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경복궁 담벼락에 10대 남녀가 금전적인 대가를 약속받고 ‘낙서 테러’를 한지 채 한 달도 안 돼 서울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 내부에서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정체불명의 낙서가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경찰에 따르면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2일 오전 영등포구 여의도동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 역사에 스프레이 낙서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 신원불상의 작성자를 추적 중이라고 밝혔다. 역사 6번 출구로 올라가는 통로 벽면에 작성된 낙서의 내용은 “대한민국 4부 1≒10″ “日 법 정치 正? 법조인위용 1≒1.05?”로 해석이 어려운 문구였으며, 검은색과 빨간색 스프레이를 혼용해 작성된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해당 낙서는 서울 지하철 9호선을 운영하는 서울시메트로9호선 측에 의해 모두 지워진 상태다. 2일 오전 10시 30분쯤 방문한 국회의사당역 6번 출구 통로에는 에스컬레이터 인근에 있던 낙서가 모두 지워진 상태였고 미세한 스프레이 자국만 남아 있었다. 다만 낙서가 있던 벽 인근에서는 지독한 세제 냄새가 풍겼다. 9호선 관계자는 “2일 오전 사건을 인지한 뒤 알콜 성분이 있는 스티커 제거제를 이용해 낙서를 모두 지웠다”고 전했다. 국회의사당 역사 청소 노동자 A(66)씨는 “새벽 6시쯤 출근할 때부터 낙서가 있었다”며 “성인 엄지손가락 두께의 스프레이 낙서를 처음에 혼자 지우다가 너무 오래 걸리고 힘들어 청소팀장, 남자 역무원까지 붙어 5명이서 1시간 30분 동안 지웠다”고 했다. 이어 “걸레와 종이로 낙서를 지우는데 눈물이 날 정도로 냄새도 독하고 마스크를 써도 목이 칼칼할 정도로 성분이 독했다”며 “걸레에 묻은 스프레이 자국은 닦이지도 않는다”고 했다.
서울시메트로 9호선에 따르면 낙서가 작성된 통로는 지하철 운영이 끝난 새벽 시간대에도 셔터가 내려가지 않고 시민 통행을 위해 열어두는 곳이라고 한다. 사람이 없는 새벽을 틈타 범행이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해당 통로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등을 분석해 작성자 추적을 비롯한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국회의사당역 낙서 범죄를 두고 지난달 발생한 경복궁 담벼락 낙서 테러와의 모방 범죄가 아니냐는 말도 나왔지만 경찰은 두 사건 간 연관성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고 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이날 오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두 낙서 간 직접적인 관계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낙서의 성격을 봤을 땐 목적이 달라 보인다”고 했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지난달 16일 종로구 경복궁 인근 담벼락에 스프레이를 이용해 ‘낙서 테러’를 한 10대 범인 임모(18)군과 김모(17)양을 문화재보호법 위반, 재물 손괴 등 혐의로 체포해 조사 중이다. 이들은 “불법 영상 공유 사이트 관련 낙서를 경복궁 담벼락에 쓰면 수백만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10만원의 선입금을 받은 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한 달새 연이어 발생한 낙서 테러의 재발을 막으려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경복궁과 국회의사당역) 낙서의 성격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공공장소에 낙서를 했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이라며 “이러한 낙서 테러는 사회적으로 미치는 피해는 큰데 반해 실형을 사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이어 “단순히 형사 처벌을 강화하는 것뿐 아니라 피해복구 비용도 확실히 물어내게 해야 조금 더 경각심을 가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