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하남시에서 18개월 딸을 키우는 이모(36)씨는 최근 한동안 살지 말지 망설이던 18권짜리 유아용 한글 동화책 전집을 구매했다. 원래 한 세트에 9만9000원이었는데 조만간 10만9000원으로 오른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출판사가 개정판이라고 가격을 올렸다는데, 내용이 뭐가 달라지겠냐 싶어 어차피 살 거면 1만원이라도 아끼자 싶어 급하게 샀다”고 말했다.
고물가로 종이값이 크게 오르는 바람에 아이들에게 책을 사주려는 부모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종이의 원료가 되는 펄프의 국제 가격은 지난 1월 1t당 675달러에서 지난달 970달러로 5개월 만에 약 44% 올랐다. 역대 최고치라고 한다. 그 여파로 서점에서 가격이 인상된 책이 많아졌다.
한자 학습용으로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한 만화 시리즈는 7월에 7개월 만에 새로 나온 후속권 가격을 1만4000원으로 2000원 올렸다. 유아동 도서를 전문으로 제작하는 다른 출판사 관계자도 새로 나온 책 가격을 종전보다 5~10% 올렸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콘텐츠 개발 비용 등 제작 단가를 줄이고 줄이다 더 이상은 힘들어 부득이하게 인상한 것”이라고 했다.
학부모들은 책값이 치솟으면서 요즘 서점에서 두께가 수십쪽짜리에 불과한 어린이·유아책이 대부분 1만원이 넘고, 2만원에 육박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실제 한 온라인 인터넷 서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유아 책을 살펴봤더니 40쪽짜리인데 정가가 1만6000원인 사례도 있었다. 출판사는 어린이·유아 책의 경우 그림이 많이 들어가고 좋은 재질의 종이를 쓰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교육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책을 산다”면서 불만이 크다. 경기 광명시에서 초등학생 자녀 둘을 키우는 최모(45)씨는 “학원 대신 독서 교육에 집중하려고 하는데 도서관에서 빌려 보는 것도 한계가 있어 책값을 쓸 수밖에 없다”며 “딸들이 읽고 싶다는 대로 다 사주려면 월 30만원 이상은 든다”고 했다.
이렇다 보니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동화책이 인기다. 대전에서 35개월 딸을 키우는 김모(31)씨는 “아이에게 글자를 보여주며 책을 읽히기 시작한 지 5개월 됐는데, 전집 가격이 너무 비싸 중고 사이트에서만 11세트를 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