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 위, 출렁거리는 파도가 노란 모래사장 위를 향해 달려듭니다. 한번 상상해 봅시다. 맑은 하늘 아래 따사로운 햇살이 푸른 바다로 쏟아지는 모습을 말입니다. 물 위에 흩어지며 반짝이는 빛이 눈부실 겁니다.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의 풍경은 화가의 세계를 만드는 원천(源泉)이 되기도 합니다. 자신이 살던 마을을 지키며 묵묵히 예술 세계를 만들어 간 화가 전혁림(1916~2010·사진)에게 고향의 풍경은 더 특별해 보입니다.
전혁림은 1916년 1월 싱그러운 물빛이 일품인 바닷가 마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났습니다. 전혁림의 어린 시절 꿈은 높이뛰기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운동 중에 심한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1년 동안 병석에 누워 있게 됩니다. 형처럼 대도시의 상급 학교로 유학을 가고 싶어 했던 꿈도 그만 물거품이 돼버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혁림은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움직이지 못해서 답답하고 우울하기만 했던 하루하루가 그림을 만나면서 달라졌습니다.
전혁림은 통영공립보통학교와 통영수산학교를 다녔습니다. 하지만 수산학교에 다니면서도 배를 탈 생각은 하지 않고, 오로지 그림 그릴 생각뿐이었습니다. 당시 통영엔 일본 유학을 다녀온 사람이 많았고, 일본인들도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런 문화적 분위기가 화가의 꿈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수산학교 졸업 후 직장을 다니며 일본 작가들이 주도하던 미술 교습소를 다니면서 파리에 갈 꿈을 키웠습니다. 얼마나 파리 유학을 동경(憧憬)했는지, 파리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밥 대신 빵을 먹는 연습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파리 유학을 가려던 시도는 실패했습니다. 좌절한 전혁림은 한때 우울증에 빠져 몸이 쇠약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전혁림은 그림 그리는 일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한시도 붓을 놓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가 일제에서 해방된 후엔 사랑하는 고향의 문화 발전을 위해 분주한 나날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6·25전쟁 당시에는 잠시 부산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이때 김환기, 이중섭 등 여러 화가와 어울리며 전시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전혁림의 그림엔 고향 통영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자연을 있는 그대로 그리기보다는 풍경에 자신만의 느낌과 생각을 투영(投影)해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했습니다. 대상을 선과 면으로 나누기도 하고, 단순하게 그리기도 합니다. 강렬한 빨강과 파랑, 노랑의 조합은 전통 그림인 민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전혁림은 실제로 그림의 주제를 우리나라의 민속에서 주로 찾았습니다.
화면을 구성하는 방법이라든가
모티브*, 색채 혹은 시대성 등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나는 자연이야말로 위대한 스승이라고 생각합니다.
*모티브: 회화, 조각, 소설 등 예술 작품을 표현하는 동기가 되는 작가의 중심 사상.
● 교과서 속 현대미술 이야기
리젬|이지윤 글|정현희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