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무엇으로 되어 있을까? 아득한 옛날부터 사람들이 가장 궁금하게 여기던 것이었다. 동양에서는 세상이 '음기'와 '양기', 그리고 불(火)·물(水)·나무(木)·쇠(金)·흙(土)의 '오행'으로 구성돼 있다고 믿었다. 서양에서는 세상이 물·불·흙·공기의 네 가지 '원소'와 우주의 정기를 뜻하는 '제5원'으로 이뤄져 있다고 믿었다.

현대 화학에서 세상은 '분자'라는 단위로 구성되어 있다. 분자는 0.1~0.4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의 작은 공 모양을 가진 '원자'들로 만들어진다. 지금까지 존재가 확인된 원자의 종류는 114종에 이른다. 그중에 자연에 존재하는 원자의 종류는 가장 가벼운 수소에서 가장 무거운 우라늄에 이르기까지 92종으로 알려졌다. 결국 세상의 모든 물질은 92종 원소가 단단하게 결합해 만들어진다.

분자 세계의 다양성은 상상을 넘어선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서도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장미꽃의 화려한 붉은색과 다이아몬드의 영롱한 투명함은 분자들이 만들어내는 신비다. 연필심으로 사용하는 흑연처럼 전기를 잘 통하게 하여주는 분자도 있고, 나무줄기나 종이의 셀룰로오스처럼 전기가 전혀 통하지 않는 분자도 있다. 전기가 통하는 도체와 전기가 통하지 않는 절연체의 중간에 해당하는 반도체의 특성을 가진 실리콘 결정도 만들 수 있다. 산소나 질소 기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도 있다. 소금 결정처럼 나트륨 양이온과 염소 음이온이 3차원 결정 속에서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만들어지는 물질도 있다.

그러나 분자 세계의 진짜 아름다움은 원자들이 결합해 만들어지는 분자의 '모양'에서 찾아야만 한다. 분자는 기하학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모양이 가능하다. 오존이나 이산화탄소처럼 직선형의 분자도 있고, 암모니아처럼 펼친 우산 모양의 분자도 있다. 서양의 사원소설과 제5원을 상징하는 '플라톤의 다면체'로 알려진 정사면체, 정육면체, 정팔면체, 정십이면체, 정이십면체의 구조를 가진 분자도 있다. 심지어 탄소 60개로 육각형 12개와 오각형 20개로 이루어진 축구공 모양을 가진 '풀러렌'이라는 분자도 있다. 탄소 원자가 벌집처럼 정육각형 모양으로 연결된 '그래핀'이라는 분자도 있다.

분자들의 성질과 기능에서도 놀라운 다양성을 찾을 수 있다. 산소 분자처럼 다른 분자들과 쉽게 반응하는 특성을 가진 경우도 있고, 질소 분자처럼 화학적으로 안정돼 다른 분자와 잘 반응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특히 산소 분자는 햇빛에서 오는 자외선을 흡수, 쉽게 깨어져 다른 산소 분자와 결합함으로써 오존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 과정에서 햇빛의 강한 자외선으로부터 지구 상의 생명체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물 분자처럼 물리·화학적으로 독특한 특성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 액체 상태의 물 분자들은 전기적 특성 때문에 다양한 물질을 녹일 수 있는 특성을 갖게 된다. 액체의 물은 서로 비교적 단단하게 결합해 있어서 밀도가 매우 크고, 많은 양의 열을 저장하기도 한다. 특히 액체의 물이 얼어서 고체의 얼음이 되면 부피가 늘어나는 정말 특별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추운 겨울에 수도 파이프나 장독이 얼면 부피가 늘어나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모두가 산소를 중심으로 2개의 수소가 104.5도의 각도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특성이다. 물은 그런 특성 때문에 박테리아에서 인간에 이르는 모든 생물이 살아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생명수의 역할도 한다.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과 생명의 신비가 모두 분자 세계의 다양성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그런 다양성을 공부하는 분야가 바로 화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