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는 정유정(23)이 2일 오전 부산 동래경찰서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김동환 기자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일면식 없는 또래 여성을 무참히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정유정(23)이 2일 검찰로 구속 송치되면서 취재진 앞에 이 같이 밝혔다. 범행 수개월 전부터 ‘살인’을 검색하고, 피해자를 만나기 전 중학생인 것처럼 교복을 입고 가는 등 계획적 범행의 정황이 드러난 상황에서도 마치 우발적 범행인 것처럼 말한 것이다.

금정경찰서는 2일 오전 9시 5분쯤 살인 및 사체손괴 등 혐의로 구속한 정유정을 검찰로 송치했다. 동래경찰서 현관을 나온 정씨는 검정 벙거지 모자와 흰 마스크를 썼다. 정씨는 ‘유족에게 할 말이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고개를 숙인 채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정말 죄송하다”고 말했다. 실종 사건으로 위장하려 했다는 것과 관련한 질문에는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고 답했다.

피해자를 특정한 이유, 살인 충동을 가지게 된 시점 등 범행 관련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신상이 공개된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곧장 정씨를 호송차량에 태웠다.

취업 준비생이던 정씨는 지난달 26일 오후 5시 40분쯤 부산 금정구에 있는 피해자 B(20대)씨 집에서 미리 준비한 흉기로 피해자를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뒤 유기한 혐의로 구속됐다. 경찰은 지난 1일 신상정보 공개심의위원회를 통해 “범죄의 중대성과 잔인성이 인정되고, 유사범행에 대한 예방효과 등 공공이익을 위한 필요가 크다고 판단된다”며 정씨의 신상을 공개했다. 부산에서 신상이 공개된 것은 2015년 10월5일 부산진구 실탄사격장 총기탈취 피의자 이후 약 8년 만이다.

정씨의 범행은 치밀한 계획 하에 이뤄졌다. 경찰이 휴대전화 등을 디지털 포렌식한 결과 정씨는 범행 3개월여 전부터 휴대폰으로 ‘시신 없는 살인’ ‘살인 사건’ ‘범죄 수사 전문 방송 프로그램’ 등의 키워드를 검색해 관련 내용을 찾아봤다. 도서관에서는 범죄 관련 소설 등을 빌려 봤다.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는 정유정(23)이 2일 오전 부산 동래경찰서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김동환 기자

이후 범행 대상을 물색한 정씨는 과외 교사를 찾는 아르바이트 앱에서 학부모 회원으로 가입하고, 범행 이틀 전인 지난달 24일 영어를 가르치는 피해자에게 “중학교 3학년 자녀를 둔 엄마인데 영어 과외를 받게 해주고 싶다”는 문자를 보내며 접근했다. 거리가 멀어 주저하는 피해자에게 “아이를 선생님 댁으로 보내겠으니 상담해달라”고 만남을 약속했다.

정씨는 범행 당일인 지난달 26일 오후 4시쯤 인터넷에서 구입한 교복을 입고 중3 학생인 것처럼 속여 B씨 집을 찾았다. 교복을 입은 채 미리 준비한 흉기를 숨기고 들어간 정씨는 피해자가 혼자 있는 것을 확인한 뒤 무방비 상태로 있는 피해자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정씨는 범행 후 인근 마트에 가서 시신을 담을 큰 비닐 봉투와 표백제 등을 사와 피해자의 시신을 훼손, 그중 일부를 여행용 캐리어에 담아 경남 양산 낙동강변 풀숲에 유기했다. 경찰은 “피해자가 실종된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피해자의 휴대폰과 신분증, 지갑 등을 따로 챙기는 등 완전 범죄를 흉내 냈다”고 말했다.

정씨는 시신을 유기하는 과정에서 탑승했던 택시 기사의 신고로 범행 이틀 뒤인 28일 경찰에 검거됐다. 정씨는 평소 사회적 교우 관계가 전혀 없었고, 폐쇄적인 성격에 5년 전 고교 졸업 후 특별한 직업도 없었던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확인됐다. 이 사건 전 비슷한 범행을 저지르거나, 정신질환 치료를 받은 적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1일 신상이 공개된 또래 살인범 '정유정'.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