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경주시 배동에는 사적 제1호인 통일신라 시대의 포석정 터가 있어요. 이 포석정 터에는 물이 흐르는 도랑인 '곡수거'가 있는데요. 포석정 곡수거의 물길 속에도 신비로운 과학 현상들이 담겨 있어요.
포석정이 만들어진 연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어요. 그러나 '삼국유사'에 '헌강왕(재위 기간 875~886년)이 포석정에 들러 여럿이 술잔을 나누며 흥겹게 춤추고 즐겼다'는 내용이 기록돼 그 이전에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지금은 포석정 건물은 없어지고 왕과 신하들이 멋스럽게 흥겨움을 즐겼던 물길인 곡수거만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어요.
곡수거에서는 흐르는 물 위에 띄운 술잔이 자신에게 오기 전까지 시를 지어 읊도록 하는 '유상곡수'라는 놀이를 했다고 전해져요. 만약 술잔이 자기 자리 앞에 올 때까지 시를 짓지 못하면 그 벌로 석 잔의 술을 마셔야 했어요.
포석정 곡수거는 63개의 다양한 크기의 돌로 만들어졌는데, 물길 전체의 가로 폭이 9.4m, 세로 폭이 4m 정도예요. 물이 흐르는 도랑의 폭은 평균 30㎝, 깊이는 약 22㎝이며, 전체 물길의 길이는 22m 정도죠. 원래 곡수거의 물길 입구에는 돌로 거북을 만들어 놓고 돌거북의 입에서 물이 흘러나오도록 했는데, 지금은 거북의 모습을 볼 수 없어요.
곡수거는 물길 입구 부분이 출구보다 조금 높게 경사져 있어서 그 높이 차이에 의해 물이 자연스럽게 출구 쪽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설계됐어요. 또한 곡수거의 물길은 그냥 둥근 원형이 아니고 꾸불꾸불한데, 이를 보면서 '흘러가던 술잔이 벽에 부딪히거나 뒤집혀서 술이 쏟아지지 않았을까?'라고 의문을 가질지도 몰라요. 하지만 곡수거 물길에는 술잔이 벽에 부딪히거나 뒤집히지 않도록 하는 놀라운 과학 기술이 숨어 있답니다. 특히 뛰어난 점은 물길을 따라 흘러가던 술잔이 어느 자리에서 맴돌게 되는 '회돌이 현상'을 응용했다는 거예요.
회돌이 현상은 물길의 폭과 깊이가 거의 일정하면 잘 발생하지 않아요. 물길이 굽어 있거나 폭과 깊이가 다양하게 변하고, 물길 벽의 일부에 움푹 들어간 홈이 있어서 물의 흐름에 변화가 생겨야 가능한 현상이지요. 곡수거에서 회돌이 현상이 생긴다는 것은 당시에 이미 유체역학(공기나 물이 흐르는 이치에 대한 학문)에 대한 뛰어난 지식이 있었다는 증거예요.
그러면 우리 조상은 이러한 회돌이 현상을 어떤 식으로 곡수거에 적용시켰고, 어떻게 안정적으로 술잔이 흘러가도록 했을까요? 먼저 곡수거 물길의 기울기를 적절히 조절해야 해요.
물길의 기울기가 너무 커서 물의 흐름이 빠르면 술잔의 속력도 증가하므로 술잔이 어느 한 곳에 멈추기 어려워요. 그래서 곡수거는 물길의 기울기를 완만하게 해 물의 흐름을 안정되게 만들었는데, 지금의 곡수거는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기울어진 정도가 조금 변한 것으로 추측돼요.
그리고 곡수거를 계곡의 물길처럼 꾸불꾸불하게 하여 물의 흐름에 변화를 줬어요. 또한 기울기가 급격히 변하는 지점이나 굽어진 지점에서는 물길의 폭을 넓히거나 좁혀 물 흐름의 빠르기를 조절했지요. 이와 같은 세심한 기술로 술잔이 천천히 떠내려가게 함으로써 벽에 부딪히거나 뒤집히지 않도록 했어요.
글로연 '초등학생이 꼭 알아야 할 우리 민족과학' (이찬희 글, 허다경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