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중미산 오솔길. 벌써부터 아기 가시가지나방이 물푸레나무 잎에 매달려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가슴 속에 숨겨 두는 머리를 꺼내 큰턱을 왼쪽 오른쪽으로 펼쳤다 오므렸다 하면서 잎을 씹어 먹습니다. 울퉁불퉁한 몸매, 거무칙칙한 몸 색깔, 언뜻 보면 '못난이' 같은데 자꾸 보니 나름 귀여운 구석이 있군요. 피부에는 좁쌀처럼 오돌토돌한 돌기가 쫙 깔렸고, 군데군데 사마귀 점 같은 새까맣고 커다란 돌기가 듬성듬성 박혀 있습니다.
가시가지나방 하면 몸 색깔입니다. 까만색 바탕에 분홍색 무늬, 연두색 바탕에 하얀색 무늬, 까만색 바탕에 하얀색 무늬, 갈색 바탕에 하얀색 무늬가 섞여 있습니다. 이렇게 색깔이 다양하다 보니 같은 종인데도 다른 종의 애벌레로 착각하기 딱 좋습니다. 알에서 깨어날 때는 온몸이 새까맣지만 허물을 벗으면서 몸 색깔이 제각각 다른 색으로 변합니다.
마침 까만색 바탕에 분홍색 무늬가 섞인 녀석이 버드나무류 잎을 먹고 있네요. 장난기가 발동해 톡 건드려 봅니다. 별안간 머리를 치켜들고 나뭇가지를 꽉 붙잡고 있던 가슴다리까지 올리면서 상반신을 벌떡 일으킵니다. 이어서 머리와 가슴 부분을 둥글게 말아서 몸 안쪽으로 끌어당긴 뒤 배의 한가운데에 갖다 댑니다.
순간 녀석의 몸이 꽈배기처럼 꼬여 어디가 머리인지 어디가 배 끝인지 헛갈립니다. 배 쪽으로 박은 머리를 찾으려고 녀석을 만지니 몸에 힘을 잔뜩 주면서 더욱 단단하게 몸을 꼽니다. 그렇게 배다리(헛다리 또는 가짜다리라고 함) 2개와 꼬리다리 2개로 나뭇가지를 꼭 잡고서 '나 죽었다'하며 꼼짝 않고 버팁니다. 몸을 꼰 채 나뭇가지에 딱 붙어 있으니 새들이 날면서 싼 똥과 너무도 닮았습니다.
2분 정도 지나자 굳었던 몸이 꿈틀거립니다. 몸쪽에 박고 있던 머리를 나뭇가지에 갖다 대면서 둥글게 말았던 가슴을 곧게 펴 6개의 가슴다리로 나뭇가지를 꼭 붙잡습니다. 언제 몸을 꼬았냐 싶게 몸을 기다랗게 쭉 펴면서 정상적인 새끼 나방의 모습을 되찾습니다.
새똥으로 변장한 아기 가시가지나방은 늘 안전할까요? 아닙니다. 숲 속에는 녀석을 노리는 포식자가 들끓습니다. 아기 가시가지나방이 알에서 깨어날 때쯤이면 새들도 알을 낳거나 알을 깨고 나온 새끼를 키울 때입니다. 새뿐 아니라 겨울잠을 자던 도마뱀, 거미, 쌍살벌 등도 깨어나 먹잇감을 찾을 때입니다.
아기 가시가지나방은 번데기가 되기 전까지 잎 위에서 온몸을 노출하고 있기 때문에 포식자에게 만만한 먹이입니다. 몸길이가 35㎜나 되고 뚱뚱하기까지 해 한 마리만 잡아먹어도 작은 곤충 몇 마리를 먹은 것과 같으니 최고의 먹잇감입니다. 그래서 제아무리 새똥으로 위장한들 매서운 포식자의 눈을 피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실제로 곤충 세계에서 어미가 낳은 알들 가운데 1~2%만 무사히 어른벌레가 된다고 하니 말 다했지요.
아기 가시가지나방은 허물을 4번 벗으면서 자랍니다. 먹성이 좋아 싸리나무 잎, 붉나무 잎, 버드나무류 잎, 가래나무 잎, 청가시덩굴 잎 등 나무 종류를 가리지 않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3월 꽃샘추위가 한창일 때 번데기에서 어른 가시가지나방이 태어납니다. 가시가지나방은 일 년에 한 살이가 한 번 돌아가니 봄에만 녀석을 만날 수 있습니다. 봄에는 이 나무 저 나뭇잎에 붙어 있는 새똥 닮은 가시가지나방과 멋진 데이트를 해 보세요.
상상의 숲 '곤충의 빨간 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