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수도권 가정에 공급된 수돗물에서 1주일 이상 흙냄새가 났다고 한다. 다행히 냄새의 원인은 쉽게 파악된 모양이다. 지나치게 더웠던 지난가을 동안 북한강에 번성한 녹조류(綠藻類)가 문제였다. ‘흙냄새 수돗물’의 원인은 녹조류가 내뿜는 유기물질 지오스민(geosmin)이었다. 실제로 팔당 취수장에서 측정한 지오스민 농도가 270ppt(1ppt는 1조분의 1)를 넘은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흙냄새 나는 수돗물을 정상이라고 할 순 없다. 그런데 이번에 문제가 된 흙냄새는 사실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것이다.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다가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질 때 시골 마당에서 나는 냄새가 바로 흙냄새다. 바짝 마른 밭을 갈아엎거나 잡초를 뽑을 때도 흙냄새가 난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이들은 흙냄새를 맡으며 지난날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규산염이 주성분인 흙 자체에서 냄새가 나는 경우는 드물다. 붉은색 산화철이 많은 진흙에서 나는 쇠(金) 냄새는 너무 옅어서 쉽게 알아차리기 어렵다. 실제로 흙에서 나는 냄새는 대부분 지오스민 냄새다. 지오스민을 내뿜는 건 스트렙토미세스 등의 박테리아. 방선균류(放線菌類)에 속하는 이 박테리아는 흙속에 살면서 곰팡이처럼 균사체와 포자를 만들어낸다.
인간은 진화 과정을 거치며 지오스민에 매우 민감한 후각을 갖고 있다. 공기 중 지오스민 농도가 5ppt만 넘어도 곧바로 흙냄새를 알아차린다. 5ppt는 측정이 어려울 정도로 옅은 농도다. 사람의 코가 화학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고가의 분석 장비보다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는 셈이다.
민물에서 광합성을 통해 번성하는 남조류(藍藻類)나 녹조류(綠藻類)도 지오스민을 내뿜는다. 수돗물에서 나는 흙냄새는 대부분 그런 식물성 플랑크톤에 의해 발생하는 지오스민이 원인이다. 다행히 지오스민은 인체에 크게 해롭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수돗물에서 나는 흙냄새를 좋아할 사람은 없다. 수돗물을 생산하는 정수장에서 지오스민의 농도를 20ppt 이하로 관리하는 것도 소비자가 불쾌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지나치게 더운 날, 강이나 호수의 물에 식물성 플랑크톤이 번성하는 녹조 현상이 반가울 리 없다. 강이나 호수에 비료나 인(燐)이 너무 많이 포함된 화학비료가 흘러들어가 발생하는 인공적 부영양화의 경우, 특히 그렇다. 가을 날씨가 아무리 비정상적으로 더웠다 해도 깨끗한 1급수를 자랑하던 북한강에서 녹조가 발생한 건 심각한 문제다.
정수장에서 극히 적은 양의 지오스민을 제거하기란 쉽지 않다.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물을 끓이거나 신맛이 나는 레몬즙을 넣어주면 지오스민이 분해돼 흙냄새가 사라진다. 녹조 현상이 심각한 지역에서 찬물을 마실 때 레몬 조각을 넣는 건 그 때문이다. 낯선 냄새가 난다고 무조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화학적 지식을 활용,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하는 지혜를 발휘하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