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 실적에 따라 ‘팀장’으로 승진하는 위계 구조를 갖춘 20대 중심 대포통장 유통 조직이 경찰에 적발됐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법인 명의 대포통장을 대량으로 개설해 국내외 보이스피싱 조직에 유통한 범죄 단체 조직원 28명을 검거하고, 이 중 20명을 구속했다고 11일 밝혔다.
이들은 이른바 ‘장집(대포통장집의 은어)’으로 불리는 조직을 결성해 2022년 7월부터 올해 4월까지 약 3년간 유령 법인 218개를 설립하고 법인 계좌 400여 개를 개설해 보이스피싱 자금 세탁에 이용했다. 피해자 89명으로부터 가로챈 금액은 총 500억원에 달한다.
경찰은 지난해 7월, 서울 시내 한 은행에서 통장을 버리고 달아난 남성의 112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해 법인 명의 대포통장을 압수했다. 이후 계좌 거래 내역과 CCTV 등을 추적한 끝에 총책, 부총책, 관리자급 팀장, 인출·관리책 등 하부 조직원까지 총 28명을 차례로 검거했다.
조직원 대부분은 1995년부터 2002년생 사이의 20대 초중반으로 구성됐다. 고등학교 동창, 동네 선후배 등 지인을 통해 포섭됐다. 이들은 본명을 사용하지 않고 텔레그램 아이디로만 소통하며 치밀한 분업 구조를 갖췄다.
◇범행 실적이 인사고과…‘팀장 승진 코스’까지
조직 내부는 ‘총책–부총책–팀장–현장직·사무직’으로 위계가 짜였고 각자 역할도 명확했다. ‘현장직’은 유령 법인 명의 계좌를 직접 개설하거나 현금을 인출하고 전달하는 실무를 담당했다. ‘사무직(전산직)’은 텔레그램 단체 대화방 운영, 전화 상담, 대포폰·OTP카드 관리 등 기술·지원 업무를 맡았다.
범행 실적에 따라 인출책 등 하부 조직원이 팀장으로 ‘승진’하는 방식으로 운영됐고, 조직 내 승진 구조와 역할 분담을 통해 구성원 대부분이 범행 수법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됐다고 경찰은 전했다.
피해금은 개설된 대포통장을 통해 입금받은 후, 2차로 다른 대포통장으로 이체된 뒤 수표로 인출되거나 상품권으로 전환되는 방식으로 세탁됐다. 경찰은 이 같은 수법을 통해 피해자 89명으로부터 총 500억원 상당을 뜯어낸 것으로 보고 있다.
검거 현장에서 현금 6000만원을 압수했으며, 불구속 수사 중인 조직원들의 범죄 수익 약 3억원에 대해선 기소 전 몰수보전 신청을 진행 중이다. 경찰은 “본 사건은 보이스피싱 범죄가 단순 범행을 넘어, 철저히 기획된 위계 조직 형태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