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쉽게 한양을 빼앗긴 이유는 무엇일까?

도요토미는 조선이 명나라로 가는 길을 내어 주기를 거절하자 본격적으로 전쟁을 준비했어요. 마침내 1592년 4월, 일본은 약 20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조선을 침략했어요. 임진왜란이 시작된 거지요. 부산진에서 첫 번째 전투가 벌어졌어요. 부산진의 군사와 백성은 활을 쏘고 큰 돌과 뜨거운 물을 퍼부으며 치열하게 싸웠지만 대부분 목숨을 잃었어요.

조선 조정은 이 소식을 듣고 한양을 떠나기로 했어요. 선조는 새벽에 한양을 빠져나갔어요. 일본군은 별로 싸우지도 않고 한양으로 들어왔어요. 조선을 침략한 지 18일 만이었대요. 이후 선조는 개성에서 평양으로, 그리고 의주로 향했어요. 그러면서 신하들 중 절반을 세자인 광해군에게 맡겼어요. 만약 어느 한쪽이 죽거나 잡히더라도 조선 왕조가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였지요.

◆조선은 어떻게 일본군을 막아 냈을까?

육지에서는 계속 졌지만, 바다에서는 상황이 달랐어요. 이순신의 수군이 있었거든요. 이순신의 수군은 옥포 앞바다에서 승리를 거두었어요. 조선군이 거둔 최초의 승리였대요. 일본군은 한산도 앞의 넓은 바다까지 쫓아 나왔어요. 바로 그때 기다리고 있던 조선군 배들이 학익진을 펼쳐서 일본군을 포위하고 한꺼번에 공격했어요. 일본군의 배 대부분이 가라앉고 수천 명의 군사가 죽었어요. 조선군의 배는 한 척도 가라앉지 않았어요. 이 싸움이 바로 '한산도 대첩'이에요.

백성들도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의병'을 조직했어요. 부자였던 곽재우는 자신의 재산을 들여 의병 부대를 만들었다고 해요. 언제나 붉은색 비단옷을 입고 다녀서 '홍의 장군'이라고 불렀대요. 승려들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쟁에 뛰어들었어요. 이들을 '승병'이라고 해요.

일본군은 전라도로 가는 길을 열기 위해 진주성을 차지하려고 했지요. 일본군이 쳐들어오자 진주성의 김시민과 군사들은 목숨을 걸고 싸웠고, 성을 지키는 데는 성공했지요. 이 귀중한 승리를 궨진주 대첩궩이라고 불러요. 권율은 일본군에 빼앗긴 한양을 되찾기 위해 군사 1만여 명을 이끌고 행주산성으로 갔어요. 여성들은 긴 치마를 잘라 짧게 만들어 입고 적에게 던질 돌을 날랐지요. 결국 일본군은 행주산성을 포기하고 달아났어요. 이를 궨행주 대첩궩이라고 해요. 이순신의 한산도 대첩, 김시민의 진주 대첩, 권율의 행주 대첩의 승리로 일본군은 기세가 크게 꺾였어요. 이를 '임진왜란의 3대 대첩'이라고 한대요.

◆임진왜란은 어떻게 끝났고,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조선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명나라는 조선을 돕기 위해 지원군을 보냈어요. 선조가 명나라에 지원군을 부탁했고, 명나라 스스로도 일본이 조선을 차지하면 위험에 처할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일본은 다시 조선에 쳐들어왔어요. 이 전쟁을 따로 궨정유재란궩이라고도 불러요. 하지만 이번에는 임진왜란 때와 달랐어요. 일본의 침략에 대비해 조선도 준비를 단단히 했고, 명나라도 곧바로 군대를 보냈지요. 일본의 도요토미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일본군은 서둘러 돌아가려고 했지요. 하지만 이순신은 일본군을 순순히 돌려보내지 않았어요. 마지막 전투에서 조선과 명나라가 연합한 수군은 마침내 승리를 거두었고, 일본군은 조선에서 완전히 물러났어요.

조선은 종묘와 불국사 같은 귀중한 문화재도 임진왜란으로 인해 불에 타 버렸고, 일본으로 끌려간 사람의 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어요. 그 가운데 학자나 기술자는 조선의 문화를 일본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노비가 되어 어려운 삶을 살았다고 해요.

▨문제 풀기

1. 다음에서 설명하는 낱말의 뜻을 보고 해당 단어를 적어 보세요.

(1) 조선 시대에 바다에서 국방과 치안을 맡아보던 군대. (         )
(2) 외적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해 백성이 스스로 만든 군대. (           )
(3) 1592년 (임진년)에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일어나 전쟁. (           )

▨탐구하기

1. 다음 사료로 보아, 일본군은 어떤 이유를 들어 조선을 침략했는지 적어 보세요.

[어린이조선일보] [한국사 NIE] 임진왜란, 장군·민중 함께 싸우다
[어린이조선일보] [한국사 NIE] 임진왜란, 장군·민중 함께 싸우다

3. 다음 두 지도를 살펴보고, 조선이 임진왜란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까닭을 적어 보세요.

[어린이조선일보] [한국사 NIE] 임진왜란, 장군·민중 함께 싸우다

4. 다음 자료를 바탕으로, 임진왜란이 끝난 뒤 각 나라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정리해 보세요.

[어린이조선일보] [한국사 NIE] 임진왜란, 장군·민중 함께 싸우다

▨정리하기

임진왜란의 원인과 과정, 결과, 영향에 대해 정리해 적어 보세요.

▨활용하기

임진왜란 ‘역사 사전’ 만들기

임진왜란에 대해 알려 주는 ‘역사 사전’을 만들어 보세요. 임진왜란에 관련된 사건과 인물, 문화재 등을 떠올려 보고 역사 사전에 싣고 싶은 사건, 인물, 문화재를 정해 그것과 관련된 내용을 써 보세요.

[어린이조선일보] [한국사 NIE] 임진왜란, 장군·민중 함께 싸우다

※ 정답

[역사 풀기]

1.
(1) 수군
(2) 의병
(3) 임진왜란

[탐구하기]

1. 조선이 명나라로 가는 길을 내어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선을 침략했다.

2. 일본군은 1592년 4월에 부산으로 쳐들어와 상주, 충주를 점령하고 5월에 한양을 함락하였다. 6월에는 한양보다 위에 있는 평양까지 함락하였다. 일본은 두 달 정도라는 짧은 시간 동안 조선을 점령했다.

3. 바다에서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이 일본군에 많은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전국에서 많은 의병이 일어나 전쟁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관군과 의병이 열심히 싸워 임진왜란에서 이길 수 있었다.

4. 우리나라는 많은 국토가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입게 되었으며, 전쟁 전 84만 호였던 집이 44만 호로 줄었고, 170만 결에 달했던 논밭이 54만 결로 줄어들었다. 일본은 전쟁 전 도요토미 정권에서 전쟁 후에는 도쿠가와 정권으로 바뀌었다. 전쟁 전에는 명나라의 힘이 셌지만, 전쟁 후에는 여진족의 힘이 세졌다. 조선에서는 많은 사람이 죽었고, 토지도 줄어들었다.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일본의 도요토미에서 도쿠가와로 정권이 바뀌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상황에 변화를 가져왔다.

[정리하기]

명나라는 부패한 관리들이 나라를 다스리면서 국력이 약화되고 있었고, 조선은 오랜 평화가 지속되면서 지배층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전쟁에 대비하지도 않았다.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하면서 조선을 침략하고자 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을 통일한 후 명나라로 가는 길을 내어 달라는 요구를 조선이 받아들이지 않자 조선을 침략하였다. 조선은 전쟁을 대비하지 않았기에 순식간에 조선 땅을 점령당했다. 이에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과 의병들의 활약과 명나라의 지원으로 일본을 물리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랜 전쟁은 조선에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주었고, 명나라는 조선에 지원군을 보낸 것으로 국력이 쇠약해졌으며 일본은 정권이 교체되었다.

[활용하기]

[이순신] 임진왜란 때 조선의 수군을 이끌며 일본군과의 해전에서 큰 승리를 이끈 조선의 장군.

[의병] 군인이 아니지만 군대에 스스로 지원하여 군인처럼 싸우는 사람들. 조선의 관군들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자 백성들이 스스로 일어나 의병 대장들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큰 성과를 거둠.

[거북선]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사용한 거북 모양의 전투용 배. 앞쪽의 용머리와 뒤쪽의 꼬리에 구멍을 뚫고, 좌우에도 여러 개의 구멍을 뚫어서 그곳을 통해 포를 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