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여왕이 통치하던 시절에 가장 많은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엘리자베스 1세(1533~1603·사진)와 빅토리아 여왕(1819~1901)이 다스리던 시대는 영국의 최전성기였죠.

헨리 8세(1491~1547)의 딸로 태어난 엘리자베스 1세는 어린 시절 험난한 역경을 거쳐야 했어요. 어머니 앤 불린은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죽음을 당해야 했고, 헨리 8세가 죽자 이복언니 메리 1세가 즉위하며 엘리자베스 1세를 런던탑에 가두었습니다. 그러나 메리 1세는 왕위에 오른 지 5년 만에 죽었고, 1558년 엘리자베스 1세가 스물다섯 살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조선일보 자료사진

엘리자베스 1세는 의지가 강하고 총명했어요. 즉위하자마자 통일령을 공표하고 영국 국교회를 확립해 나갔죠. 1588년에는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찔러서 해상 강국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강한 나라는 신대륙 경영을 바탕으로 막대한 양의 은을 들여온 스페인이었습니다. 특히 최강의 함대를 갖춰 무적함대라고 불렸죠. 하지만 작으면서도 빠른 영국 함대에 무너지며 해상권을 영국에 내주었습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상업을 중요시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극작가 셰익스피어(1564~1616)와 철학자 베이컨(1561~1626) 등 걸출한 인물들이 나타났죠.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유럽에서는 왕실 간에 정략 결혼을 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엘리자베스 1세에게도 다른 나라의 왕실과 결혼하라는 성화가 빗발쳤던 겁니다. 그때 엘리자베스 1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영국과 결혼했다."

그녀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 '처녀왕'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자베스 1세는 사실 신하인 월터 롤리 경(1552~ 1618)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고 해요. 월터 롤리 경은 옥스퍼드에서 공부한 뒤 프랑스의 신교도인 위그노를 구원하기 위해 의용군에 참가했던 해군 장성이자 작가였죠. 그는 아일랜드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우며 그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둘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영국을 강대국으로 만든 엘리자베스 1세는 1603년 숨을 거두었습니다. 여왕이 죽은 후 월터 롤리 경은 런던탑에 12년간이나 갇혀 있다가 1616년 풀려났으나, 2년 뒤 사형을 당하고 말았답니다.

가람누리 제공 | 교과서 속 세계 역사·문화 이야기 (정인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