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대 3억년 동안 번성했던 삼엽충은 후손을 남기지 못해 멸종했습니다. 그러나 삼엽충의 친척들이 자손을 남겨 오늘날에도 우리는 삼엽충의 아주 먼 친척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은 바로 인도양과 북대서양 해변에서 떼 지어 살고 있는 투구게입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 된 투구게의 화석은 캐나다의 오르도비스기 말(약 4억 5000만 년 전) 지층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독일의 중생대 쥐라기(약 1억 5000만 년 전) 지층에서는 지금 살고 있는 종류와 거의 비슷한 투구게의 화석이 발견되기도 했죠. 투구게는 4억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모습이 거의 변하지 않은 특이한 동물입니다. 이렇게 아주 오래 전에 나타나서 큰 변화 없이 지금까지 살고 있는 생물을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먼 친척인 투구게보다 삼엽충과 더 비슷해서 관심을 받은 동물이 있습니다. 바로 남극 주변 바다에 살고 있는 케라토세롤리스 트릴로비토이데스(Ceratoserolis trilobitoides)입니다. 필자가 2006년 12월에 남극에 갔을 때도 이 긴 이름의 동물을 실제로 채집할 수 있었습니다.
게나 새우와 같은 갑각류에 속하는 이 동물은 삼엽충처럼 세 부분(좌엽, 중심축, 우엽)으로 몸이 나뉘어져 있습니다. 눈도 삼엽충을 꼭 닮았고 크기도 보통 삼엽충과 비슷합니다. 어찌나 삼엽충 같은지 이름도 ‘삼엽충 닮은’(trilobitoides)이라고 지었어요. 그러나 사실 이 동물은 삼엽충의 살아있는 후손은 아닙니다. 과학자들은 삼엽충과 비슷한 생활 양식을 가져 비슷한 모양으로 진화한 전혀 다른 생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멸종된 동물은 다시는 볼 수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때로는 멸종했다고 알려진 생물이 우리가 모르는 곳에 살고 있다가 발견되기도 해요. 대표적인 동물로 실러캔스(coelacanth)라는 물고기가 있습니다. 이미 8000만년 전에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이 생물은1938년 아프리카의 바다에서 발견되면서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약 2억 5000만 년 전의 대멸종을 이겨낸 몇 쌍의 삼엽충 부부가 우리의 손길이 닿지 않는 멀고 깊은 바다 속 어딘가에서 삼엽충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살아있는 화석이란?
투구게처럼 오랜 지질시대를 거쳐 모양이 거의 변하지 않고 현재까지 살아 있는 생물을 가리킨다. 잘 알려진 식물로는 소철나무류, 은행나무, 쇠뜨기를 포함한 속새류, 메타세쿼이아가 있다. 동물로는 오리너구리, 악어, 철갑상어, 폐어, 실러캔스, 풀잠자리, 바퀴류, 투구새우 등이 있다.
이들 대부분은 고생대나 중생대에 나타나서 고생대 말과 중생대 말의 대멸종 시기를 간신히 견뎌내고 살아남은 생물들이다. 소수의 종들만이 살아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오랜 시간 동안 비슷한 모양과 생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급격한 환경 변화에 민감할 수 있어 보호종으로 지정된 생물들이 많다.
/ 이승배 화석전문가(서울대 고생물학연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