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호 어린이 병원’도 휴일 진료 중단 - 지난 4일 오전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국내 1호 어린이 병원 소화병원 정문 유리문에 휴진 안내문이 붙었다. 소화병원은 1946년에 소화의원으로 문을 연 이래 주말과 공휴일에도 오후 6시까지 진료를 해왔지만, 지난 3일 소아과 의사 1명이 사직하면서 휴일 진료가 중단됐다. /뉴스1

대구 중구에 있는 경북대병원은 매주 금요일 오후 7시부터 일요일 오전 8시까지 응급실에서 심정지 등 중증 응급환자를 제외하면 소아과 진료를 하지 않는다. 소아 환자를 볼 수 있는 의료진이 부족해서다. 2020년만 하더라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레지던트) 4명을 뽑아 정원을 채웠지만, 이듬해부턴 전공의 지원자가 없어 1명도 뽑지 못했다.

이 병원 응급실을 찾은 소아청소년 환자는 2020년 519명에서 2022년 831명으로 60% 늘었다. 경북대병원 관계자는 “작년 응급실 소아 전담 전문의를 3명 채용했고, 추가 인력을 모집하고 있으나 지원자가 없는 상황”이라며 “소아청소년과 1~3년 차 전공의도 아예 없어 업무 부담이 크다”고 했다.

전국적으로 국립대병원 응급실을 찾은 소아청소년 환자 수가 3년간 70% 가까이 늘었지만,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는 계속해서 줄어든 것으로 12일 나타났다. 국립대병원은 각 지방의 최대 규모 종합병원으로, 지역 의료의 중추 역할을 한다. 국립대병원에서조차 소아 응급 의료 인프라가 무너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실이 전국 10개 국립대병원 본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119 구급대를 이용한 소아청소년 환자 수는 2020년 1만4110명이었지만 2022년 2만3956명으로 약 70% 늘었다. 한 병원 관계자는 “최근 소아 응급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응급실이 줄어들면서 중증 소아 환자뿐 아니라 경증 소아 환자의 내원이 급증했다”고 했다. 여타 병원들이 소아 응급실 운영을 중단하거나 운영 시간을 줄인 여파로 국립대병원을 찾는 환자가 늘었다는 것이다.

그래픽=백형선

소아청소년과에 지원한 전공의 수는 매년 급감하고 있다. 2020년 29명이던 국립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수는 2021년 26명, 2022년 22명, 2023년 14명으로 4년간 절반 이하로 줄었다. 올해도 전국에 있는 국립대병원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정원 44명 중 지원자는 14명뿐이었다. 이마저도 서울대병원에 지원한 10명을 제외하면 충북대에 1명, 전북대에 1명, 전남대에 2명이 전부다. 2021년부터 3년 연속 지원자가 없어 전공의를 뽑지 못한 국립대병원도 충남대 등 3곳에 달한다.

이렇다 보니 국립대병원의 응급실 소아 진료에도 지장이 생기고 있다. 부산대병원은 의료진 부재로 화·금요일 오후 5시부터 익일 오전 8시까지 응급실에서 소아과 진료를 보지 않고 있다. 일요일에는 온종일 소아 환자를 받지 않는다. 충남대병원 역시 일요일에는 소아과 진료를 안 본다. 충남대병원 측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0명”이라며 “전문의들이 외래 진료를 보고 야간 및 공휴일에 교대로 당직을 서야 해 방법이 없다”고 했다.

일선에선 “사명감만으로는 버티기 힘들다”고 한다. 한 국립대병원 진료교수는 “병원 내에서 밤을 새우며 대기해야 하는 응급 당직 근무를 교수마다 한 달에 4~5회 서고 있다”며 “40대 교수도 버티기 힘든데, 50~60대 교수들은 더욱 힘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다른 병원 교수도 “지역 거점 대학병원은 공공의료 기관으로서 역할을 하는데,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당직 스케줄조차 간신히 꾸리고 있다”며 “교수들과 전공의 1명이라도 건강에 문제가 생기거나 사직하면 순식간에 무너지는 지경”이라고 했다.

김병욱 의원은 “국민의 건강 기본권을 지켜야 하는 국립대병원까지도 어린이 의료 현장이 붕괴 직전까지 이른 상황”이라며 “소아청소년과 의료 인력 확보를 위해서라도 의대 정원 확대와 수가 인상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