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재현의 형사판] 형사법 전문가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와 함께하는 사건 되짚어 보기. 이번 주 독자들의 관심을 끈 사건에 관해 전문가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한 단계 더 들어가 분석하고, 이가영 기자가 정리합니다.
김성태 전 쌍방울 그룹 회장을 수사 중인 검찰은 구속영장에 김 전 회장의 대북 송금 혐의를 적시했습니다. 이를 두고 여당에서는 “이재명의 경기도와 김성태 쌍방울이 천안함 폭침 테러 주범 김영철에게 뇌물을 갖다 바친 사건”이라며 “현행법상 여적죄에 해당한다”고 했는데요. 여적죄(與敵罪)란 무엇이고, 대북 송금이 어떤 점에서 문제가 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김성태 전 회장의 대북 송금 의혹, 여러 혐의 중 가장 심각한 범죄로 보신다고요?
그렇습니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이 2019년 1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중국의 한 식당에서 북측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위) 송명철 부실장에게 500만 달러(약 60억원)를 현금으로 전달한 혐의로 영장을 청구했습니다. 또 쌍방울 직원을 동원해 쪼개기 송금을 했다는 혐의도 받는데요.
김 전 회장이 북측에 돈을 보냈다는 2018~2019년 북한은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결의한 대북제재를 받고 있던 시점입니다. 즉, 대북 제재 결의 위반에 따른 법적 조치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2018년 조선아태위원장은 천안함 폭침 사건 주범으로 알려진 김영철이었습니다. 돈이 흘러간 곳이 북한 조선노동당 통일선전부 대남정책집행기구인 조선아태위라는 점, 그 돈의 수령인 중 한 사람이 김영철이라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 문제는 결코 좌시할 수 없는 혐의라고 생각합니다. 천안함 순직 병사들의 넋을 기리고 유족의 마음을 생각한다면 반드시 대북 송금에 대한 전모를 밝혀야 할 것입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현행법상 여적죄에 해당한다”고 하던데요, 여적죄는 무엇인가요?
여적죄는 형법 제93조에 나오는데요, ‘적국과 합세하여 대한민국에 항적한 자’를 ‘사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다른 형벌의 종류 없이 오로지 ‘사형’만 규정된 범죄입니다.
대한민국은 북한과 여전히 전쟁 중입니다. 현재 휴전 상태이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적국’에는 당연히 북한이 포함되고, 북한의 단체도 포함됩니다. 여기서 ‘항적’이란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적대행위를 말합니다. 본 죄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북한과 관계를 맺은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북한과 관계를 맺고 대한민국에 적대행위를 해야 합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건국 이래 아직 여적죄로 처벌받은 사례는 없습니다. 이 때문에 김 전 회장 역시 북한과 손을 잡고 대한민국에 적대행위를 했다고 보기는 어려워 바로 여적죄를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다만 내란선동죄로 처벌받은 사례는 있습니다. 바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사건입니다.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은 혁명조직(RO)의 총책으로 북한의 대남 혁명론에 동조하면서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 행위를 모의한 혐의 등으로 2013년 구속기소 됐습니다. 2심에서 내란음모 혐의는 무죄가 됐고, 내란 선동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유죄판결을 받아 2015년 대법원에서 확정됐습니다.
◇민주당에서는 “구속영장에 변호사비 대납 의혹이 빠진 건 ‘조작 수사’를 자인한 것”이라고 하던데요. 이건 어떤 이야기인가요?
쌍방울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18년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을 때 20여억 원의 변호사 비용을 대신 내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해당 혐의는 이번 구속영장에는 포함되지 않았는데요. 구속영장에는 죄명과 범죄사실 요지를 적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구속영장에 관련된 범죄와 전혀 다른 범죄를 구속 후 수사하는 건 ‘별건 구속’으로 허용되지 않습니다.
김 전 회장은 자본시장법 위반, 횡령, 배임, 뇌물공여, 외국환관리법 위반, 증거인멸 교사 등 죄명으로 구속됐습니다. 이 대표 변호사비 대납 의혹이 만약 사실이라면 죄명은 ‘배임’과 ‘뇌물공여’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속영장 청구서에 포함하지 않았다 해도 검찰이 해당 의혹에 관해 수사한다고 해서 민주당 주장처럼 별건구속으로 위법하다고 볼 여지는 크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