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작곡가 조아키노 로시니(1792~1868년)는 어린 시절부터 유명한 천재 소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거리 악대에서 트럼펫과 호른을 불던 연주자였고 어머니는 소프라노 가수였어요.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늘 음악과 함께 살았던 로시니. 열두 살 때 작곡한 현악4중주가 요즘도 자주 공연될 만큼 수준이 매우 높았어요.
‘오페라의 나라’ 이탈리아 출신답게 로시니는 일찍 오페라의 아름다움에 매력을 느꼈는데요. 청년 시절 매우 재미있는 작품을 하나 만들게 됩니다. 바로
[스페인]
세비야를 배경으로 한 ‘세비야의 이발사’입니다. 알마비바 백작과 로지나가 주위의 방해를 무릅쓰고 결혼에 골인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에요.
이 작품의 원작은 보마르셰라는 희곡 작가가 쓴 3부작이에요. 첫 작품은 ‘세비야의 이발사’, 두 번째 작품은 ‘피가로의 결혼’, 그리고 세 번째 작품은 ‘죄많은 어머니’란 작품이었죠. 그 중에서 모차르트(1756~1791년)는 2부인 피가로의 결혼을 오페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상하지 않아요? 모차르트가 이미 세상을 떠난 다음 로시니가 1부를 오페라로 만들고, 2부를 모차르트가 오페라로 만들었다는 사실 말이에요. 사실은 로시니보다 먼저 이 ‘세비야의 이발사’를 오페라로 만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조반니 파이지엘로라는 작곡가였는데요. 당시엔 매우 유명했고 음악계에서 권력도 센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로시니가 ‘세비야의 이발사’를 같은 내용, 다른 음악으로 공연을 하려고 하자 갖은 방해공작을 펼치며 막았습니다. 로시니는 똑같은 제목으로 공연하는 것에 부담을 느껴 처음엔 ‘알마비바 백작’이란 이름으로 공연을 했죠.
1816년 2월 20일
[로마]
아르헨티나 극장의 초연 날, 파이지엘로의 방해는 극에 달했어요. 파이지엘로는 자기 편들을 극장에 불러모아 아리아가 나올 때마다 야유를 퍼붓게 했어요. 그리고 검은 고양이를 무대에 풀어놓았답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검은 고양이가 자신의 앞길을 가로질러가면 재수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결국 그날 오페라 공연은 완전히 엉망진창이 됐죠.
하지만 24세 청년 로시니는 이 난리에도 실망하지 않고 오히려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어요. “그래? 어디 해보시지. 내 작품은 정말 훌륭하거든!” 이렇게 말이죠. 과연 정말 좋은 작품 앞에 방해공작은 소용이 없었습니다. 로시니의 작품은 찬사와 박수를 받으며 당당히 성공을 거뒀거든요.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오페라를 다 만든 후 서곡을 만들어야 했던 로시니가 또 다른 오페라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에서 썼던 서곡을 다시 사용하는 게 아니겠어요? ‘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는 당시 기준으로 1년 전 가을 상연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작품이었거든요.
그는 시간이 모자랐을까요, 귀찮았던 걸까요? 요즘 같으면 ‘자기 표절’이라고 말이 많았겠지만 당시엔 그런 개념이 없었어요. 로시니는 거리낌없이 이 신나는 멜로디를 다시 사용했고, 이젠 완전한 ‘세비야의 이발사’ 서곡으로 남았답니다.
보통 서곡 하면 그 오페라에 들어 있는 멜로디나 주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이 서곡의 멜로디는 전혀 오페라 속에 나오지 않는 곡들로 이뤄져 있어요. 전혀 다른 작품의 서곡으로 쓰였던 곡이니까요. 하지만 놀랍게도 ‘세비야의 이발사’의 경쾌하고 발랄한 분위기와 정말 잘 어울리는 서곡이 됐답니다.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요.
‘세비야의 이발사’는 명작 중의 명작이기 때문에 정말 다양한 음반이 나와 있는데요, 최근 발매된 두 종류의 DVD를 추천합니다. 안토니오 파파노가 지휘하는 런던 로열오페라 하우스 코벤트 가든 버전은 아주 즐겁습니다. 스페인
[마드리드]
테아트로 레알의 헤수스-로페스 코보스가 지휘한 영상은 오페라가 열리는 배경도 공연장도 스페인이라서 더욱 신나는 느낌이에요.