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초, 영국의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데이비드 아텐버러는 세계 최초로 야생 여우원숭이를 촬영하기 위해 아프리카 국가인 마다가스카르로 향했다. 하지만 아텐버러는 그곳에서 여우원숭이보다 더 신비한 동물의 흔적과 맞닥뜨렸다. 섬 남쪽에 있는 한 사막에서 거대한 알껍데기를 찾은 것이다. 아텐버러는 조각난 이 껍데기들을 테이프로 하나씩 맞췄다. 그 결과 달걀 오믈렛 50인분을 만들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알 하나가 조립됐다. 커다란 알의 주인은 과연 누구였을까?
코끼리를 잡아먹는 거대한 새?
아텐버러가 사막에서 발견한 알은 코끼리새가 낳은 것이었다. 그런데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어미 코끼리새는 보이지 않았다. 어미 새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거대한 코끼리새 이야기는 사실 아텐버러가 마다가스카르에 오기 수백 년 전부터 나왔다. 이 새에 대해서 처음 말한 사람은 13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상인이자 동방 여행가였던 마르코 폴로였다. 그는 소말리아의 해안선을 돌아다닐 때 지역 주민들에게 아프리카 동남쪽에 있는 마다가스카르에 거대한 새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폴로는 여행 중에 들은 것들을 글로 남겼다. 그가 쓴 글에 의하면 이 조그마한 섬에 사는 거대한 새는 날개 폭이 사람의 30걸음 정도 크기라고 한다. 큰 먹잇감을 사냥했으며, 크고 강한 발톱으로 코끼리를 붙잡아 올린 후 높은 하늘에서 떨어트리는 방식을 이용했다고 폴로는 적었다.
물론 폴로는 이 거대한 새를 직접 본 적이 없다. 여행 중 들은 소문을 그대로 썼을 뿐. 하지만 당시의 많은 유럽인은 폴로의 이야기를 그대로 믿었다. 그래서 코끼리를 단숨에 낚아채는 이 무시무시한 새를 '코끼리새'라고 불렀다. 정말로 코끼리새는 하늘을 날아다니며 코끼리를 낚아채는 사나운 포식자였을까?
섬 남쪽에 목이 기린처럼 긴 새가 살았다
코끼리새에 대한 기록은 17세기에 쓰인 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 마다가스카르의 프랑스 총독이었던 에티엔 드 플라쿠르는 섬에 살면서 본 수많은 동물을 '마다가스카르의 동물상'이란 책으로 펴냈다. 플라쿠르의 책에는 '섬 남쪽에 큰 타조 같은 새가 살았다'라는 문구가 있는데, 여기서 언급된 타조 같은 새가 바로 코끼리새였다!
사실 코끼리새는 폴로가 이야기한 것과는 매우 다르게 생긴 새였다. 엄청난 크기의 날개가 없었으며, 코끼리를 들어 올릴 수 있는 강한 발톱도 없었다. 그 대신 타조와 같이 뒷다리가 튼튼해서 잘 뛰어다닐 수 있었으며, 키가 크고 목이 기린처럼 길어서 나무 위 잎사귀를 뜯을 수 있었다.
코끼리새를 되살릴 수 있을까?
코끼리새가 자취를 감춘 시기에 관한 연구는 1975년에 처음 이루어졌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의 인류학자 라이너 베르게르와 그의 연구팀은 마다가스카르에서 채집한 코끼리새 알껍데기를 이용해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을 실시했다. 물체에 남아 있는 탄소를 측정해 그것이 얼마나 오래됐는지를 알아내는 방법이다. 측정 결과, 가장 젊은 코끼리새의 알껍데기 나이가 약 1100년 전인 10세기쯤으로 나왔다. 코끼리새가 적어도 10세기까지는 살았다는 것이다.
코끼리새는 왜 멸종해 버렸을까? 여기에는 크게 몇 가지 가설이 있다. 변화한 기후 때문에 코끼리새가 좋아하던 촉촉한 열대우림이 건조한 사막으로 변해 버렸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 과학자가 있다. 거대한 알 때문에 멸종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과학자도 있다. 코끼리새의 알은 영양분이 풍부한 데다가 크기도 크다. 그래서 옛날 마다가스카르 주민에게는 좋은 먹을거리가 됐을지도 모른다. 다른 새들과 달리 알을 한두 개씩밖에 낳지 못했던 코끼리새는 금방 그 숫자가 줄었을 것이고, 결국 자취를 감추고 말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멸종한 코끼리새를 다시 보게 될지도 모른다. 2014년 뉴질랜드 오타고대학교의 생물학자 키에렌 미첼과 연구팀이 코끼리새의 알껍데기에서 유전 물질인 DNA를 채취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영화 '쥬라기 공원'처럼 코끼리새를 되살릴 날이 올지도 모른다.
현암주니어 ‘우주와 지구, 생명의 역사-서대문자연사박물관’ (글 박진영, 사진 조재무, 기획 서대문자연사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