이끌린 부분도 있는 것 같다. 부동산 관련 인사나 조국 전 장관 등이 그런 예다. 대통령은 공적인 자리고, 워낙 큰 권한과 책무를 가졌으니, 개인적인 정은 뒤로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정치는 왜 시작했나.
“초등학교 때부터 고모 밑에서 자랐다. 고모는 종일 장사하러 나가서 주로 사촌 누나, 남동생과 함께 지냈다. 고1 때는 돈 좀 벌어보겠다고 구두 밑창을 본드로 붙이는 공장 등에서 반년 정도 일했는데, 한 달에 30만원 정도 벌었다. 그렇게 크다 보니 미성년 아이에게 가정환경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어려운 아이들이 불리한 위치에 몰리지 않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모의 재력이 자녀의 학력과 소득으로 대물림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나 홀로 조국·윤미향 비판, 갑갑했다
그는 조국 사태 등 민주당에 대한 ‘내로남불' 비판이 터져 나올 때마다 쓴소리를 했다. 작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비례 정당 창당 논란이 터졌을 때는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고 했고, 총선 직후 윤미향의 정의연 회계 부정 의혹 등이 쏟아져 나오자, “참담하다”며 회계 공개를 요구했다. 인터뷰 당일 윤미향 의원은 부동산 명의신탁을 했다는 의혹으로 민주당에서 제명을 당했다.
-조국에 대한 쓴소리를 할 때 두렵지 않았나.
“고민 많았다. 대통령 인사권에 대한 부분이고, 조 전 장관이 우리 진영에서 절대적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으니까. 보좌진도 말리더라. 그렇지만 내가 ‘부모 재력이 자녀의 학력과 소득으로 되물림되는 것을 막겠다’며 정치판에 들어갔는데 조 전 장관의 자녀 특혜 의혹에 침묵한다는 건 말이 안 됐다. 또, 당에서 가장 젊은 의원으로 청년의 목소리를 전달해야 하지 않나. 그래서 보좌진에게 말했다. ‘쪽팔려서 가만히 못 있겠다’고.”
-오늘 윤미향 의원이 제명당했다.
“작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문제가 터졌을 때도 윤 의원은 제대로 소명하지 못했다. 당시 민주당은 온정주의로 일관했다. 당 지도부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도, 이를 진영의 문제로 봤다.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된다는. 이해찬 대표의 판단이 아쉽다.”
-최고위원으로 더 강하게 얘기했어야 하지 않나.
“나와 이해찬 대표를 포함해 당 지도부가 9명이다. 보통 언론에 공개되는 회의 전에 비공개회의를 하는데, 공개회의 때보다 훨씬 강하게 ‘이러면 안 된다’고 의견을 냈다. 조국·윤미향 사건 때뿐만 아니라, 부동산 임대차3법 통과시킬 때도 일방으로 강행 처리하면 안 된다고 했다. 문제는 지도부 9명 가운데 나 말고 다른 의견을 낸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갑갑했다.”
-민주당 떠나라는 얘기 많이 들을 것 같다.
“탈당하라는 사람들 물론 있다. 그런데 나는 평등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특히 교육 분야에서 만큼은. 인간의 본성상 경쟁이 없을 수는 없지만, 재도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성장도 중요하지만 격차를 줄여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이 내 몸에 맞는다. 다만 지금의 민주당은 남북 관계 정도를 제외하고는 국민의힘과 정책적인 부분에서 큰 차이가 없다.”
-쓴소리 한마디씩 할 때마다 문자 폭탄이 엄청났을 텐데.
“전화와 문자, 2000~3000통씩 온다. 처음엔 상당히 타격받고 위축되지만 여러 번 겪다 보면 적응이 된다. 문자 폭탄이 정치적 의사표현이라지만, 그게 다른 사람의 의사표현을 억압하는 방식이 돼서는 안 된다. 당에서 단호하게 선을 긋고, 자제시켜야 한다.”
-윤석열·최재형 등 현 정권이 임명한 사정기관장들이 반대 진영으로 건너가 대선에 나서려고 한다. 왜 현 정부에서만 이런 일이 일어나나.
“사정기관장들이 임기도 안마치고 출마하는 것은 물론 적절치 않다. 다른 한편 생각해보면 대통령이 검찰총장이나 감사원장을 임명하더라도, 임명 이후에는 헌법적 권한과 책무에 따라 중립적으로 일하는 게 맞는다. 우리 당에서 너무 우리 쪽으로 맞추려고 한 부분이 (그들의 출마에) 영향을 준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당내 비주류로 계속 남는 게 두렵지 않나.
“아무래도 내가 속한 조직에서 비난받는 것은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내가 하고 싶어서 (쓴소리)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얘기할 뿐이다. 그것이 비주류 의견이라고 하면 비주류로 남아야지 어쩌겠나. 굳이 주류가 되기 위해 주류에 편승할 이유는 전혀 없다. 일부러 비주류 남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옳다고 바람직하다고 하는 건 정치하는 한 계속할 거다.”
-민주당이 다음 대선에서 이길 수 있겠나.
“우리당 뿐만 아니라 다른 당 대선 후보도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핵심적인 갈등에 대해 명확하게 본질을 찔러줬으면 좋겠다. 현재 판세로는 우리당이 조금 열세다. 경합 열세, 아직도 시간은 많이 남아 있다. 여러 변수가 있을 거다.”
-부산 생활은 만족스러운가?
“지금 초등학교 5학년 딸, 3학년 아들, 다섯 살짜리 딸을 키운다. 2016년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4년간 비행기로 500번 서울과 부산을 왔다 갔다 했더라. 청년 정치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나같이 어린 애들을 키우는 아빠·엄마가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못 보낸다는 점이다. 지금 아내와 아이들은 내가 국회의원일 때보다 훨씬 좋아한다. 매일 집에서 출퇴근하고, 아이들과 더 많이 놀아주니까,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