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에 있는 화학 공장에서 맹독성 불산(플루오르산)이라는 물질이 대량으로 새나오는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다. 현장에 있던 작업자 5명이 즉사하고, 18명이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공장 부근의 주민과 생태계에도 심각한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 농작물을 포함한 거의 모든 식물이 누렇게 시들어버렸고, 가축들도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모양이다. 주민들의 건강에도 상당한 문제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불산'이 새나오면서 폭발이 일어났다고 한다. '불산'은 일본에서만 사용하는 이름이고, 우리말로는 '플루오르산'으로 불러야 옳다. 일본이 '플루오린'이라는 원소 이름으로 만든 중국의 원소기호를 마음대로 변형해서 '불소'라고 부르기 때문에 만들어진 이름이다.

플루오르산은 산업적으로 매우 유용하지만 사람이나 가축에게 치명적인 독성을 나타내는 위험한 물질이다. 칼슘과 반응해서 플루오린화 칼슘(형석)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유리나 모래에 들어 있는 규산(실리카)과 반응해서 플루오르규산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특히 동물이나 식물의 체내로 스며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피부나 각막에 큰 손상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혈액에 녹아있거나 뼈를 구성하는 칼슘과 반응해서 플루오린화 칼슘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혈액이나 세포액에서 칼슘 이온의 농도가 지나치게 줄어들면 생리작용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신경이 마비되기도 하고, 심하면 심장마비로 사망에 이르게 될 수도 있다. 플루오르산에 노출되면 즉시 많은 양의 물로 씻고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 손상 부위에 대한 치료를 받아야만 한다.

식물도 예외가 아니다. 이번 사고에서 보듯이 플루오린화 수소에 노출된 농작물은 곧바로 누렇게 시들어버린다. 다행히 플루오린화 수소는 공기보다 가볍기 때문에 바람을 따라 빠르게 흩어져 버린다. 수용액 상태의 플루오르산도 수산화칼슘(소석회)를 뿌려서 중화하면 독성이 사라진다.

원자번호 9번, 플루오르산의 모습.

플루오르산이 토양이나 가축이나 농작물에 축적되어 지속적으로 피해를 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플루오르산의 반응성이 워낙 커서 칼슘이나 규산에 안정하게 달라붙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플루오르산에 노출된 농작물이나 가축의 고기도 안심하고 소비해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이옥신의 경우처럼 내년 농사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말라죽어 버린 식물이나 농작물은 어쩔 수가 없고, 피해를 본 가축을 치료하는 일도 쉽지 않다.

플루오르산은 독성이 강하기는 하지만 산업적으로 유용하게 사용된다. 옥탄가가 높은 고급 휘발유를 생산하는 과정에도 사용된다. 우울증 치료제로 잘 알려진 프로작과 같은 의약품이나 축구 경기장의 지붕에 사용하는 테플론의 원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플루오린 화합물이 포함된 치약이나 수돗물을 사용하면 충치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잘 알려졌다. 플루오르산은 유리를 녹이는 유별난 성질도 가지고 있어서 반도체 생산 공정에서 불필요하게 남은 유리 성분을 씻어내는 세척제로도 사용된다. 플루오르산처럼 치명적인 독성을 가진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