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재현 형사판] 형사법 전문가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와 함께하는 사건 되짚어 보기. 이번 주 독자들의 관심을 끈 사건에 관해 전문가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한 단계 더 들어가 분석하고, 이가영 기자가 정리합니다.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01년 12월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업무방해죄의 처벌 범위를 제한하자는 것이 핵심 내용입니다. 이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아들‧딸의 입시를 부정하게 도운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처벌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데요. 어떤 이야기인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형법에 있는 ‘업무방해죄’를 어떻게 개정하자는 건가요?
현재 업무방해죄는 허위사실유포·위계·위력으로 사람의 업무를 방해하면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허위사실유포·위계·위력으로 사람의 업무를 방해하여 생명·신체·재산·경쟁 질서에 침해가 발생한 경우만 처벌할 수 있도록 개정하자는 것입니다.
◇그럼 업무방해죄가 어떻게 달라지나요?
그동안 실제 업무방해의 결과가 발생하지 않아도 업무방해의 위험을 초래하면 처벌할 수 있었습니다. 업무의 적정성 혹은 공정성에 문제가 있으면 처벌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입시·취업에 있어 ‘허위의 증명서’를 제출하면 입시·취업의 당락과 관계없이 공정성 문제로 처벌 할 수 있었습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아내 정경심 전 교수가 유죄 선고를 받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딸 조민씨의 이른바 ‘7대 허위 스펙’이 2013년 서울대 의전원 입시에 활용됐는데, 조씨는 당시 탈락했습니다. 재판부는 “허위내용이 기재된 자기소개서와 증빙서류를 제출한 조씨의 행위는 업무방해죄의 위계에 해당하고, 허위사실이 기재된 자기소개서와 증빙서류가 제출됨으로써 서울대 의전원 평가위원들의 평가업무에 관하여 적정성 및 공정성이 방해되었음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법안이 통과되면 입시·취업에서 탈락했을 경우, 애당초 처벌이 불가능합니다. 입시·취업 과정의 공정성 문제는 하늘 위로 고이 접어 날려 보내게 됩니다. 정의의 공백이 발생할 여지가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신다면요?
개정안에 따르면 입시·취업 때 허위증명서를 제출해 처벌하기 위해선 이로 인해 학교·회사직원의 생명, 신체에 침해가 발생하거나, 재산에 손해가 발생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슨 의미인지 명확성이 떨어지는 ‘경쟁질서’에 침해가 발생해야 합니다.
허위증명서 제출로 학교·회사 직원의 생명, 신체에 침해가 발생하거나, 학교·회사 재산에 손해를 발생시킬 수는 없습니다. ‘경쟁질서’ 침해를 “정당한 지원자를 탈락시키고, 자신이 합격한 경우”로 본다면, 서류심사에서 탈락했기 때문에 ‘경쟁질서’를 침해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처벌이 불가능합니다.
입시·취업 분야는 반드시 정의가 지켜져야 합니다. 분명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해야 결과가 정의로운 것입니다. 이번 정순신 사태에서 보더라도, 국민의 입시에 대한 눈높이는 상상 그 이상입니다.
◇이번 개정안이 노동 파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하던데요?
개정안에 따르면 ‘소극적 노무 거부’ 행위 처벌이 사실상 어려워집니다. ‘소극적 노무 거부행위’를 ‘업무방해죄’로 처벌하기 위해선 절차 위반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용자측에 생명, 신체, 재산, 경쟁질서에 침해를 입혀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불법파업은 주체·목적·수단·절차·방법 위반 여부가 아니라 실제 생명·신체·재산·경쟁 질서 침해 여부로 따지게 됩니다.
사실 현재 수사실무에서 단순노무제공 거부에 대해선 기소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법원도 사측이 예측할 수 없는 경우인 ‘전격성’을 기준으로 처벌 여부를 엄격하게 따지고 있습니다. 취지가 맞다면 관련 노동법을 개정하는 것이 타당하지, 형사처벌의 근간을 이루는 형법 개정은 신중해야 합니다.
◇이번 개정안, 어떻게 보시나요?
사실 ‘업무방해죄’는 대한민국과 일본에만 있습니다. 독일, 프랑스, 미국에는 없는 규정입니다. 또 국제노동기구(ILO)에서도 개선을 권고했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업무방해죄를 개정하자는 국회의 움직임에 동의합니다.
다만 쟁의행위를 하려면 주체·목적·수단·절차·방법을 지켜야 합니다. 이러한 조건을 위반한 쟁의행위는 불법쟁의행위입니다. 불법쟁의행위가 결과적으로 생명·신체·재산·경쟁 질서에 침해를 야기하지 않았다고 해서 적법으로 변할 수는 없습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절차적 정당성을 지킨 쟁의행위라면 소극적 노무 거부 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단체행동도 국가는 절대적으로 보호하고 보장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입시·취업의 공정성은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합니다. 입시·취업에 있어 생명·신체·재산·경쟁질서에 침해가 발생한 경우만 처벌한다면 ‘가진자들의 전성시대’ 혹은 ‘밑져봤자 본전’이라는 비상식적인 세상이 도래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