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이나 설탕을 물에 녹이려면 숟가락으로 저어주거나 뜨겁게 가열을 해야만 한다. 진한 소금물이나 설탕물을 끓여서 졸이거나 냉장고에 넣어서 차갑게 식히면 소금이나 설탕이 침전으로 가라앉게 된다. 반대로 소금이나 설탕을 참기름에 넣으면 좀처럼 녹지 않는다. 그런데 커피 믹스는 물에 넣기만 하면 곧바로 녹아버린다. 이처럼 소금이나 설탕과 같은 고체를 물이나 참기름 같은 액체에 녹이는 과정에서도 복잡한 과학적 변화가 일어난다.
고체가 액체에 녹으면 더 이상 액체와 고체를 구별할 수 없는 '용액'이 만들어진다. 용액은 두 가지 이상 물질이 분자 수준에서 고르게 섞여 있는 혼합물이다. 물질을 구성하는 분자는 우리 눈으로 직접 볼 수 없을 정도로 작기 때문에 우리에게 용액은 어느 곳이나 똑같은 균일한 상태로 느껴진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일부러 용액을 만들어서 이용한다. 주방에서 뜨겁게 끓인 국과 찌개도 용액이고, 한약재를 물에 넣고 끓이는 것도 한약재에 들어 있는 약효 성분이 물에 녹아나오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다.
모든 고체가 모든 액체에 녹아들어 가는 것은 아니다. 액체에 잘 녹는 고체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액체와 화학적으로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고체가 액체에 잘 녹는다. 고체와 액체의 분자들이 분자 수준에서 서로 고르게 섞이기 위해서는 화학적 성질이 비슷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금과 같은 '염'이나 설탕과 같은 극성 분자들은 물과 같은 극성 액체에는 잘 녹지만, 참기름과 같은 비극성 용매에는 잘 녹지 않는다.
그런데 고체가 액체에 '잘 녹는다'라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일정한 양의 액체에 많은 양의 고체가 녹는 경우에도 '잘 녹는다'는 말을 쓴다. 고체의 '용해도'가 클수록 잘 녹는 셈이다. 용액 속에 용해도보다 더 많은 양의 고체를 녹이면 일부가 '침전'으로 남게 된다. 고체의 밀도가 액체보다 크면 침전이 용액의 아래쪽으로 가라앉고, 고체의 밀도가 액체보다 작으면 침전이 용액의 위쪽에 뜨게 된다. 용해도는 액체와 고체의 열역학적 성질에 의해서 결정된다. 액체와 고체 분자가 서로 잡아당겨서 안정화될수록 용해도가 커진다.
용해도가 충분히 큰 경우에도 실제로 고체가 녹아들어가는 속도가 너무 느리면 문제가 된다. '잘 녹는다'라는 말에는 고체가 액체에 녹아들어 가는 속도에 대한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다. 고체가 액체에 녹기 위해서는 고체로 뭉쳐져 있는 분자들이 떨어져서 액체 분자 속으로 퍼져 나가야만 한다. 용액을 저어주면 고체에서 떨어져 나온 분자들이 액체 속으로 쉽게 퍼져 나가기 때문에 고체가 녹는 속도가 빨라져서 더 잘 녹는 것처럼 보인다.
뜨겁게 가열해서 온도를 높여주는 것도 고체를 빨리 녹게 만드는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온도를 높여주면 용해도가 커진다. 두 물질이 서로 섞여서 엔트로피가 늘어나는 열역학적 효과가 더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용액의 온도를 높여주면 분자의 운동이 빨라지기 때문에 고체가 액체 속으로 녹아들어 가는 속도도 빨라지게 된다.
주방에서 곰국을 끓이거나 한약재를 달일 때 오랜 시간 동안 뜨겁게 가열하는 것도 고기나 한약재에 들어있는 성분의 용해도와 녹는 속도를 증가시켜서 더 많은 양이 더 빨리 녹아나오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뜨겁게 끓인 곰국을 식혀서 냉장고에 넣어 충분히 차갑게 만들면 건강에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지방 성분의 용해도가 줄어들면서 곰국 위로 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