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E-9)를 통해 한국에서 일하게 된 외국인 노동자들이 충북 청주시 가화한정식 주방에서 식재료 준비, 설거지 등 주방 보조 일을 하고 있다. /신현종 기자

올해 외국인 고용허가제(E-9)를 통해 취업한 외국인이 7만명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허가제는 제조업·건설업·서비스업 등 정부가 정한 업종에 한해 허가를 거쳐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게 한 제도다. 정부는 수요 조사 후 올해 16만5000명의 쿼터를 마련했으나, 반도 채워지지 않은 것이다.

정부는 20일 외국인인력정책위원회를 열고 올해 1~11월 7만460명의 외국인이 고용허가제를 통해 취업했다고 밝혔다. 예상만큼 쿼터를 채우지 못하면서 내년도엔 쿼터를 13만명으로 줄인다고도 했다.

정부 예측과 달리 외국인 취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건, 경기 악화 등 대외 요인도 있지만 틈새 규제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실제 상당수 업종에선 여전히 일손이 부족하지만 외국인을 고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제기된다.

대표적인 게 외식 업종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한식, 양식, 중식, 일식 등 음식점에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게 규정을 완화했다. 그러나 외국인에게 시킬 수 있는 업무를 ‘주방 보조원’으로 못 박았다. 주방에서 요리나 설거지를 도울 순 있지만, 손님에게 주문을 받거나 계산을 하는 등 홀 업무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정작 일손이 가장 필요한 홀 서빙은 못 하게 막아놔 사실상 정책이 무용지물 됐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호텔 업종에선 인력 공급을 담당한 외국 인력 파견 업체와 호텔이 1대1 전속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강제 규정이 발목을 잡고 있다. 업체 입장에선 여러 호텔과 계약을 맺어야 수익을 낼 수 있다 보니, 고용허가제를 통한 인력 파견을 꺼린다는 것이다.

단순 노무 수요가 많은 건설업의 경우에도 플랜트 건설 분야는 외국인을 고용할 수 없다. 석유·화학 시설이 국가 보안 시설이라 기술 유출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인데, 업계 관계자들은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이다. 한 플랜트 업체 관계자는 “해외 공사 시엔 외국 인력을 활용하고 있는데, 국내에서만 안 된다니 앞뒤가 안 맞는다”고 했다.

정부가 이 같은 제한을 두는 건 ‘내국인 일자리와 충돌’을 주장하는 노조의 눈치를 보는 것이란 비판도 제기된다. 올해 정부가 플랜트 건설업에 외국인 고용 허가 방침을 추진하자 전국플랜트건설노조는 “논의를 중단하지 않으면 쟁의권을 확보해 파업해 투쟁하겠다”고 맞섰다. 이 여파 등으로 현재는 정책 추진이 중단된 상태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정상적 취업이 이뤄지지 않으면 불법 체류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업주 입장에서 고용허가제를 통한 고용이 가장 저렴하지만 각종 규제로 제대로 활용할 수 없기 때문에 불법 체류자 등으로 눈을 돌린다는 것이다. 국내 불법 체류 외국인은 2019년 39만281명에서 지난해 42만3675명으로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