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여. 보고 있는가. 우리가 목이 터져라 외치던 독립을 했어. 우리가 헛되지 않았음을, 틀리지 않았음을, 이 대성한 대한민국이 이야기해주고 있네.”
지난달 15일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 ‘세상에서 가장 늦은 졸업식’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린 강당에 불이 꺼지고, 강당 앞 화면에 흰색 반팔 와이셔츠 교복과 학생모를 쓴 소년이 등장했다. 인공지능(AI) 기술로 복원된 독립운동가 고(故) 김찬도(1907~1994) 선생이었다.
김 선생은 수원고등농림학교에 다니던 1926년 6월, 항일 학생 비밀결사 건아단(健兒團)에서 활동한 학생 독립운동가다. 1928년 수원역에서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 갇혔고 퇴학 처분됐다. 김 선생은 항일 학생 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1980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국가보훈부는 이날 기업 빙그레와 함께 학생 독립운동가들을 위한 ‘세상에서 가장 늦은 졸업식’을 열었다. 김 선생을 포함해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퇴학이나 정학 등 부당한 징계를 당해 학업을 포기해야 했던 애국지사들을 위한 졸업식이었다.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에 퇴학‧정학 등의 징계 기록이 있는 학생 독립운동가 222명 중 복원 가능한 사진 자료가 있고 후손들이 동의한 94명이 명예졸업식의 대상자로 선정됐다. 독립운동 참여로 학업을 포기한 애국지사들은 총 2596명으로 추정된다. 빙그레 측은 지난 11일 유튜브에 4분 40여 초 분량의 졸업식 영상을 공개했고, 광복절인 15일 오후 영상 조회 수는 220만회를 넘어섰다.
졸업식 현장에는 150여 명의 학생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참석했다. 이들은 고인이 된 아버지·어머니를 대신해 학사모와 졸업 가운을 입고, 국가보훈부가 제작한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AI로 복원된 김찬도 선생은 졸업사에서 “한번은 형무소 재감 중에 ‘출옥 후 어떻게 살 것이냐’는 취조에 나는 서슴지 아니하고 ‘독립운동을 계속하겠다’고 답해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사흘이 넘도록 취조실에 갇혀 있던 기억도 난다”며 “허나 괴로운 시간들은 독립의 성업이라는 목표와 동지들이 있었기에 그것은 내게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퇴학당해 직장을 구하지 못한 어려움도 있었고 학창 시절에 대한 아쉬움도 남아있을 터이지만 오늘 이 자리에 가족들과 함께 있으니 그런 괴로움과 마음 따위야 다 무용하다”며 “동지들이여, 우리를 위해 마련된 졸업을 함께 축하하세”라고도 했다. 졸업사 내용은 생전 김찬도 선생의 자서전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됐다. 졸업사를 듣던 이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공개된 영상에는 연희전문학교 재학 중 학생들과 항일 결사 조직을 만들었다가 퇴학 처분을 당한 윤주연 선생의 후손,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퇴학 처분을 당한 서귀덕 선생의 후손들도 등장했다. 서귀덕 선생의 후손 김률씨는 “(학교에서) ‘너는 퇴학이다’(라고 했을 때 서귀덕 선생은) ‘내가 잘못한 건 없다, 우리는 떳떳하다’ 아마 이렇게 얘기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했다. 김찬도 선생의 딸 김은경씨는 ‘늦은 졸업식’이란 표현에 대해 “늦긴 뭐가 늦어요. 잊지 않고 기억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졸업식 영상 댓글 창에는 “선열들의 희생으로 이렇게 저희가 자유롭게 살아간다” “독립에 헌신한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등의 반응이 달렸다.
빙그레는 졸업식 참석자들의 선조인 학생 독립운동가들의 학창 시절 사진을 AI 작업으로 복원해 졸업 앨범을 만들어 후손들에게 전달했다. 빙그레 측은 졸업 앨범을 오는 11월 3일 학생독립기념일에 대중에게 공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