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탑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됐을 때, 불경의 발견 외에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불경이 찍힌 종이였어요. 무려 1000년이 지났는데도 고스란히 보관된 상태였거든요. 오늘날의 종이책도 50∼100년만 지나면 색깔이 변하는데, 1000년 전에 만들어진 한지가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다는 것은 정말 놀랄 만한 일이었지요. 민족의 역사와 함께해 온 소중한 우리의 종이, 한지. 여기에는 어떤 과학적 비밀들이 숨어 있을까요?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종이를 만들었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아요. 단지 105년에 중국의 채륜이 종이를 만드는 방법을 발명했고, 이후 고구려 때 우리나라에 전파됐다고 전해져요.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중국으로부터 전해진 기술을 조상이 더욱 발전시켜 우리 고유의 종이인 한지를 만들어 냈다는 거예요. 특히 신라의 '백추지'는 색이 희고 결이 고르며 질긴 종이였다고 해요. 이후 고려 시대에 불경을 만드는 일이 활발해지면서 종이를 만드는 기술이 크게 발전했어요. 고려 후기에 종이를 만드는 기술과 함께 인쇄 기술까지 발달하자 고려 종이의 명성은 조선 시대로 이어져 중국과 외교할 때 필수품이 됐고, 중국 역대 왕들의 업적을 기록할 때도 주로 우리의 한지를 사용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어요.
한지의 주원료인 닥나무 인피섬유(껍질섬유)는 서양 종이의 원료인 목재펄프의 섬유보다 결합력이 강하고 조직의 강도가 세요. 이는 한지가 훌륭한 종이로 태어날 수 있는 바탕이 됐어요.
다음으로는 한지가 어떻게 오랜 세월 유지될 수 있었는지 알아볼게요.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신문지나 교과서의 종이는 섬유질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강한 산을 이용하기 때문에 산성 종이가 되는데, 이처럼 서양식 방법으로 완성된 산성 종이는 50∼100년이 지나면 색깔이 누렇게 변하며 삭아 버려요. 이에 비해 한지는 산화 반응(공기 중의 산소와 결합해 화학변화가 일어나는 반응)을 쉽게 하지 않는 중성 종이여서 오랜 세월이 지나도 색깔이 변하지 않고 잘 보존됩니다.
한지를 만들 때 마무리 단계도 눈여겨볼 만해요. 제작자들은 종이를 여러 장씩 겹쳐 놓고 디딜방아 모양의 '도침기'로 골고루 내리치는 작업을 했어요. 이 기술을 '도침'이라고 하는데, 종이 표면이 치밀하고 매끈하며 광택이 나도록 도와줘요.
옛 한옥을 살펴보면 방문의 창호지나 방바닥의 장판, 벽지 등 한지가 사용되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정도예요. 이 중 한지 장판은 잘 찢어지지 않고 비닐 장판에 비해 환경 친화적이지요. 더군다나 열을 잘 전달하면서도 열에 강해 온돌 생활을 하는 우리 민족에게는 안성맞춤인 장판이었죠.
생각 발전소
[활동①] 한지는 한옥 외에 어디에 사용됐을까요?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세요.
[활동②] 오늘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한지'를 알리는 공익 광고 포스터를 제작해보세요. 한지의 제작 과정, 그 안에 숨은 과학적 비밀, 역사적 가치 등을 고루 담으면 좋겠죠?
글로연 '초등학생이 꼭 알아야 할 우리 민족과학' (이찬희 글, 허다경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