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마한 연못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방이습지 산책길을 걷습니다. 햇볕이 얼마나 쨍쨍 내리는지 금방이라도 머리가 벗겨질 것 같습니다. 서둘러 나무 그늘로 가니 풀밭에는 쇠무릎 풀들이 무더기로 자라고 있네요. 이름처럼 풀줄기가 소의 무릎처럼 굵직하게 튀어나왔습니다. 신기해서 줄기를 쓰다듬는데, 갑자기 메뚜기 몇 마리가 후드득후드득 풀숲으로 도망칩니다. 섬서구메뚜기로군요. 그러고 보니 쇠무릎 잎에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섬서구메뚜기는 못 먹는 게 없습니다. 고마리, 깨풀, 돌콩, 여뀌, 수련, 심지어 사람들이 가꾸는 상추와 고구마 잎까지 풀잎이란 풀잎은 닥치는 대로 먹습니다. 큰턱이 튼튼해 여느 곤충들처럼 특정 식물만 골라 먹지 않고 아무 식물이나 잘 씹어 먹습니다.
마침 어른 섬서구메뚜기 암컷 한 마리가 쇠무릎 잎에 앉아 식사합니다. 그새 꼼짝 않고 먹었는지 잎에 구멍이 송송 났고, 부드러운 잎살만 먹더니 이내 잎맥도 씹어 먹습니다. 지켜본 지 몇십 분이 흘렀는데도 배가 엄청 고팠는지 먹기만 합니다.
녀석은 보면 볼수록 철모르는 순둥이 같습니다. 몸매는 기다란 마름모꼴로 좀 작달막합니다. 몸 색깔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풀이나 나무와 똑같은 초록색(녹색형)인데, 주변의 식물이 갈색으로 변한 가을에 허물을 벗은 섬서구메뚜기는 대부분 몸 색깔이 갈색(갈색형)입니다.
메뚜기 하면 뒷다리가 유명합니다. 메뚜기 아목 식구답게 녀석의 뒷다리도 허벅지(넓적다리마디)가 알통처럼 툭 불거져 나왔지요. 허벅지는 운동 근육이 가득 차 있어 포식자를 만나거나 위험한 상황에 맞닥뜨리면 제자리에서 굉장히 높이 뛰어오릅니다. 그래서 섬서구메뚜기는 곤충 세계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높이뛰기 선수입니다.
그런데 녀석의 이름이 왜 낯설기만 할까요? 지금은 농사일을 기계가 많이 거들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지요. 논농사를 짓던 옛 어른들은 추수할 때가 되면 벼를 베어 짚단으로 만든 다음 바람이 잘 통하라고 삼각형 모양으로 논둑이나 논에 세워 놓았습니다. 그 볏단을 '섬서구'라고 부르는데, 잘 보면 녀석의 얼굴도 세모난 게 마치 섬서구 같습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섬서구메뚜기라고 불렀던 것이지요. 옛 어른들의 눈썰미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는 섬서구메뚜기를 잡으니 고약하게도 잡자마자 토합니다. 거무스름한 초록색 물질이 주둥이에서 방울방울 나오고, 그래도 놓아주지 않자 제 손가락이 흥건해질 때까지 계속 게워 냅니다. 섬서구메뚜기들은 잡히면 곧바로 토합니다. 열이면 열 모두 위험하면 토합니다. 왜 토할까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지요. 섬서구메뚜기가 토하는 물질에는 먹이식물이 품고 있던 독 물질(식물의 화학방어물질)이 들어 있습니다. 식물은 저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몸속에 방어물질을 지니고 살지요. 섬서구메뚜기는 먹이식물에서 얻은 방어물질로 만든 분비물을 토해 포식자를 당황하게 합니다.
섬서구메뚜기에게도 치명적인 고민이 있습니다. 바로 어른과 아기의 밥이 같다는 것입니다. 풀밭 식물의 양은 한계가 있는데, 어른과 아기가 함께 잎을 먹으니 식물이 모자랄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어른과 아기가 먹이를 놓고 경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섬서구메뚜기는 대가 끊기지 않고 면면히 이어 오고 있습니다. 사람의 소견으로 해석하지 못한 그들만의 조절 능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상상의 숲 '곤충의 빨간 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