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는데 술독에 빠졌다 나온 것처럼 온몸에서 술 냄새를 풀풀 풍기는 사람이 있었어.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오래전에 어떤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해 배에 큰 상처를 입었는데 재빨리 응급조치를 취한 덕분에 다행히 목숨을 건졌대. 그 사람은 위와 소장을 꿰매는 큰 수술을 받았어. 그로부터 몇달 뒤 상처가 모두 아물어 퇴원했는데 몸이 예전 같지 않았어.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는데 항상 입에서 술 냄새가 나는 거야. 게다가 머리가 무겁고 어지럽기까지 했어.

[어린이조선일보] [아하! 과학세상] 술도 마시지 않고 취한 사람?

이런 술주정뱅이에게 일자리를 줄 회사가 어디 있겠어? 결국 그 사람은 백수로 세월을 보내야 했어.

얼마 후 군대 입영 통지서가 나왔어. 군에 입대하고 나서 비록 예전보다 상태가 나아졌지만, 여전히 술 냄새가 가시지 않았어. 상관들은 언제나 술 냄새를 풍기는 이 술주정뱅이를 나무랐어. 그리고 술을 끊으라고 타이르고 혼자 힘으로 어려우면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라고 충고했어.

결국 그 사람은 술 냄새가 나는 원인을 알기 위해 병원을 찾았어. 하지만 검사 결과 몸에 아무 이상이 없다고 나왔어. 물론 병원을 다녀오고 계속 몸에서 술 냄새가 났지. 그 사람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렸다며 슬퍼하다 어느 날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어. 밥이나 빵 같은 주식을 먹지 않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술 냄새가 싹 가시는 거였어.

하지만 군대를 제대한 뒤 가난한 탓에 값이 싼 밥을 먹자 다시 술 냄새가 나기 시작해 순식간에 예전처럼 술주정뱅이로 돌아가 버렸어. 그 바람에 어렵게 구한 일자리마저 잃고 말았지.

모든 희망을 잃고 삶을 포기하려던 순간, 한 의사가 그의 위액을 검사해 병의 원인을 찾아냈어. 도대체 어떤 병에 걸렸기에 술을 먹지 않아도 술 냄새가 났던 걸까?

>> 아하, 그렇구나!

술의 원료는 ‘술밑’이야. 술밑은 쌀을 물에 불려 시루에 찐 지에밥에 누룩을 섞어 버무린 거야. 술밑을 항아리에 넣고 물을 부은 다음 발효시키면 술이 돼. 만약 술밑을 밥에 넣고 섞어 놓으면 며칠 뒤 밥에서 술 맛이 나. 이건 술밑에 들어 있는 균이 밥 속의 전분을 먹어 버리고, 그것으로 술을 만들기 때문이야.

의사는 이 술주정뱅이의 위액을 검사하다가 술밑에 존재하는 균과 매우 비슷한 균류를 발견했어. 이런 미생물이 위 속에 많이 번식하면서 그의 위로 들어온 전분을 발효시켜 술을 만들었어. 이로 인해 늘 술주정뱅이라는 누명을 쓰고 살았지. 알고 보니 교통사고 후 위 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실수로 이러한 균류가 그의 위로 들어간 거였대. 의사는 새로운 종류의 항생제를 투여해 위 속에 존재하는 해당 균류를 몽땅 없앴어. 그 뒤로 술 냄새를 훌훌 털어버리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됐어.

☞ 균류
균류는 동물에도 식물에도 속하지 않는 생물이야. 광합성을 하지 않고 죽은 생물을 분해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영양분을 얻어. 어둡고 습기 찬 곳에서 잘 생기는 곰팡이와 우리가 즐겨 먹는 버섯 역시 균류에 속해. 발효해서 먹는 음식인 김치와 된장, 치즈도 마찬가지야.

소년조선일보·찰리북 공동기획 | 별별 이야기 속에 숨은 과학을 찾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