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웅~! 코뿔소의 강력한 콧바람을 바로 옆에서 느껴본 적 있는가. 기린이 흘리는 끈적끈적한 침을 얼굴에 맞아본 경험은? 사람과 야생동물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동물들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말을 걸고, 직접 먹이도 줄 수 있다. 에버랜드 생태형 사파리 '로스트 밸리'에서 가능한 일이다.

소형 수륙양용차 타고 동물에게 말걸어봐요.

최근 새로 도입된 '소형 수륙양용차'를 타고 로스트 밸리 스페셜 투어에 나섰다. "이 차는 창문과 천장이 다 뚫려 있어요. 동물들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까이 다가올 수 있으니 놀라지 마세요!" 안내를 맡은 이세현 에버랜드 사육사가 시동을 켠다. 차에는 사육사 외에 6명이 탈 수 있다. 육지와 물속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스릴은 기본, 기존의 40인승 수륙양용차보다 덩치가 작아 동물에게 더 바짝 접근할 수 있다.

쌍봉낙타 '밀레봉'.

첫 탐험지는 사막 지역. 등에 혹이 두 개 붙은 쌍봉낙타 '밀레봉'이 큰 눈을 끔뻑이며 쉬고 있다. 밀레니엄인 2000년도에 태어나 이런 이름을 갖게 됐다고 한다. 곁에 차를 세워도 힐끗 쳐다볼 뿐 도망가지 않는다. 오픈된 창문을 통해 좋아하는 간식인 근대를 내밀었다. '어휴, 뭘 이런 걸 다 주시고….' 밀레봉이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쭉 내민다. 오물오물 잘도 먹는다.

멋진 뿔과 풍성한 가슴 털을 가진 바바리양 '지중해'.

근처 바위 협곡에는 멋진 뿔과 풍성한 가슴 털을 자랑하는 바바리양이 모여 있다.

"하나, 둘, 셋, 지중해~! 지중해야!"

사육사의 구령에 맞춰 다 함께 큰 소리로 '지중해'를 외치니, 바위산 중턱에 있던 바바리양 한 마리가 폴짝폴짝 뛰어내려 온다. 자기 이름을 알아듣고 달려온 것이다. 바바리양들의 이름은 바다 이름을 따서 지었다. 오대양, 인도양, 대서양도 있다. 그중 사람을 가장 잘 따르는 녀석이 지중해다. 차창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더니 도리어 사람들을 구경한다. 그런데 지중해의 눈동자가 특이하다. 동공이 가로로 길쭉하게 생겼다. 초식동물들은 언제 어디서 맹수가 나타날지 몰라 넓은 시야를 가져야 했다. 가로로 긴 동공은 이 때문이다.

소녀 코끼리 '하티'.

물가에서 만난 코끼리 '하티'는 춤추는 걸 좋아하는 열여섯살 소녀다. 고개를 좌우로 신나게 흔들며 덩실덩실 춤을 춘다. 아직 자라는 어린 코끼리라 몸무게는 2000㎏ 밖에(?) 나가지 않는다. "하티야!" 하며 간식을 던져주자 코로 집어 입으로 가져간다. 이세현 사육사는 "코끼리의 코는 작은 콩 한알도 집을 정도로 움직임이 섬세하다"고 설명했다.

(왼쪽부터) 오픈된 차량 천장을 통해 먹이를 받아먹는 ‘아토’의 모습. 50㎝의 긴 혀로 ‘코 파기’ 중인 새끼 기린 ‘아토’. 대형 수륙양용차가 옆으로 지나간다.

다양한 초식동물이 어울려 살아가는 '그레이트 사바나' 지역. 작년 4월 태어난 새끼 기린 '아토'가 탐험대를 긴장시킨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와 뚫린 천장 위로 고개를 쑥 집어넣는다. 기린의 숨소리까지 들리는 초근접 상태에서 먹이주기 체험을 했다. 50㎝의 긴 혀를 이용해 음식을 낚아채는 모습이 신기하다. 기린 입에서 떨어진 침이 얼굴에 튀기도 했다.

"기린은 유독 침을 많이 분비하는 동물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먹이가 가시가 많은 아카시 나뭇잎이에요. 가시를 무르게 하기 위해서 침을 많이 만들어 낸다고 해요." 설명을 끝낸 사육사가 차를 천천히 출발시켰다.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던 아토. 음식을 받아먹던 혀로 모른 척 코를 판다.

얼룩말 ‘날로’가 당근을 받아먹고 있다.

'초원 위의 패셔니스타'라고 불리는 얼룩말은 초식동물 중에서도 예민하고 겁이 많다. 아프리카어로 '사랑스럽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얼룩말 '날로'는 그나마 붙임성이 좋은 편. 당근을 먹는 날로의 입 주변에 길고 검은 털이 관찰됐다. 이 털들은 기상청 같은 역할을 한다. 습도가 높아지면 털이 아래로 가라앉는데 곧 비가 온다는 예보다. 당근을 먹고 기분이 좋아진 날로가 입술을 뒤집어 '잇몸 미소'를 날린다.

흰코뿔소 ‘사피’.

전 세계 1000여 마리만 남은 희귀종 흰코뿔소 '사피'도 만났다. 사피는 아프리카어로 '친구'라는 뜻이다. 황토색 진흙을 온몸에 바르고 있었는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귀와 꼬리 끝을 제외하고는 몸에 털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나무 꼬챙이에 끼워주는 과일을 넙죽넙죽 받아먹던 사피가 갑자기 콧김을 팍 내뿜는다. 어찌나 센지 뒤로 주저앉을 뻔했다.

30종 300여 마리 동물이 울타리 없이 살아가는 로스트 밸리. 지난해 4월 개장한 이래 누적 관람객이 210만명을 돌파했다. 동물의 세계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관람 방식 덕분이다. 현재 이곳에선 대형 9대, 소형 3대 등 총 12대의 수륙양용차가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