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조선일보] [속담과 함께하는 생물 세상] 겅중겅중 뛰다가도 멈춰서 힐끔, 가녀린 노루
[어린이조선일보] [속담과 함께하는 생물 세상] 겅중겅중 뛰다가도 멈춰서 힐끔, 가녀린 노루

농부들을 애태우는 가녀린 길짐승인 노루는 소목, 사슴과(科) 동물이다. 한국·중국·몽골·러시아·카자흐스탄 등지에 널리 분포하며, 우리나라에는 전국 산림지대에 서식한다. 목이 길고, 귀가 아주 크다. 어깨 높이 65~75㎝, 체중 15~30㎏이다. 가을엔 두꺼운 겨울털로 바꾸는 털갈이를 하는데 그때 엉덩이에 희끄무레하게 심장 무늬가 나타나면 암컷이고, 콩팥 무늬가 보이면 수컷이다. 노루 꼬리는 고작 2~3㎝에 지나지 않아 "동지섣달 해는 노루 꼬리만 하다"라는 말도 있다. 20~25㎝나 되는 곧추선 뿔은 수컷에게만 있다. 오래된 뿔은 가을이나 초겨울에 빠지고 바로 새로 난다. 산에서 주운 낙각(떨어진 노루 뿔)에 곳간 열쇠를 달아 놓기도 했고, 빈혈기가 있으면 뿔을 우려먹기도 했다. 노루는 일부일처제 동물로 어쩌다가 짝을 잃는 날이면 그 근처를 떠나지 않고 며칠을 울며 돌아다닌다고 한다.

노루 수놈의 텃세 부리기는 알아준다. 오줌똥을 깔겨 구리고 지린내를 풍기거나, 풀을 물어뜯고 사방에 흩어놓아 영역 표시를 한다. 몹시 위급한 상황에는 산이 떠날 듯이 개 짖는 소리를 낸다. 노루는 8~9월에 짝짓기하고 다음 해 1월에 수정란이 착상하니, 발굽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지연착상을 한다. 다시 말해 수정란이 바로 자궁에 착상하지 않고 영양 상태나 기후 조건이 최적일 때 착상한다. 노루 수명은 자그마치 10~12년이다. 호랑이·표범·곰·늑대·독수리가 천적이지만 이런 포식자가 생태계에 잘 없다. 그래서 고라니나 노루도 멧돼지처럼 마릿수가 늘어 곡식을 축내는 탓에 농부들을 애태운다. 또한 한 번에 6~7m를 껑충 뛸 정도로 빠르게 질주한다. 허겁지겁 달려가다가도 엉거주춤 한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귀를 쫑긋 세우고, 목을 길게 치켜 빼고는 사방을 멀뚱멀뚱, 힐끔거리는 버릇이 있다.

한편 '노루발'이란 과녁에 박힌 화살을 뽑는 도구 또는 재봉틀의 바늘이 오르내릴 때 바느질감을 눌러주는 부속품을 이른다. 어설프고 격에 맞지 않는 꿈 이야기는 '노루잠에 개꿈'이라 하고, 노루가 걷는 것처럼 겅중겅중 걷는 걸음을 '노루걸음'이라 말한다.

이런 말 들어봤니?

꿩 잡으러 갔다가 노루 잡는 격
어떤 것을 얻으려다 뜻밖에 좋은 것을 얻게 되다.

노루가 제 방귀에 놀라듯
남몰래 저지른 일이 걱정돼 스스로 겁을 먹고 대수롭지 않은 것에도 놀람을 비꼬아 이르는 말.

● 자연과 인문을 버무린 과학비빔밥 2: 동물 편
지성사|권오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