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수임 류코쿠대 교수가 23일 수업에서 사용해 온 안 의사의 유묵(복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안중근의 평화사상과 관련, 그의 유묵이 소프트파워로서 갖는 힘이 강력하다”고 말했다. /교토=이하원 특파원

“안중근 의사는 1910년 사형집행 전까지 5개월의 짧은 기간에 많은 일본인 간수와 신뢰 관계를 구축할 수 있던 분입니다. 그가 강하게 희망한 한일 화해와 동양 평화가 진전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올해 신설된 ‘안중근 동양평화상’의 첫 수상자는 일본에서 나왔다. 교토에 위치한 류코쿠대(龍谷大) 안중근 동양평화연구센터는 안중근의사숭모회가 제정한 이 상을 26일 받는다.

23일 류코쿠대 교정에서 만난 리수임(李洙任) 안중근동양평화연구센터장은 “안중근 평화사상의 핵심은 이질(異質)적인 상대와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라며 이번 수상이 일본에서 안중근 연구를 주목받게 하며 활력을 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황식 전 총리는 전화 통화에서 “안중근 동양평화연구센터는 대학 부설 기구로 일본에서 안 의사를 체계적으로 알린 최초의 단체”라며 “안 의사의 평화 사상을 일본 사회에 전파하기 위해 노력해왔을 뿐만 아니라 일본 학생들에게 그를 올바르게 교육해왔다”고 평가했다.

자신을 재일교포 2세가 아니라 ‘한국계 일본인’으로 소개하는 그가 안중근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한일 강제 합병(合倂) 100주년을 맞은 2010년 무렵이다. 1995년부터 류코쿠대에서 영어 교육을 가르쳐 온 리 교수는 이곳에 안 의사가 남긴 유묵(遺墨)이 4점 있는 것을 알게 된 후, 그의 사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류코쿠대는 안 의사가 사형집행 전에 쓴 ‘不仁者不可以久處約’(불인자불가이구처약·어질지 않은 사람은 곤궁에 처하면 오래 견디지 못한다),’戒愼乎其所不睹'(계신호기소불도·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경계하고 삼간다), ‘敏而好學不恥下問’(민이호학불치하문·배우기 좋아하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를 소장하고 있다. ‘독립’, 단 두 글자를 한자로 크게 쓴 유묵도 있다. 여기엔 모두 왼손 약지가 없는 장인(掌印)이 뚜렷이 찍혀 있다. 이 유묵은 안 의사가 초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순국하기 전에 만난 일본인 스님을 통해서 시즈오카현의 사찰에 보관돼 오다가 1997년부터 류코쿠대학 도서관으로 옮겨졌다.

리 교수는 “안 의사가 남긴 고인의 유묵은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2013년 안중근 동양평화연구센터를 만든 그는 이 유묵을 활용해서 2015년부터 ‘동아시아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안 의사의 평화 사상을 강의해왔다. 누적 수강생은 약 800명. “안 의사는 동양 평화에 대한 소망을 담아서 소프트 파워로서 많은 유묵을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안 의사의 유묵을 보여주면서 수업을 하면 많은 학생이 감동을 합니다.”

그는 “수업에 참가한 학생들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 훌륭한 발상을 하는데, 한 학생이 안 의사가 민족, 인종을 뛰어넘은 대화를 실천하는 월경(越境)을 했다고 말했을 때 놀랐다”고 밝혔다.

일본대학에 안중근 연구센터를 만드는 데 반대는 없었을까. “류코쿠대의 설립 이념에는 인류의 대화와 공존을 바라는 평화의 마음이 담겨 있다”며 “학교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했다. 현재는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독일 철학자 칸트의 ‘영구평화론’과 연관 지어 해석해 주목받은 마키노 에이지 호세이(法政)대 교수 등 15명이 비상근 연구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안중근 동양평화연구센터는 안중근의사숭모회와 연대해 2014년부터 매년 학술 심포지엄을 열어 그의 평화사상을 발전시키고 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 상황에서도 일본의 대표적 진보학자인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등이 참가한 가운데 화상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안중근과 동양 평화-동아시아의 역사를 둘러싼 월경(越境)적 대화’를 출간하기도 했다.

우익 인터넷 사이트에 “조센징이 테러리스트를 추모하는 센터를 운영한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이달 말 정년퇴직하는 그는 이 센터의 사무국장을 맡아 계속 안중근 사상의 일본 내 전파를 위해 힘쓸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