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심청전의 등장인물 중 심봉사가 가장 나약하다고 생각한다. 맹인이라고는 하지만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 맹인들은 미래를 점치는 점술가, 소리 내 경을 읽어 주는 독경사, 궁중 연회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관현맹인 등 직업을 가질 수 있었다. 심봉사는 어떤 일이든 해서 재산을 모으고, 가족에게 도움이 되도록 노력을 해야 하는데도 그러지 않았다.
곽씨 부인이 아기를 낳을 때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노력해야 했는데도 그러지 않았다. 결국 곽씨 부인은 혼자 아기를 낳고, 이후에도 쉬지 못하고 계속 일을 하다가 병이 생겨 죽고 말았다. 아무리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이라지만 한 일이 너무 없다.
또 화주승이 부처님께 공양미 300석을 바치면 눈을 뜨게 해준다고 하자 명단에 자기 이름을 적었다. 공양미 300석은 지금의 돈으로 7000만 원 정도라고 한다. 결국 효심이 깊은 심청이는 목숨을 팔아 공양미 300석을 마련했다.
또 심봉사는 뺑덕어미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결혼해 소중한 공양미 300석까지 잃고 말았다. 결국 거지가 돼 구걸해 먹고살던 심봉사는,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목숨까지 바쳤지만 나중에는 궁에 들어가 황후가 된 심청이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 무능력한 아버지 심봉사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가장의 역할을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심봉사가 이해되지 않는다.
만약 내가 조선 시대에 태어나 심청이와 같은 처지가 된다면 가족을 위해 힘을 합칠 거다. 하지만 공양미 300석에 인당수로 끌려가기보다는 가족과 함께 살면서 열심히 일해 돈을 차곡차곡 모으는 방법을 선택할 것 같다.
그렇게 해서 부모님의 아픈 곳도 치료받게 해 드리고, 맛있는 것도 만들어 드리면서 평생 효도하면서 살 거다.
<평> '심청전'의 주인공은 효녀 심청이다. 하지만 이 글은 심청이보다 심청이의 아버지인 심봉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글쓴이는 심봉사를 호되게 비판한다. 심봉사의 무능력함과 비정함, 어리석음을 지적하면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조선 시대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효'였다. 개인의 자유나 행복보다 효도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하지만 시대에 따라 사람의 생각과 생활 모습은 변하기 마련이다. 물론 지금도 효도를 게을리해서는 안 되겠지만, 요즘의 생각에 비춰 심봉사라는 인물을 새롭게 조명한 점이 신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